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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엠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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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02g | 128*188*30mm
ISBN13 9788925534442
ISBN10 892553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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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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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쿠미 사오리(Saori Kumi)
모리오카 출생으로 현재 가루이자와에서 개, 고양이, 프레리도그, 뱀, 거북이 등의 동물천국 환경에서 살고 있다. 코발트문고로 데뷔한 이후, 오리지널에서 노벨라이즈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며 『MOTHER』, 『드래곤 퀘스트』, 『우리들은 천사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그림 : 모리 카오루(Kaoru Mori)
도쿄 출생. 어릴 적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하면서 지냈다. 2002년 〈월간 코믹 빔〉에 『엠마』를 연재&데뷔. 영국, 특히 빅토리아 시대와 메이드를 좋아한다. 주요작품으로는 『엠마』, 『셜리』, 『엠마 빅토리안 가이드』(무라카미 리코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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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영국(英國)의 수도 런던(London).
산업혁명에 의한 변화와 개혁의 시대.

오랜 전통과 계급사회가 아직은 뿌리 깊게 존재하고, 전국 각지에 철도가 개설되어 대규모 운송이 실현되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여전히 마차가 오가던 시대….
이 이야기의 무대는 바로 그러한 시대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미스터 존스. 조금도 변하질 않으셨네요.”
“당신이야말로. 몸져누우셨다는 얘길 듣고 이렇게 허둥지둥 달려왔습니다만 생각보다 건강해보이시는군요.”
“실망하셨나요? 다리를 좀 삔 것뿐인 걸요. 관 뚜껑을 열고 누울 자릴 살피고 있는 불쌍한 노파를 놀리러 오신 거라면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하하하, 그런 농담을. 언제나 변함없는 당당함과 귀신도 얼씬못할 그 위력, 정말이지 반가울, 아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아슬아슬하고 팽팽한 대화에 윌리엄은 호흡곤란에라도 걸린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남의 다툼조차 싫어하는 윌리엄으로선 어릴 적부터 이 두 사람이 벌이는 설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그 화제의 대상이 자신이라면 더욱더 제정신이 아니었으리라.
“요즘 우리 아들 녀석이 여기에 자주 드나든다면서요? 전엔 그렇게도 안 찾아뵙더니만. 하는 짓이 워낙에 극단적이고 어린아이 같은 녀석인지라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이 녀석을 가르치실 때도 꽤나 골치 아프셨을 겁니다.”
“아니에요, 그럴리가요. 아주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단지 주의가 좀 산만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내 녀석이 당최 야망이란 것도 없고, 아내를 닮았는지 모든 일에 느긋한 구석이 있어서 말이죠.”
차를 준비하면서 힐끔 보니 윌리엄은 두 사람의 엇갈리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의자에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 누군가에게 살려달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잔소리를 합니다만, 제 스스로 깨닫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슬며시 다가간 엠마에게 리처드는 갑자기 팔을 뻗어 찻잔을 빼앗아들었다. 그 순간, 어떤 의도를 가진 눈빛을 흘기며 그녀의 얼굴과 모습을 빤히 살폈다.
날 살피고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엠마는 황급히 손을 뺀 뒤,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저로서는 말이죠.”
리처드 존스는 한층 목소리를 높여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선언했다.
“이제 슬슬 아들 녀석에게 존스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엠마는 얼떨결에 넘어질 듯 허둥거리면서 있지도 않은 카펫의 먼지를 줍는 척을 했다.
“저도 지금이야 이렇게 건강하지만 그토록 정정하시던 선생님이 이렇게 꼼짝을 못하고 계시는 걸 보니 점점 더 불안해지는군요.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내일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세상일인지라.”
“그렇죠.”
켈리 스토너는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젊은 두 남녀가 가슴을 졸이고 있는 분위기를 잘 읽고 있었다.
리처드 존스는 대관절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왜 하필 나의 이 거실에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죠.”
“무슨 일이 생긴 후를 생각하니 저 역시 지금 이대로는 어쩐지 불안하네요.”
리처드는
“흐음.”
하고 콧김을 내쉬면서 아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일단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좀 달라지겠죠. 다행히 지금 혼사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네?”
하고 켈리도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윌리엄을 마음에 들어 해서 혼담을 넣으신 분이 계신답니다.”
“자, 잠깐만요!”
그토록 소심한 윌리엄도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처음 듣는 얘기라고요!”
“당연하지. 부모를 통하지 않고 혼담을 넣는 법은 없으니까.”
“말도 안돼요. 그게 누구죠?”
“지난번 무도회에서 만났다지? 캠벨 자작 집안의 엘레노아 양이다. 꽃도 무색케 할 만큼 아름다운 열여섯 살의 순수하고 사랑스런 아가씨라지? 그쪽에서 널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너 또한 싫지 않은 눈치라고 들었다만.”
“무슨….”
윌리엄은 벌떡 일어났다.
“오해세요. 그분이 우리 단골고객이라기에…. 무도회에 참석하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하셨잖아요. 우리 가게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많이 사주셨다는 얘기를 들은지라 예의를 갖춘 것뿐이었어요. 더군다나, 50년 전이라면 모를까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라니, 그런 건 지금의 이 세기말에는 통하지 않는다고요! 제가 그냥 아버지 말씀대로 따를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이에요!”
단호한 윌리엄의 외침은 침묵이 흐르는 거실을 떠돌았다.
누군가의 이런 논쟁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켈리는 엉겁결에 빗?간 탄알을 피하려는 듯이 의자등받이에 움츠리고 앉아있었다.
엠마는 손님과 주인 모두에게 차례대로 마실 것을 준비하느라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나지 못하고 양손으로 귀를 막지도 못한 채 등 뒤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무작정 들어야했다.
“…누구.”
리처드 존스는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에 정한 상대라도 있는 게냐?”
“그게….”
윌리엄은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한손으로 턱을 괴고 무언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는 아버지를. 너무나 크고 위대한 존재라 일찍이 단 한 번도 뛰어넘을 수 없었던 아버지를.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반항심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단정 짓고 있는 듯한 태도에 무심코
‘하지만 그건’, ‘잠깐만요’ 하며 반발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몇 번 어떻게든 반박하려고 싸우고 난 후 언제나 깨닫게 되는 것은 아버지라는 돌 벽으로 둘러쳐진 성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융통성이 없는 아버지의 주장에는 개미 하나 기어들어갈 틈도 없고, 냉철한 사상은 조금도 흔들릴 기미가 없었다.
젊은 객기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반사적으로 하는 아들의 저항을 귀엽게 봐주는 일이 없는 이 아버지는 남보다 훨씬 엄하고 냉정하게 철저히 때려눕히는 것이 진정한 부모라는 듯한 굳은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올려다보고 있는 아버지가 도리어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보다도 ‘높은’ 곳에 있음을 윌리엄은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이 작고 초라한 쥐가 되어 숨어있을 구멍을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물론 우리 존스가에 어울릴만한 숙녀겠지?”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주 밉살스럽게.
그 순간,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왼손이 움찔하고, 손에서 팔을 지나 심장에 걸쳐서 뜨거운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아닌, 머리도 아닌, 사랑을 맹세하는, 영원의 약속을 맹세하는 약혼반지를 끼는 손가락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축 늘어뜨린 왼손의 손바닥은 등 뒤에서 달그락거리며 찻잔을 정리하고 있는 방향을 향해있었다. 그 손은 마치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여성의 단아한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찌르르하고, 끊임없이.
윌리엄은 울고 싶었다.
엠마는 따뜻하게 데운 물속에서 찻잔을 꺼내고 있었다.
앞으로 구부린 그 등 뒤로 모든 얘기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냉철하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의 귀에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꽂혔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안다. 하지만 결혼이란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만큼 같은 나라 사람끼리 하는 게 좋아.”
“같은 나라요?”
뜻밖의 말에 윌리엄은 당황했다.
“전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
윌리엄은 웃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하킴의 하녀가 아니에요!”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대로 「영국에는 두개의 나라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리처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었다.
“즉, 상류계급과 그렇지 않은 것. 이 두 나라에선 문화, 전통,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달라. 말은 통할지 몰라도 전혀 다른 나라지. 세계 제일의 대도시, 우리의 수도 런던은 이를테면 이 두개의 세계 모두에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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