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은 술을 좋아해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술을 마시며 파전을 맛나게 먹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보던 다른 스님이 은근히 나무라며 자신의 무심함을 자랑 삼아 말했다.
"여보게 경허, 나는 파전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또 그만이라네. 자네는 어떤가?"
"나는 파전이 먹고 싶으면, 장에 가서 파씨를 구해다가 땅을 갈아서 씨를 뿌리고 한철을 키워서 파가 자라면 밀가루와 잘 버무려서 이렇게 맛나게 먹는다. "
그러자 스님은 경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 pp. 205∼206
"이 사람들은 사흘째, 유럽 남자가 물 위에 뜨기를 기다리고 있대요."
"물에 빠졌대요?"
"사흘 전 한낮에 유럽 남자가 저기 붓다 트리 아래에 신발과 생수통과 배낭을 두고 들어가 수영을 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는대요."
"그럼 죽은 거잖아요."
"맞아요. 보기보다 아주 깊어요. 가장 깊은 곳은 수심 25미터나 된대요."
나는 죽은 사람을 담고 있는 호수를 처음 보았다. 아름답고 태연하고 푸른 호수.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래를 하고 남자 몇이 긴 장대를 어깨에 메고 작은 배를 띄웠다. 그들은 장대로 호수바닥을 쿡쿡 찌르고 휘휘 저었다.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나도 마을 사람들처럼 둑 위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배는 곧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물을 던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마을 창고로 열댓 명의 장정들이 몰려가더니 정말 큰 그물을 어깨에 지고 나왔다. 그물을 호숫가에 운반한 장정들은 우두커니 호수를 쏘아보았다. 루드라가 나를 재촉했다.
그물은 다섯 시에 던지게 된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 그냥 자기들 뜻이란다. 고독을 즐기기 위해 혼자 걸어다닌 저 유럽 남자의 가족들은 아직 생사의 소식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저대로 떠오르지 않으면 행방불명, 혹은 실종으로 처리되어 미궁에 빠져 버리겠지......
--- pp. 141∼142
당신은 누구신가요? 감자를 넣은 된장국을 끓여 내게 밥을 해 먹이고, 내가 사는 모든 물건의 값을 깎아 주고, 짐을 옮겨 주고, 잔돈을 바꾸어 주고, 맛있는 집들과 싼 집을 가르쳐 주고, 대신 화를 내 주고, 내 먼지와 재를 닦아 주며 맑다고, 맑다고 주문을 외우고, 내 눈물을 닦아 주고, 아픈 위를 끌어안고 잠들어 가는 나를 지켜보아 주고, 나를 위해 기원해 주고......
당신은 누구신가요? 길에서 만나 잠시 마주했다가 영원히 풀려 떠나가는 여행자들.... 우리는 서로가 화내는 것을 보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고, 상대의 아픔을 위해 눈물을 흘려 준 사이죠. 벗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우린 잠시 서로에게 환한 관음이었나 봅니다.
아침 약속을 어긴 것 정말 사과 드려요. 아침 준비를 위해 새벽에 나가 사온 슬픈 재료.... 마켓에서 산 식빵과 시장에서 산 냉동 요구르트와 과일들과 야채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는 것을 보았어요. 당신은 얼굴이 붉어져 있고......
나는 닫힌 문 앞에서 당신과의 약속을 지나, 지난 날 내가 무산시킨 모든 약속들을 향해 용서 빌었습니다. 약속이란 그를 구하는 일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 어김은 그를 심연에 걸린 줄에서 밀쳐 떨어뜨리는 무참한 공격이라는 것을.... 이제 내 언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내 언어가 거품이 되지 않도록, 늘 약속에 철저할 거예요.
간밤의 꿈에 우리는 감꽃을 구하러 각자 길을 떠났어요. 감꽃이라니, 참 황당하죠. 그런데 감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을 허용받을 수 있는 꽃이라고 당신이 말하더군요. 우리가 허용받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우리가 서로 허용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 pp. 101∼102
"무엇이 제일 아프냐?"
"앞도 뒤도 양 옆도 모두 캄캄합니다. 성냥갑 속에 갇힌 것 같습니다."
"허, 저런...."
스님은 가엾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셨다.
"보살은 성냥갑에 갇힌 자신이 누군지 아시는가?"
나는 그런 류의 선문답이 싫었다. 낯이 간지러워졌다.
"나는 성냥갑 속에 갇힌 내가 누군지 몰라서 늘 고놈을 바라본다네."
세상에.....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갇힌 것이 포박의 고통이 아니라, 응시가 없음이 고통이었구나.....
"늘 자세를 바르게 잡고 고 갇힌 놈을 가만히 보게나. 흔히 명상을 무념무상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 생각을 쫓아내느라 애를 쓰는데, 오감의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상념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명상이란 상념을 끝까지 바라보아서 반전시키는 것일세.... 그래서 무념의 의도 없이 무념에 이르고, 응념의 의도 없이 응념에 이르는 것이지. 모든 허구는 바라봄 속에서 스스로 재가(裁可)되는 것일세. 갇힌 자신이 타자가 될 때까지 바라보게나. 그러면 보살은 바깥에 있지 않겠나. 바깥에서 늘 안의 그를 보살펴야 하네. 그를 구하고, 자유롭게 하고, 도를 주고, 신의를 주고,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돌보아야 하네."
"스님, 자기가 저지른 잘못들, 혼자 알고 있는 죄책감이 속살을 물어 뜯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이야기지. 신은 인간을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네. 실은 신은 선악에는 관심이 없어요. 궁극에는 도덕과 부도덕이 없어요. 선악이 있음은 규칙이며, 규칙의 경계를 넘어 삶이 꿈인 줄 아는 것이 궁극이지. 그러니 세상의 관념으로 스스로 묶은 포박을 푸시게. 다시 묻겠는데 보살은 자신을 아시는가?"
--- pp. 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