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는 이곳에서 엄마,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이곳만이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한숨을 내쉬며 뭔가 말을 하려고 애쓸 때 햇빛이 단호한 표정을 한 니콜라스의 얼굴을 비추었다.
“안녕, 아빠. 안녕, 엄마.” 속삭인다기보다는 숨소리에 가까웠다.
“저도 알아요. 제가 계속 살아가길 바라신다는 거, 그리고 엄마, 아빠를 제 마음속에 품기를 바라신다는 거. 아다야, 이건 너한테 하는 작별 인사가 아니야. 사람들이 너는 찾지 못했다고 했어. 그러니 넌 인어 공주가 된 게 분명해. 아주 작고 아름다운 인어 공주 말이야. 널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단다.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니콜라스는 아다를 위해 만든 나무 인형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큰 소리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상관없어. 널 이대로 버려두지는 않을 거야, 내 어린 동생아. 절대로.”
니콜라스는 나무 조각에 키스를 하고 멀리 얼음 덮인 눈 위로 던졌다. 그리고 손을 나팔 모양으로 모아 입에 대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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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두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는 크리스티나 아주머니에게서는 언제나 포근한 향기가 났다. 집에 돌아올 때면 늘 기분 좋게 웃는 얼굴인 한네스 아저씨는 거칠고 고된 일을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그리고 숟가락이 유일한 장난감인 아이들, 에멜리와 헬레나가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 숟가락을 마치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다. 숟가락에 이름도 지어 주었다.
사실 니콜라스에게는 에멜리와 헬레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놀이가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나무 숟가락은 아무리 좋게 봐도 인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별다른 장난감이 없는 남매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그때 갑자기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한네스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두 아이들에게 정말 제대로 된 장난감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다! 바로 1년 전에 나무를 깎아 동생 아다를 위한 선물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니콜라스 자신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슬픈 날이 되고 말았지만, 에멜리와 헬레나에게는 기쁜 날이 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헤어지는 아픔도 훨씬 덜할 것이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해도 좋겠어.” 니콜라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목소리로“집집마다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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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로구나, 니콜라스.”
니콜라스가 웃었다. 이사키가 처음으로 니콜라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순간이었다.
“니콜라스야,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야. 내가 널 노예처럼 부렸던 건…….” 이사키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려는 듯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네가 정말로 나랑 같이 있는 게 견딜 만하다면, 그렇다면…… 물론, 난 이해할 수 있단다. 네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나랑 계속 같이 살아도 좋다는 거다.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그렇게 애를 썼지만 결국 적당한 말을 찾아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니콜라스는 이사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님 곁에 있을게요. 정말 주인님 곁에 있고 싶어요.”
니콜라스를 바라보는 이사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바람이 불면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난단 말이야.” 이사키가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힐마가 이제 정말 꽁꽁 얼었겠구나…….”
니콜라스는 이사키를 부축해 둑 쪽으로 함께 걸어 나갔다.
그때 갑자기 이사키가 멈춰 섰다.
“니콜라스야, 두 가지 일러둘 게 있다. 한 가지는 이제부터는 나를 이사키라고 불러도 좋다는 거야.”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듯 니콜라스가 대답했다. “두 번째는 뭐예요?”
“내가 울었다는 거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알아듣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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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색깔을 원하는 거 맞아?” 아주머니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니콜라스를 바라보며 묻고는 보청기를 귀에다 갖다 댔다. “외투를 정말 빨간색으로 만들라고?”
“네! 빨간색, 빨간색이요! 추위에 얼어버린 코 같은 빨간색이요!” 니콜라스가 코끝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힐라 씨의 모피 모자 기억하시죠?”
“뭐? 보자기?” 메리 아주머니가 물었다.
“모자요, 힐라 씨의 모자요!” 니콜라스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 모자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죠?”
“응, 모자 말이구나. 그래, 알지.”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모자를 어쩌라고?”
“제 외투가 그 모자랑 똑같은 색이어야 한다고요! 아니, 더 밝은 빨간색이면 좋겠어요.” 니?라스가 보청기에 대고 소리쳤다. “잠깐만요.” 그는 외투만 있으면 될까 하고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다루기 힘든 사슴들을 빨간 외투 하나로 당해낼 수 있을까. “혹시 모르니까 술이 달린 빨간 모자도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빨간 바지도요! 빨리 서둘러 주셔야 해요!”
“아니야, 그럴 순 없어. 난 서두르지 않는단다.” 아주머니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대체 왜 그러는 게냐?”
“지금까지는 안 그러셨어도, 이번에는 서두르셔야 해요!” 니콜라스가 큰 소리로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면 충분할까요?”
“그 정도면 허리띠도 하나 해 줄 수 있어.” 메리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아주 큰 버클이 달린 허리띠!”
“좋아요!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니콜라스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 옷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뭐라고?” 메리 아주머니가 되물었다.
니콜라스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아, 아니에요. 됐어요.”
--- p.225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은 아다는 석유램프를 끈 뒤 집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미코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미코가 선물을 포장하고 있었다!
“당신 뭐 하는 거야?” 아다가 물었다.
미코는 아다를 보더니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머리로 침실 문을 가리켰다.
“조용히 해.” 미코가 속삭였다. “꼬마가 방금 잠들었어. 이건 비밀이란 말이야.”
“이건 바보 같은 짓이야.” 아다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럼 우리 아들 니콜라스의 크리스마스를 망치지 않을 더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미코가 따지듯 물었다.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아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당신이 우리 니콜라스에게 선물을 준다 해도 다른 아이들은 실망할 거 아니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미코가 반박했다.
“무슨 말이야?”
미코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남자들이 생각을 좀 해 봤지. 다른 아빠들도 모두 몰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단 말이야.”
“그건 다른 얘기야! 이건 거짓말이라고!” 아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미코가 말을 꺼내고는 거의 다 완성된 선물 꾸러미를 보여주며 말했다. “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니콜라스 아저씨도 전통이 계속되기를 바라실거야. 당신도 나한테 그렇게 말했었잖아.”
---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