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학문이 아닌 감성의 테두리에서 바라본 근대적 풍경에 관한 에세이다. 그래서 근대건축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장소의 감성과 공간의 잠재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2년 6개월에 걸쳐 30여 곳을 답사하면서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건축물의 양식이나 공간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각인되었을 공간의 사소한 기억과 오랜 시간성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아로새겨진 삶의 흔적들이다. 이와 동시에 오래된 것에 대한 막연한 집착과 유미주의를 견제하되, 그렇다고 문화재적 가치만을 좇지도 않았다. --- p.8,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가 보전해야 할 것은 우선 장소의 기억이다. 동대문운동장이 가진 공공의 집단적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해체와 설계안이 필요하다. 옛것에 대한 막연한 감성과 집착에 보존을 주장하는 것도 경계할 일이지만 그 물리적 구조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오랜 시간 속에 형성된 사회의 집단적 경험과 기억을 지웠다가 다시 되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 p.76, 「약장수, 구렁이 그리고 무좀약 - 동대문운동장」 중에서
일본인 건축가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한 서울역사는 조선총독부와 함께 경성의 근대 경관을 대표하는 건물이었다. 정사각형 평면 위에 반원형 돔을 얻는 펜던티브돔의 화려함과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엄격한 고전주의가 독특한 조합을 이루었다. 복잡한 서양건축의 양식사를 알 리 없는 경성부민이지만 서울역사의 문화적 이질성은 근대문물 유입의 신호탄으로 일상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서울역사는 경성 최대 규모의 건축프로젝트로 규모나 화려함에서 일찍이 조선인들이 접할 수 없었던 서양건축이었다. 특히 중앙 현관 상부의 장중한 돔과 화려한 반원형 아치, 또 그 하부에서 높은 천장고로 체험되는 실내공간의 감동은 이전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휘황찬란한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 p.97,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서울역사」 중에서
‘역사경관’, ‘역사도시’라고 하면 사람들은 북촌이나 전주, 안동의 한옥마을처럼 기와집이 겹겹이 늘어선 동네를 떠올린다. 대중의 역사인식은 주로 전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에게 근대는 시간의 깊이와 체험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가끔 근대에 대한 우리의 역사인식은 불완전하며 때론 상황주의에 야합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의 역사도시야말로 현대의 일상성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 p.120, 「곰삭은 시간의 짠내 - 강경」 중에서
건축물은 물리적으로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돌덩어리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인간 본연의 미의식이 반영되면 그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 된다. 인간사회의 오랜 역사 속에 형성된 미적 규범과 질서들이 건축 행위에 투영된다면 건물은 그 자체로 역사의 증표가 되는 것이다. --- p.189, 「정동에 숨어든 붉은 장미 - 주한 영국대사관저」 중에서
구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내 또 다른 기억은 이곳 근처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는 소문이다. 누군가 서대문형무소 근처를 배회하며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한다는 것이었다. 일단의 남성들이 아이들을 강제로 버스에 태우고 사라지는 것을 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리 만무하지만 나처럼 소심한 학생들은 소문을 듣고 구 서대문형무소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B급 스릴러의 시나리오 같은 황당무계한 소문이 돌았던 것은 왜일까? 이 장소의 비극적 역사가 투영된 픽션이었다. ‘감옥’, ‘사형장’, ‘어둠’, ‘독방’, ‘고문’, ‘죽음’, ‘유령’ 등 불온한 단어들이 주변 대기를 떠돌다 초등학생들의 원색적 거짓심리를 만나 소문을 불러온 것이다. 이곳의 잔혹사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장소의 원한과 아픔은 역사가 아닌 우리 작은 기억 속에도 이렇게 남아 있다. --- p.199, 「제3동 62호 독방 연상」 중에서
일반 사람들이 창경궁 대온실을 찾는 것은 건축의 건축적 가치나 양식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곳의 호젓한 분위기에 끌려 오거나 창경원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온다. 그 기억은 사회의 분명한 역사인 동시에 개인의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양산을 들고 이곳 주변을 서성이는 어른들은 분명 저마다 옛 기억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풍경 속에 홀로 남은 창경궁 대온실은 군중 속에 버려진 실어증 환자처럼 그렇게 적요한 그림이 되어 서 있다.
--- p.247, 「빛바랜 봄날의 초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