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서 날마다 나란히 걸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결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요 몇 년 동안 나는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도움을 준 성 안토니, 베네딕트 수도사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성 베네딕트, 이오나에 머물며 추종자들을 이끈 성 콜럼바 등 기독교 초기 제자들의 글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줄곧 한 가지 의문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어디 가서 가르침을 얻어야 하나?’ 내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내신 가르침을 나누면,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당신의 체험과 주님이 당신에게 보여주시는 교훈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이 책에 나오는 방법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지 맥도널드의 말마따나 “오직 어느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란 없듯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지 않고 특정한 인물의 심중에만 떠오르는 감정이라는 것도 성립될 수 없다.”
_여는 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법 배우기” 중에서
우리한테도 말씀하실 작정이 아니라면, 이렇게 허다한 이들과 대화한 기록들을 남겨주실 까닭이 없지 않은가? “와아, 좀 보세요. 하늘 아버지께서 이런저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자녀들과 친히 이야기를 나누시는 뭉클하고 가슴 벅찬 장면이 여기 가득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지만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세요. 여러분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거든요”라고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나님은 예외를 줄줄이 열거한 책을 주신 게 아니다. “한때는 내 백성들과 이렇게 교제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예외 모음집’이 크리스천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국산차 운전자에게 외제차의 매뉴얼을 안기는 셈이 될 뿐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무언지를 보여주는 ‘사례 모음집’이다. 하늘 아버지가 우리에게는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얘기는 대단히 비성경적인 소리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_전주곡 :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기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다고” 중에서
“제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만큼 좋은 질문은 없다. 아마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다. 그분만이 이유를 알고 계신다. 자녀들에게 가장 유익한 게 무언지 아신다.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주님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분 뜻에 따르고 거기서 생명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거창한 질문이어서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좀더 작은 일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간단한 질문이야말로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이다. “저 남자랑 결혼해야 합니까?” “가게 문을 닫아야 할까요?” “폐암이 퍼진 건가요?(쓸데없는 걱정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같은 크고 절박한 질문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그건 피아노에 처음 앉는 날부터 모차르트를 치겠다고 나서거나 스키 신는 법을 익히자마자 가장 경사가 급한 슬로프에 도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_여름 : 풍성한 부흥의 계절, 기쁨 되찾기 “간단히 묻고 조용히 기다리기” 중에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는 자녀들에게 행복을, 최상의 삶을 베풀어주시는 데 있다고 믿는다. 주님의 뜻을 자신의 생각보다 앞에 두는 법이 없다. 하나님이 삶의 전부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주님을 전부로 삼지 않는 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 가장 크고 으뜸가는 명령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온전히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제 힘으로 삶을 움직여보려는 사람들이 사방에 넘쳐난다.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을 보면 아주 이상한 존재로 생각한다. 나머지 사람(제 힘으로 삶을 움직이려고 애쓰는)만이 완벽하게 정상적이라고 믿는다.
_가을 : 위기의 계절, 깨달음의 시기 “하나님은 수단이 아닌 목표” 중에서
하나님은 스카우트를 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해주시길 오래도록, 그리고 열심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없었다. 믿음에 관해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열렬한 소망과 기대에 사로잡혀서 주님이 주신 바 없는 약속을 내세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한 의도를 갖고 도와주려는 뜻이 지나쳐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또는 격려해 주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자신의 소망과 하나님의 약속을 혼동하는 것이다. 이른바 ‘예언의 말씀’ 가운데 생기는 오류 가운데 상당부분이 이런 기대에서 비롯된다. 소망과 약속은 서로 다른 문제다. 식구들과 친구들 모두 스카우트의 회복을 바랐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기적이 일어났어야 마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 기도드린다. “예수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십시오. 슬픔에 잠긴 아이들을 도와주십시오. 위로해 주십시오. 스카우트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 주십시오. 여기에 임해주십시오.”
_겨울 : 마음을 지키는 계절, 순종하기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때” 중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한없이 짓누르지 못하게 만들어놓으셨다. 상처를 입으면 인간의 심령은 즉시 보살펴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제 그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드러내서 그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든지, 아니면 무언가에 중독되는 길을 걷든지 선택해야 한다. 굶주려 죽어가는 마음을 영원히 모르는 체 할 방도는 없다. 그 신호는 어느날 갑자기 요란하게 찾아온다. 부엌바닥에 앉아 1리터가 넘는 아이스크림을 꾸역꾸역 삼키거나, 따뜻하게 대해줄 누군가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는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지 모른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위해 이런 역사를 일으키신다. 소망을 일깨우고, 중심 깊은 곳을 자극해서 다시 움직이게 하신다. 지속적으로 심령을 죽여가지 못하도록, 잠시 생명을 주는 것 같지만 금방 중독에 빠지게 만드는 대체물에 희생되지 않도록 이끄신다. 주님은 이런 역사를 통해서 자녀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생명을 좇게 하신다.
_ 봄 : 소망을 회복하는 계절, 새로운 출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처리하는 법” 중에서
여는 글에서 말한 것처럼, 1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어떤 느낌이었고 무슨 음성을 들었는지 소상하게 옮기려고 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신의 사연을 조명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공하는 샘플에 불과하다.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글을 읽는 이들 모두에게 ‘하나님과 이런 관계를 맺으며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줄 만큼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더 큰 소망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실마리가 되어 다들 스스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원수와 맺은 타협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숨이 찰 지경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남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그렇고 그런 인생을 지금껏 계속 이어왔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이제는 과연 그분과 함께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님과 동행하며 대화하는 일은 내 삶의 핵심요소가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_ 맺는 글 “하나님과 함께한 날들의 기록”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