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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5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30g | 153*224*20mm
ISBN13 9788982816666
ISBN10 8982816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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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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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특별한 느낌이 있니?"
내가 물었다. 성재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에 들뜬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푹 꺾었다.
"넌 후회할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애란 걸 알고 있어."
그가 단정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후회할 짓이란 도대체 무언가. 그가 말하는 그 '후회할 짓'을 나는 후회 없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곧 성재는 수줍은 듯 고백을 해왔다.
"나는 널 좋아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눈을 감고 낮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난 널 지켜줄거야."
나는 무언가 맥이 빠지는 걸 느꼈다. 성재는 한숨을 쉬고 나서 진지하게 말했다.
"난 지킬 수 있는 건 지키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
내가 원하는 건 진지한 남자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어쩌면 남자의 폭력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갑자기 병째 입에 대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촛불이 일렁거리더니 저절로 꺼져버렸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블라우스의 첫 단추로 손을 옮겨갔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성재는 새 양초에 불을 붙였다. 방 안이 다시 밝아지자 나는 결국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지 못하고 열이 오른 목만 쓰다듬다 손을 내려버렸다.
--- p. 150
"모두 날 속이려들지 마. 보라구! 이 얼굴 좀 봐! 내 얼굴이 점점 요괴인간처럼 변해가는 게 안 보인단 말야? 난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구. 다들 내가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 시침 떼고 있어. 사람들이 날 처치하려고 몰래 칼들을 숨기고 다니는 거 나, 다 알고 있어."
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다 대고 씹어뱉듯이 소리를 쳤다.
"지랄 육갑 떨고 있네, 병신새끼! 나가!"
그러자 그는 고개를 푹 꺾고 나갔다. 잘 잠기지 않는 녹슨 수도꼭지에서 늘상 물이 새는 통에 귀퉁이 깨진 세면대 한쪽이 녹물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동생이 보고 있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또 하루가 주어졌다. 아, 녹슨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는 녹물 같은 지겨운 시간. 거울 속의 노랗게 시들어가는 얼굴. 혐오스러웠다. 눈까풀이 싸아하게 매워지고 쳐다보던 거울이 부예진다.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모든 감정은 결국 누선을 자극한다. 나는 동생이 혹시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pp. 142∼143
나는 결국 시지프에게 답장을 보내려고 한다. 삶이란 건 숨이 막힐 정도로 아귀가 꼭 맞게 돌아가야 하는 바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굴렁대를 쥐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만의 굴렁쇠를 굴리다가 굴렁쇠를 놓치기도 하는 것. 놓쳐버린 굴렁쇠처럼 가끔은 삶이 주는 그런 우연성. 삶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의 의지를 배반하는 우스꽝스런 것일 수 있는지를 나른 그에게 말하고 싶은 걸까. 그가 답장을 열어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벨리코빅의 그림과는 달리 두 사람이 바다로 향한 방조제를 등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뛰지도 않을뿐더러, 그야말로 터벅터벅...... 두 손을 꼭 잡고서 말이다. 혹시 달빛에 어른대는 긴 그림자만은 바다 쪽으로 끌릴지도 모르겠다. 한데 아이는 계속 자기만 따라오는 달이 신기한지 싫증도 내지 않고 자꾸 고개를 뒤로 빼고 보름달을 쳐다본다. 어쩌면 잃어버린 동그란 굴렁쇠가 하늘에 걸렸다고 아이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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