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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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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544g | 153*224*20mm
ISBN13 9788993824216
ISBN10 89938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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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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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길 오셨습니다. 18년 만이라고 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는 발걸음으로 이미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18년 동안 걸어온 길이 멀고도 고단한 길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p.82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미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어떤 책을 읽으니 예수님이 그러셨단다. “너희들 안에 이미 천국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히브리어로 자세한 뉘앙스를 들여다보면 너희들 안에가 아니라 너희들 ‘사이에’ 천국이 있다는 말이란다. 그러니 관계가, 아닐까. --- p.97

저분들은 생을 맹세하고 철창 속에 자신을 가둔 분들, 그 비장함 앞에서 나의 투덜거림은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스님들이 성(性)을 보기 위해 스스로를 산속에 고립시켜 홀로 비정해지듯, 여기 수사님들도 신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비정하게 철창 안에 묶어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은 어쩌면 같은 길일 것이다. --- p.100

시간 속에 묻혀 기억도 사라져갈지 모른다. 꽃은 곧 시들어버릴 것이라 언제나 마음속에서 아름답고 사람은 짧게 스쳐갈수록 오래도록 기억이 나는 것인지……. 아름다운 풍광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다시 꼭 찾아가고 싶은 곳, 프리부르. 그러고 보니 이제껏 세 번의 유럽 여행이 헛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한 번도 ‘사람들’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사람 없는 풍경과 역무원들과 장사꾼들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 p.173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 자격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도 할 서튼처럼 삼십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 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 p.196-197

처음 아르장탕 수도원을 나와 거리를 떠돌면서 나는 희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도원은 꼭 수도원 건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수도원에 그토록 가고 싶어 수도원만 찾아다니는 기행을 하면서 수도원과 기행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그냥 내 삶의 어느 날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 p.206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생은 길고 나누어야 할 것은 아주 많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니까. 밀알이 쪼개져 백 배 천 배의 밀알이 되듯이, 쪼개면 쪼갤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이 지상의 유일한 것, 그게 무엇인지 이제 나는 알 것 같으니까.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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