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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축복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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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572g | 128*188*30mm
ISBN13 9788954644501
ISBN10 895464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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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고르지 않은 축복”을 덮어주는 사람들
도서1팀 김도훈 (문학 담당 / eyefamily@yes24.com)
2017-03-15

소중한 일상에서 누리는 고요하고 경이로운 축복의 순간들

여기, 앞으로 남은 시간이라곤 고작 한 달인 사람이 있다. 가난이 싫어 열다섯 살에 집을 나와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다가 결국 자신의 가게를 차렸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철물점에서 일했던 그는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누구나 마주할 순간이지만 그 끝의 시간이 언제인지 대략적으로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p.182)

삶의 마지막 시간을 통과해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소설 『축복』은 유별나지 않아 힘껏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족들과 함께 아파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과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들. 죽음을 앞둔 그는 인생의 커다란 굴곡이 아닌 평범한 삶의 순간이 소중했노라 고백한다.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에서 누리는 고요하고 경이로운 축복의 순간들. 저마다 그런 시간이 있기에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두 발을 내딛고 살아가고 있을 게다.

“알고 보면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다간 사람이 말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냐고. 그렇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삶이며, 죽음은 삶이 있기에 죽음이다. 삶의 위치에서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어떻게 죽느냐 하는 건 삶을 완성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된 삶과 죽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혼자만의 삶이 아니듯 죽음도 혼자만의 죽음일 수 없는 법. 우리네 삶에는 다양한 관계의 얼개가 촘촘히 존재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내는 시간들이 삶이란 이름으로 기억된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죽음이 남아있는 자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사한다.

삶의 마지막 한 달의 시간을 보내는 대드 루이스 역시 마찬가지. 남은 시간이 오롯이 그의 것만은 아니다. 그에겐 평생을 함께 해 온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사고로 자식을 잃고 중년에 접어든 딸과 비극을 견디다 못해 열여덟 살에 집을 나가 이젠 볼 수 없는 아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웃어주는 이웃들이 있다.

그는 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난 그저 네가 행복한지 아닌지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걸 알고 싶었지.”(p.195)

“축복이 고르지 않게 내리는 것 같군요.” 라일이 말했다. 대드가 목사 쪽을 보았다. “그래요, 목사님. 알고 보면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요.”(p.140)


남아있는 시간 동안 그의 바람은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이다. 내리는 비가 모든 이에게 반갑지 않은 것처럼 축복도 고르지 않게 내리는 세상에서 그저 행복하길 바랄 뿐.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모자란 축복이 되고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덮어주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대드는 어린 자식을 잃은 이후 행복이라고 부르는 걸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딸의 손을 꼭 잡는다. 마주잡은 두 손이 서로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누구도 줄 수 없는 축복이 되었으리라.

이제 대드 루이스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하지만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주 작은 소리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대드의 죽음이 그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픈 사건이겠지만 그의 죽음 이후에도 이전과 동일한 일상을 살아간다. 대드란 존재가 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여전히 많은 일들은 ‘고르지 않은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고르지 않은 축복을 나누며 살아간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도 있다.(이문재 「어떤 경우」 중에서, 『지금 여기가 맨 앞』 수록)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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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포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결국 진실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그는 여름이 끝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 9월 초가 되면 마을 동쪽으로 3마일 떨어진 공동묘지에서 자신의 유해 위로 흙더미가 덮이리라. 누군가가 비석 위에 그의 이름을 새길 테고 그는 아예 존재한 적도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 p.15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잖습니까.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진실되게 살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의 이면을 보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도 용납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전부랍니다. 사랑은 인내하며 무한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참고 견딥니다. 두 분이 남은 삶 동안 함께하며 서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삶이 아주 길기를 바랍니다. --- p.79~80

넌 그애한테 싫증을 느끼게 될 거야. 아니면 그애가 너한테 싫증을 느끼거나. 어쨌든 길게 가지는 않을 거야. 사랑은 길게 가는 게 아니거든. --- p.112

축복이 고르지 않게 내리는 것 같군요. 라일이 말했다.
대드가 목사 쪽을 보았다. 그래요, 목사님. 알고 보면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요.
--- p.140

우리 대부분은 가짜 행운에 만족하는 것뿐이에요. 혼자 살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죠. --- p.185

저는 종종 생각해보곤 했답니다. 이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고 비교하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편이 좋은 걸까요. 그녀는 에일린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걸까요. 그러면 예전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편이 분명 더 나을 거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라일이 말했다. --- p.343

사람들은 불안을 원치 않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확신이죠. 사람들이 주일 아침 교회에 오는 것은 새로운 사상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심지어 오래되고 중요한 사상을 생각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전에도 들었던 얘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평생 들어온 얘기에 약간의 변화만 더한 얘기 말이죠.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가 고기찜을 먹으면서 예배가 좋았다고 말하며 흡족해한답니다.
--- p.345

사람들은 불행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에일린이 말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약간은요. 그녀가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불행에서 불행으로 옮겨다니는 것 같아요.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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