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2010 제8회 올해의 책 후보도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리뷰 총점8.2 리뷰 20건 | 판매지수 174
베스트
종교 top20 9주
정가
14,000
판매가
12,600 (10% 할인)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12g | 153*224*30mm
ISBN13 9788936508142
ISBN10 893650814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1장 교회 속의 세상: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2장 비전과 욕심: 방향을 거꾸로 잡은 교회
3장 진보와 보수: 세상과 똑같은 좌우 대립
4장 콘스탄티누스: 세상을 교회 속으로 끌고 들어온 사람
5장 16세기: 세상이 교회를 지배한 시절
6장 중세의 이단: 먼저 실험을 시작한 사람들
7장 질문 바꾸기: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교회
8장 샬롬의 공동체: 교회의 교회됨을 위하여
9장 나가는 글: 실험하는 교회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내가 처음 만난 한국 교회 비판서
도서2팀 송은주(ducia@yes24.com)
2010-02-18
얼마 전 친구가 말했다.

"한국 교회는 말이야. 뭐든 너무 잘하려 들어. 성가대도 연주자도 다 전문 성악인에 오케스트라 악단이야. 심지어 점심 식사 당번들까지도 기를 쓰고 음식을 준비하고 이번 주 음식이 어땠네, 하는데… 나는 그게 참 이상하더라고. 내가 다니던 작은 한인교회에서는 뭐 음식이라고 해봐야 샌드위치였지만, 맛이 있든 없든 다들 그냥 먹었거든? 서툴면 서툰데로~ 무슨 촌평이랄지, 뒷얘기 자체가 없었어. 주차 문제도 그래. 누가 뭘 좀 잘못 세워도 웃으며 넘어 갔어. 서로 잘 아니까.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었달까. 한국 돌아와서 나는 그게 참 이상하더라고."

교회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말미에 10여 년간 외국에서 살다 돌아온 친구가 툭 던진 이 한마디가 나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그걸 '여유'의 문제라고 했지만, 나는 그 이면에서 한국 교회의 단면을 살짝 엿본 거 같았기 때문이다. 대형화 되고, 경쟁적이며, 그래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개인간 소외의 문제까지. 그게 한국 교회 태동의 문제이건 국민성의 어떤 경향이건 적어도 최근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의 함께 겪고 있는 절실한 문제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 나는 현재 소외 중이다. 무엇으로부터? 교회로부터. 자의반 타의반 소외를 시작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청년들이 많이 모이기로 소문난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꽤 괜찮은 교인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작은 교회의 빡빡한 스케줄을 무슨 숙명처럼 묵묵히 버티던 한 기독 청년이었다. 어느 날 홀연 나는 작은 교회를 박차고 나와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갖춘 대형교회로 옮겨탔다. 잘 짜여지고 동역자가 많은 그 교회에서 나는 해외선교니 캠퍼스 전도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교회에서 이렇게 즐겁게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혼 후 직장과 육아 문제로 상대적으로 교회 프로그램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회의가 찾아왔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역설하던 목사님의 설교는 오히려 내 나태한 신앙생활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고, 나는 자주 회의하였다. 일하지 않고 있는 나는 과연 기독교인이 맞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 한때 젊은 청년을 흔들던 그 신선했던 목사님의 설교는 유명한 자기관리 강사의 처세와 다를 바 없어 보였고, 나는 세상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교회의 논리에 혼란스러웠으며, 끊임없이 뭔가 괜찮은 것을 생산해 내고 있지 않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의심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그 와중에 만난 책이다. 그 동안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서들이 꽤 출간되었지만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 책을 첫 비판서로 만난 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나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자란, 그야말로 보수 기독교인의 전형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인이 공식석상에서 기독교인입네~선언하는 게 좀 껄그럽긴 하지만 왜 꼭 안되는지는 이유는 잘 설명하지 못하며, 동성애에 관해서도 성경적인 명확한 근거보다는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의 창조 원리 운운하며 그게 더 본성에 가깝지 않겠느냐고 얼버무리는 보통의 기독교인. 솔직히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구제의 문제를 기관과 국가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도, 그건 교회마다 역할의 문제이지 교회 본연의 임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교회에 비판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보다는 좋은 것을 더 부각시켜줘야 성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두루 거치고 다소 진보적인 듯 보이는 이 법학자의 이유 있는 비판을 들으며, 이런 허술하고 근거없는 생각의 척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척척 합리화시키려는 잘못된 교회 문화'에 그 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질문한다. 왜 한국 교회에는 그렇게 많은 비전 설교가 넘치는지? 왜 기독교인들은 성공해야 더 많이 베풀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하나님은 그 자체로 영광이신데, 굳이 개인을 성공시켜 영광을 받으실 필요가 있으신가?) 우리 나라에는 고난을 받으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는 사람이 왜그렇게 많은지? 왜 한국에는 교회가 버젓이 있는데 '기독교'를 표방하는 기업이며 단체가 그렇게 많은지? 그는 국내외 교회와 교계, 그리고 기독교 문화의 현주소를 성경에 비추어 낱낱이 진단하며, 한국 교회의 외형적인 부흥이 어떻게 본질을 흐리게 되었는지 요목조목 설명해준다.

"교회다운 교회는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정치적이며, 충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그런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로 언제나 로마의 거짓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대학을 세우거나 기업을 만들거나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세월 동안 '기독교+거시기'가 그렇게 큰 힘을 얻게 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자, 교회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교회를 뛰쳐나가 교회 밖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 많은 청년들이 교회에서 누리지 못한 은혜를 선교 단체 활동을 통해 누렸고, 기독교 대학, 기독교 기업에서 오히려 예수님의 모범을 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회의 모습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멀어지기만 했으며, 세상은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1장부터 3장까지 저자 자신의 기독교인으로서의 개인적 이력과 뼈아픈 고백, 그리고 한국 교회의 현주소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교회의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짚어준다. 예수전도단, 법대 기독학생회, 기독법률가회, 한동대 교수 등 등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한 현장 전문가로서의 경험이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4장부터 6장까지는 초기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은 변질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꽤 여러 장을 할애하며 기독교 진리 왜곡의 역사를 훑어준다. 다른 비판서와 질적으로 달리 하는 부분은 바로 7장부터 9장까지. 신약복음의 잘 알려진 이야기를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의 현실에 비춰 풀어낸 저자의 탁월한 해석(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동성애 문제를 '죄'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의 문제로 풀어낸 비유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험들 -13년 동안 집도 차도 바꾸지 않고 13년간 돈을 모아 형제를 도와 온 강남의 어떤 아줌마 모임도 화이팅!, 헌금 봉투에 'ooo 형제에게 드립니다"라고 쓰는 지정 헌금제도(누군가의 어려움은 한다리 건너 듣게 되기 마련이니), 성가대 대신 모든 성도가 10분쯤 먼저 예배당에 나와 예배 시간에 부를 찬송가를 미리 연습하기 등 - 을 소개하고 있다. 결국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진부한 그 이야기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제가 그동안 교회 때문에 느낀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지난 10년간 비교적 진보적인 정치인, 학자, 기자, 시민운동가들로부터 제가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당신은 멀쩡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아직도 기독교에 남아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제 주변에는 교회의 현실에 절망하며 "도대체 교회를 계속 다녀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그 두 부류의 질문자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앞의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 더 이상 저를 '멀쩡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뒤의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 구체적으로 오늘 당장 교회에서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이미 절망하여 교회를 떠난 분들께 이 책이 재도전의 용기를 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 머리 말에서.

저자의 전언처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 가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 책을 읽는 곳곳에서 다양하게 시작되길, 함께 기원해 본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환풍기 장로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쯤, 교회에서 선거를 거쳐 몇 분의 장로님이 선출되셨습니다. 아주 큰 부자는 없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있는 분들만 장로님이 되셨지요. 선거가 끝난 뒤 중등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환풍기 장로’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장로로 선출된 집사님 한 분은 신앙 경력이 짧고 교인들의 지지도 많지 않았지만, 교회 본당에 대형 환풍기를 설치해 준 덕분에 목사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장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겨우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었는데도 우리는 그 장로님 앞에서 “안녕하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하고선 뒤에서는 ‘환풍기 장로’라 비웃었습니다. ……환풍기 장로님도 우리 또래 친구들 중 한 명의 아버지였고, 깊이 알아갈수록 교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본인이나 목사님이 무리하지 않고 몇 년 더 기다렸더라도 교인들의 지지와 축복 속에 충분히 장로로 선출될 수 있을 만한 분이었습니다. ……거룩한 교회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돈이 나름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린 저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남겼습니다.
이후 교회에서 성장해 가는 동안 저는 여러 직분을 정하는 데 돈보다 더 큰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비하면 돈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호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변호사로 대접받고, 의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의사로 대접받습니다. 아무리 신앙 연륜이 짧아도 이른바 ‘사’ 자 돌림 직업을 가진 사람은 쉽게 목사님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며, 교회 의사 결정 구조에도 남보다 훨씬 빨리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14-15쪽)

○영화관식 교회
설교자는 내리 설교만 하고, 교인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 구조 속에서 좋은 설교가 나오기란 어렵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일 대 백, 일 대 천, 혹은 일 대 만으로, 한 명은 떠들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듣기만 하는 ‘영화관식 구조’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한 명의 지혜는 나머지 전체의 지혜를 압도하고, 한 명이 받는 계시는 나머지 전체가 받는 계시를 압도합니다. ……오직 목회가 생업인 목사님들은 주일 예배, 저녁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등 최소한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의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 삶의 현장에서 무궁무진한 간증 소재들을 만나고 있는 신자들은 자기 삶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들은 더 아름다운 설교, 감동을 주는 설교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노력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남이 쓴 예화집, 설교집, 주석집을 읽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 표절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런 한국 교회 목사님들의 모습은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중소기업 사장님에 가깝습니다. 자기 손으로 일군 기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소유욕, 그 기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의지, 그리고 그 기업의 방향과 질서는 자기 혼자서 정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25-26쪽)

○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
개인적인 성공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서도 환영받지만, 시험에 실패하여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누를 끼친 사람으로 평가절하됩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런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때까지 잠수를 타게 되지요. 재수 끝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화려하게 부활한다면 다행이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시험에 실패하거나, 직장을 잃거나, 암에 걸린 사람은 가장 먼저 ‘도대체 교회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며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늘 성공한 사람들만이 넘쳐 납니다. 성공한 사람들만이 넘쳐 나는 교회를 과연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41-42쪽)

○교회와 국가에 책임을 떠맡긴 교회

교회의 할 일을 빼앗아 간 것은 국가만이 아닙니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나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칩시다. 그에게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딸려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우선 목사님과 교인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해 장례를 집전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겠지요.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남겨진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두 배의 돈을 집어넣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적 생계의 문제는 더 이상 교회의 책임이 아닙니다.
……죽은 남편이 보험을 많이 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장례식장에서 듣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과 교인들은 “하나님이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기쁨을 나눕니다. “세상에 없어도 자식을 유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아버지가 있다”거나, “10억을 받았습니다”라고 아내가 조용히 고백하는 보험 광고 속의 세상에 교회도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보험이나 많이 들어 놓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272-273쪽)

--- 본문 중에서

관련자료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인터뷰

1.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은 물론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역시 도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글쓰기는 어디서 비롯하나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 1학년 때 선교단체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성경을 묵상하고, 저녁이면 그 말씀에 비추어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모든 글쓰기는 따지고 보면 성경묵상과 일기의 연장일 뿐입니다. 실제로 일기를 그대로 책에 옮긴 부분도 상당히 많습니다.

2. 법학자로서 인문사회과학 책이 아닌 기독교 책, 특히 교회를 비판하는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합니다.

《헌법의 풍경》,《평화의 얼굴》도 사회과학서적으로 분류되기는 합니다만, 모두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늘 기쁨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신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고, 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법학 책보다 신학 책을 더 열심히 읽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교회에 대해 남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나게 부담스런 일입니다. 신학자도 아니면서 그런 부담을 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뤄 왔는데, 2009년 미국에서 일 년을 보내는 동안 모든 상황이 이 책부터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쓴 책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려서 쓴 책입니다.

3. ‘영화관식 교회’, ‘보험회사에 책임을 넘겨준 교회’ 등 한국 교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성경적 교회와 오늘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다운 교회’ 되기를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것 같습니다. 성경이 ‘낮아짐’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한국 교회는 철저히 ‘높아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낮아지기 위해서는 먼저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이상한 복음이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괜찮다는 교회들도 돈을 모아 가난한 이웃에게 조금씩 가져다주기만 할 뿐, 가난한 이웃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관 같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개인기로 충만한 설교를 듣고 집으로 들어오면 그것으로 땡입니다. ‘세상 속의 교회’로 끝없이 낮아지고 이웃을 섬기며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공동체가 오히려 세상의 상향성 논리에 매몰되어 ‘교회 속의 세상’에 주도권을 내어주게 된 것이지요.

4. 바른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제안해 주셨는데, 그러한 실험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한 바로 그 공동체가 실험을 시작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라면 담임목사님께 무슨 개혁 방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조그만 청년부 단위부터 작은 실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장년이라면 구역 예배에서부터 할 수 있는 실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책 초고를 읽어 보고 전체적으로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사실 한국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인들이 목사님들을 참아 주고 용납해 주고 긍휼히 여기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절반은 넘을 겁니다. 그런 고민을 주변의 형제자매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사랑에 기초한 실천 방안을 찾다 보면, 교회도 훨씬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 책이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5. 책을 쓰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책 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교회에 대해 책을 쓴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를 않아요?” 하고 묻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책 전체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첫 원고가 교회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내용이었다면, 최종 원고는 교회다운 교회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내용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희망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현란한 개인기로 포장된 설교에만 빠져 지내지 말고, 성경 그 자체를 한번 제대로 묵상해 보기를 권합니다. 제 책은 안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기도하면서 사복음서를 쭉 읽고 나면, 정말 멋진 예수님, 생명력이 넘치는 박력 있는 논쟁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셨나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 ‘깜짝 놀람’을 경험하고 나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깜짝 놀람’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저자 김두식 교수 최신간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법조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법학자 김두식 교수가
지금껏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가슴으로 안고 풀어가는 우리 시대 교회론!

법조계의 이단아, 한국 교회를 말하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회 내의 자성의 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가. 출판물 가운데도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 왕왕 출간되고 있다. 그중 한완상 교수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2008), 《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2009, 이상 포이에마), 김진 교수의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등은 한국 교회 안에 ‘예수 없음’을 날 서게 지적하며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 법조계의 이단아로서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제국》으로 불평등한 법의 실상과 법조계의 비리를 특유의 필치로 파헤치며 화제를 모은 김두식 교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교회 고민을 다룬 책,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홍성사)를 펴냈다.
목사를 구약 시대 ‘제사장’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양 여기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가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 책을 쓰는 일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신앙 양심은 한국 교회를 지켜만 보고 있게 하지 않았다. 처음엔 성경답지 못한 교회에 화가 나 글을 써 내려갔지만, 퇴고를 거듭하면서 교회다운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원고를 다듬어 나갔다.
그 때문인지 그의 책은 여느 교회 비판서와 사뭇 다르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며 읽다 보면, 어느새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의 뜻을 담은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 ‘희망’을 품게 한다. 특히 그간 이사, 임지 변경, 유학 등을 이유로 여러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의 독특한 신앙 경험은 사변적이거나 학자연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철저히 평신도로서 느낀 교회의 여러 모습을 듣고 있노라면, 지난날 어느 청년의 자취방에 모여 라면 한 대접에 이야기 나누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 교회 이야기, 내가 다니는 교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 시작하여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16세기 기독교 국가화 된 유럽 교회의 모습, 그리고 역사 속에 나타난 실험적 기독교까지, 인문학적?신학적?문학적?경험적 요소를 총동원하여 ‘교회다운 교회, 예수 있는 교회’를 위한 ‘문제제기’는 물론 ‘공동체적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데 있다. 다행히 그가 제안한 작은 실험들은 몇 명의 동지만 있으면 교회 안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들이기에 기대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헌금하면서 봉투에 “○○○ 형제에게 드립니다”라고 쓰면 그 헌금은 회계를 통해 바로 그 형제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조별 나눔 모임이나 친구들을 통해 ○○○ 형제에게 요즘 집에서 오는 생활비가 끊겼다더라, 또는 과외가 끊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알아서 ‘지정 헌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지정 헌금을 하기 위해 과외를 한 개 더 하거나 남몰래 새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지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정 헌금을 받은 사람들은 누가 준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이 주신 걸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기회가 되면 또 어려운 형제자매를 위해 지정 헌금을 했습니다. ……이런 실험은 성년들보다는 청년부나 대학부에서 훨씬 손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청년부와 대학부에 신실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교회 지도부는 가급적 청년부와 대학부에 개입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20년 전에 젊은이들을 믿고 그런 실험을 허용해 준 교회가 있었다는 게 고맙고 놀라울 뿐입니다. 청년은 좀 실수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하려고 할 때 그걸 지원해 줄 수 있는 교회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제가 제안하고 싶은 실험은 많습니다. 성가대를 없애는 대신 모든 성도가 10분쯤 먼저 예배당에 나와 함께 예배 시간에 부를 찬송가를 미리 연습하고 모두가 성가대가 된다든지, 한동네에 사는 젊은 부부 성도들이 공동 육아를 통해 숨 쉴 여유를 갖는다든지, 공동식사 준비를 통해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인다든지……. (324-325쪽)

대체로 교회에 불만을 품게 되면 다른 교회로 옮겼다가 그 교회에서도 상처를 입으면 아예 교회를 떠나는 게 수순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제안처럼 “교회다운 교회를 상상해 보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이야기가 모여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면, 그 실험이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킬” 것이다. 예수께서는 ‘~을 해볼래?’라고 제안하지 않으셨다. 실천을 강조하며 ‘~하라’고 명하셨다. 실천이 따를 때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

(김두식 교수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으로 ‘높은뜻푸른교회’와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저소득 빈곤층 이웃들을 돕는 일에 이 책의 인세 전액을 기부하기로 약속하였다.)

회원리뷰 (20건) 리뷰 총점8.2

혜택 및 유의사항?
아쉬운 책... 내용 평점2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로얄 n****9 | 2010.02.20 | 추천8 | 댓글8 리뷰제목
먼저 나는 이런책들과 작가들이 많이있어야한다고본다..평신도가 이런글을 쓴다는것..목회자들이 부끄러워해야할일이고. 동시에 그만큼 평신도와사역자들간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책이라고도 본다.. 작가와 또 몇몇분들은 이평신도와목회자를 구분짓는 말에 반발감을 느낄수도있겠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많이 했거니와,...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리뷰제목

먼저 나는 이런책들과 작가들이 많이있어야한다고본다..평신도가 이런글을 쓴다는것..목회자들이 부끄러워해야할일이고. 동시에 그만큼 평신도와사역자들간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책이라고도 본다..

작가와 또 몇몇분들은 이평신도와목회자를 구분짓는 말에 반발감을 느낄수도있겠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많이 했거니와,...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목회자라서 그런가???? 동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몇몇 있었다...

 

먼저, 이단에 대한 부분...왈도파나 카타리파에 대한부분..

그리고프로테스탄트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박해를 가한 부분..

종교개혁자 칼빈도 사형을 집행했고 루터또한 전쟁을 옹호했다..

그리고 여러 기독교의이름을 가지고 박해를 가하고 폭력을 가한 역사..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역사앞에 회개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여기서부터 생각이 좀 나뉜다고 본다..

먼저 생뚱맞은 이야기를 좀 하고싶다.

아포칼립토라는 영화를보셨는지????

멜깁슨감독의 영화인데 마야부족의 내용을 담은영화이다..

길게 쓰면 지루하니. 간단하게 내주장을 쓰자면...

일단은 영화가 재밌으니..영화를 꼭보길 바라며..

멜깁슨감독의 의도를 보고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멜깁슨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다.....

 

멜깁슨은 이영화에서 서양의 침공..아니., 서양의 제국주의화..기독교전파를 옹호한다...물론 그과정에서 무력충돌이있었고 원주민 학살이있었다..

물론 그것은 잔인하다.야만적이다..인간적이지 못하다...

그러나...음..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그 원주민들을 그냥 내버려둬야 했었나??

아니면 잠간 동안의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피를 흘려서라도 남은 그들과 그의 후손들을 영적으로 구원하셔야 했었나???

 

영화는 그것을 궁극적으로 다루고있다고 본다..

그리고 영화내내 나오는 잔인한 풍습과 살인. 인간제사..우상숭배의 풍습들...

 

이미 그 내부에서 몰락되어가고있는 문명들...

 

하나님을 모르고 죄에 물든 그 사람들...

하나님시각에서는???

 

마찬가지로 탈레반..미국이 아프칸을 침공한다고 뭐라하는 사람들이많았지만..

아프간의 탈레반통치하에서 사람들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우상숭배. 여성억압. 독재. 살인.강간. 여성할례...

그들의 민족과 독립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그런 인권억압과 악한죄악들을 내버려둬야 하는가????

 

그렇다고 전쟁을일으켜서는 안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언제까지??? 그게 언제까지 된다고 보는가??

나는 작가한테 그질문을 던지고싶다....

 

과연 작가도 역사를 잘알기때문에...전쟁과 무력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독교가 전파될수있었을까???? 제 3세계에???

그렇다면 미국은 ???? 미국이 전쟁없이 세워진 나라인가??

무력없이?? 미국이 건국될떄에도 엄청난 피와 전쟁과 역사의 사건들이있었다..

 

어떤 나라건 어느역사건 마찬가지다..

이세계는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가 각성하고 회개해야할부분들이 많은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역사를 되돌린다고 해도. 그런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평화는..입으로만 되는것이 아니고 피를 흘리지않아서 되는것이 아니다..

 

그과정속에서 오늘날의 어떤 완성된 국가체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것이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책임을 물을수잇을까...

 

마찬가지로 십자군전쟁도 그렇다...

십자군전쟁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사람들이 많이잇지만..

절대신앙을 가지고있고..이슬람의 세력이 그들을 억압하는상황속에서,,,,

그리고 성지와 유물,,왕권..신앙이 절대적인 중세상황속에서 또..

사단마귀. 이방세력인. 하나님과 대적인 이슬람의 세력들이 성지를 차지하고잇는 상황속에서 당연히 십자군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오늘날도 구약의 논리와 윤리의식이 맹위를 떨치고잇는 상황속에서 십자군들은 하나님을 믿지않는 이방족속들을 멸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왈도파나 카타리파...

 

하나님이 판단하셔야 겠지만...중세의 엄격한 시각의 눈으로볼때 그들은 엄밀한 이단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과 대립할수밖에없었고. 사람들의 영혼을 멸하고 파괴하는 그들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할수밖에 없었다...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행태는 그렇게 정죄될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시대적인 한계랄까..

 

루터나 칼빈도 그시대의 한계성에 갇힌것이라고 본다..

 

오늘날도 이단은 건재하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단과 다른 종교들..

작가의 말처럼 '종교적 불관용이 문제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그들을 관용하고 받아야들여야 되는가????

 

그게 성경적이고 인간적이고 윤리적이고 복음적이고 하나님의 사랑인가???

 

성경말씀을 하나 인용하고자 한다.

'내가 화평을 주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

 

주님은 우리에게화평이 아니고 검이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주러 왔노라고 하셨다..이게 무슨말씀같은가...물리적인 전쟁을 말씀하신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알것이다,..이것은 영적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주님은 작가의 주장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절대적이고 신본주의적이고 꽉막힌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나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수없다.....

 

이말씀이 이미 전쟁을 선포하고있지 않은가///

이미 우리는 종교적 관용을 베풀수없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교주가.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때문이다...

 

그리고..저자가 책에서 내내 말하려고 하는..

그 교회속의 세상에 대한비판.....

 

그러기에 종교개혁도 전쟁을 일으켰기에 피를 흘렸기에..비판할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사상은 나로써도 비판할수밖에 없다.

위에서 내가 말한것과 맥락이 같은데.....

종교개혁을 했기때문에 피를 흘렸다..그래서 종교개혁은 꼭 옳지만은 않다.

라는 것이 저자가 하고싶은 이야기인거 같은데....

그것은 너무 결과론적이고 종교개혁의 영적가치에 대해서 무지한 것인거 같다.

 

종교개혁을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을수있었고 하나님을 만날수잇엇고 개인적으로 성경을알수잇어고 해방과 복음의 자유를 찾을수잇었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종교개혁의 혜택을 누리고잇는것이다..

그후에 일어난 전쟁들과 충돌에 대해서는 필요악...어쩔수없는 인간들의 한계..

위에서 말한것처럼..전쟁중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악한 인간들의 행태지만..그가운데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봐야지..피를 흘리고 전쟁이 일어났기때문에 프로테스탄트도 남들에게박해를 가하고 죽이고 살상했기때문에 나쁘다....이런논리는....

참으로 인본주의적이다..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과 성경이 그 자체가 인본주의적이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

우리는 흔히 이런말을 한다.

동성애는 미워하지만 그사람은 사랑해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죄는 심판하도 지옥에 던져도 그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은 지옥불에 던지시면안되는 것이다.

인본주의의 함정이 바로여기에있다....

 

인간을 귀중히 여기고 소중히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엄히 경계하시는 주님에 대해서 소홀히여긴다. 주님이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는가..

'나도 너를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죄를 짓지 말라!!!

다시는 !!!

 

우리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래야한다고 본다. 불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회의 실험에 대해서/.

글을 읽는내내 불편한 심기를 버릴수가없었다...

 

내가 목회자이기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저자의 말이 맞는 부분도 많이있기도 하거니와....

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때문이다...

 

일단.. 평신도 설교권을 주장하는데. 저자의 이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있는게/.

그렇게따진다면 저자가 일하는 법정에서도 일반사람들에게 판사와 변호사와 검사와 같은 권리를 주어지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가????

 

만인제사장이라는 종교개혁적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전문적인 영역까지 세밀하게 그렇게 다 똑같다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목사에게는 설교권이잇다. 평신도는 교회내에서는 없다.

그게 맞다고 본다. 만약 설교하고 싶다면 신학을 전공하라. 신학교를 가라..

변호사도 마찬가지고 의사도 마찬가지고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가????

 

교회에서 평신도에게 설교권을 주자는 애기는 위에서 말한것처럼 전문성을 상실하자. 모든자격없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주자.라는 말과같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미..선교단체에서는 평신도설교권이있다.

광범위하게 이미 행해지고잇다,.....간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평신도들이 설교를 하고 강의를 하고 목사들 못지않게 많이 사역하고있다..

 

개인적으로..그것들은 반대하지 않는다....그런 사역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많이 역하시기때문이다...

교회에서도 장로나 수준이 있는 평신도가 강의를 가끔한다든가..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설교에 대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말했지만 사법고시 통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변호사를 주고 판사가 되게 하고 검사가되게하면 말이 되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교회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같애서 기분이 상하는데..

목사가 아무나 될수잇는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신학교가 대충 목사를 배출해내는 거 같아서 정말 괴롭지만....

 

암튼 지금 엄격한 과정을 엄밀히 거쳐서 목사를 배출해낸다...

 

그러면. 설교권이 잇는것이다... 목사의 자격이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목사는 교회에서 설교할수있어야 되고 법정에서는 변호사도 할수있어야한다. 법률지식만 갖추면 말이다..나도 그렇게 했으면좋겠다..^^

 

그리고 너무 목사들을 무시하고 낮게 보는 듯한 어투들이 좀 걸린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보여준..목사들이 보여준 것이 그랬겠거니와...

마음이 아프고 반성할점도 많다...인정한다....

나도 목사가 된지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나도 기성세대 목회자들을 보면 갑갑할때가 많다......

 

글을 정리하려 한다....

좀 횡설수설한거 같다..

전체적으로 내가 저자에게 반대를 한다거나 완전히 누구처럼 좌파빨갱이라고 매도하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온것처럼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교회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있는데...반대다.

교회는 비판해야한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상처를 잘라내야

살아나고 건강해질거 아닌가....

 

종교개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역사속에서....

때로는 교회를 지키기위해서 세상권력을 이용하셨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빛이 되는 교회이지만....

 

그리고 교회가 세상권력을 등에업고 횡포를 부리거나

반성경적인 행태를 일삼는 것은 분명히 죄악이고 문제이지만....

 

세상권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것 또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역사속에 계획가운데 있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할까한다...

 

루터가 프리드리히에 의해서 보호를 받은것은 하나님의뜻일까 아닐까...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주장한것은 하나님의뜻일까 아닐까.....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8
김두식을 생각한다 내용 평점1점   편집/디자인 평점1점 진***********신 | 2010.06.20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불멸의 신성 로스쿨 교수' 김두식이 2009년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펴냈다. 2009년이면 로스쿨 개원 첫해라서 그야말로 혼돈 속에 일년을 보냈는데, 그런 혼란을 피해 미국에서 안식한 김두식은 참으로 행운아라 할 수 있겠다. 교회 속에 들어온 세상, 김두식 김두식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세속화된 교회;
리뷰제목

'불멸의 신성 로스쿨 교수' 김두식이 2009년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펴냈다. 2009년이면 로스쿨 개원 첫해라서 그야말로 혼돈 속에 일년을 보냈는데, 그런 혼란을 피해 미국에서 안식한 김두식은 참으로 행운아라 할 수 있겠다.


교회 속에 들어온 세상, 김두식

김두식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세속화된 교회를 고발한다. 그런데 김두식이 변호사이자 교수가 아니었다면, 기독교계에서 지금처럼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형법학자' 김두식의 연구실적은 정말로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기독교계가 (정확히는 '복음주의 운동권' 패당이) 변호사/교수라는 것에 눈이 멀어서인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무례하고 공격적인 김두식의 동료들

지금의 김두식이 있기까지는 김두식을 생산하고 소비해온 집단, 이른바 기독교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들의 작태는 김두식이 고발한 '무례하고 공격적인 기독교'가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그네들은 자기네와 뜻이 맞지 않는다고 '보수'교회 앞에서 시위한다며 예배 등 교회업무를 방해하고, 뉴스앤조이나 복음과상황에 '기사'라는 이름으로 막말을 쏟아내고, 나이 어린 청년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교회생활에 대한 개인의 감상 몇 줄 올린 것을 "보수교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마구 퍼가서 명예를 훼손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광우병 시위 등 사회적인 이슈 터질 때 사람들 돈 모아서 신문 광고 내고, 최근에는 천안함 음모론 퍼나르는 중이다.

 

평균과는 거리가 먼 김두식의 초상

김두식은 목회자들이 삶의 현장과 괴리가 있음을 지적하지만(p.24) 김두식의 삶은 평균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책에서는 '그럭저럭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라고 되어 있지만, 고대 법대 86학번인 김두식이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고시열풍이 불었고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까지 늘어났던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빠른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평균연령은 30세 남짓이다. 거기에 서울지검 검사-미국 코넬 LL.M-한동대 교수-경북대 교수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은 남들이 질투할만 하다. 다만, 그렇게 잘 풀린 덕분에, 삶의 현장과는 괴리있는 목회자들에 대한 김두식의 문제제기는, 곧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로스쿨과 미국

김두식은 친미 기독교를 비판하였지만(pp.74-), 그 자신은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추종하고 있다. 최소한 명문대 학사 출신에(외국 박사도 적지 않다), 3년간 학비 1억원 이상 들여야 하고, 로스쿨 교수들의 수업으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신림동 사법시험 학원 강의를 들어야만 하며, 변호사가 되어도 대다수는 기업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길을 걸어야 하는 제도를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로스쿨 학생들이 김두식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예컨대 인권문제)에는 무관심하고 [형법요론](사법시험 수험서)만 눈에 불을 켜고 회독수 늘리려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김두식은 로스쿨의 현실을 보며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로스쿨은 김두식과 그의 동료들(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법과사회이론학회 등)이 설계한 그대로,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제기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를 드러내며 굴러가고 있다. 어쨌든 자신(들)의 뜻대로 굴러가고 있으니, 문제점을 보거들랑 회개를 할 일이지 '기득권층' 탓할 것이 아니다.

아울러 나는 김선일에 대하여 비아냥대던 목사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pp.90-91)을 보며, "로스쿨 제도 시행되면 가장 불쌍해지는 인생이 박사과정 공부하다가 군대간 학생이다"라고 낄낄거리던 김두식의 동료교수 생각이 났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이 되면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사망선고를 받게 되니, 박사과정생은 그야말로 갈 데가 없다는 의미이다. 자신도 같은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었음에도, 후학들을 조롱하는 그 교수에 대하여 김두식도 나처럼 분노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 그래서 동성애가 죄란 말입니까, 아니란 말입니까?

동성애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맡기라. 법학자, 그것도 범죄와 형벌을 논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형법교수가 동성애에 대하여 죄인지 아닌지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 말씀을 핑계로 답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옳을 지 모르겠으나 형법교수로서는 직무유기이다. '평균적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문-사-철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 공부를 하느라, 성문법인 성경, 판례법인 여러 전통들을 검토하여 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는 일에는 익숙치 않아 보인다. 김두식은 내면의 죄의 본성과 싸우느라 남의 죄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p.250), 정말 그렇다면 교수직을 사임하기를 바란다.

 

그나마 괜찮은 ‘서울’에 있는 교회

김두식은 경북대 교수인데,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주로) 서울 집을 떠나 대구에서 비싼 방 얻어 공부하고 있으며, 아마도 상당수는 대구지법 앞에서 개업을 하려 할텐데, 자신은 매주마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대구에는 그렇게 교회가 없는가?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0
보이지 않는 교회를 새로 건축하자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참* | 2010.02.08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비가 내리는 날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있는데 집배원이 초인종을 누르고 가져다 준 우편물에 두 권의 이 책이 있었다.블로그쪽지로 내게 책을 보내겠다고 하신 분에게 쪽지로 주소를 보냈는데, 쪽지에 이름을 안 써서 다시 이메일로 보냈더니 출판사의 두 사람(?)이 따로따로 보낸 모양이다. 이거 감사해서 안 읽을 수가 없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진;
리뷰제목
비가 내리는 날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있는데 집배원이 초인종을 누르고 가져다 준 우편물에 두 권의 이 책이 있었다.
블로그쪽지로 내게 책을 보내겠다고 하신 분에게 쪽지로 주소를 보냈는데, 쪽지에 이름을 안 써서 다시 이메일로 보냈더니 출판사의 두 사람(?)이 따로따로 보낸 모양이다. 이거 감사해서 안 읽을 수가 없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진도를 낼 수 있는 편인데 이 책에는 내가 모르던 교회사를 묘사한 내용이 많아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건너뛰라고 한 배려를 이해할만하다.
김두식교수의 책을 몇 권 읽었고 김두식 교수랑은 10년전쯤의 온라인 메일을 한번 주고받은 사이였다고 지난번 감상문에 쓴 바 있는데
동시대를 살았고 같은 기독교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이로서 그의 글이 반갑다.
사실 요즘 교회가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지난 번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란 책의 감상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기독교가 당하는 비난의 근거는 보이는 교회의 믿음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잘못에 기인한 바가 많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이고 거기에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완벽한" 모델의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가 개혁을 포기하고 기득권의 자리에 오른 순간 교회는 타락해온 것이 교회사가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종교개혁을 피상적으로만 알던 나에게 김교수는 그 피비린내나는 시대상을 고발한다.
교회가 민감하게 다루는 '이단'론에 대해서도 김교수의 지적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흠잡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언급한 100주년 교회의 장로, 권사 지칭문제가 '이단'은 아니지만 '면직'사태로 확대된 말도 안되는 일이 우리 교단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당위를 잊어버린 순간 세속화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위로받고자 찾은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교회답지 못한 것이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험회사에 대신 내줬다는 저자의 지적은 새롭다.
저자의 지인들이 함께 벌인 5년 프로젝트도 신선하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저자처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공동체원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교회내의 인간관계가 아쉽다.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기독교인의 증가는 정체 혹은 퇴보하는 이 시대에 그 옛날 아름다운 교제와 나눔이 있던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면 교회는 절망적이다.
저자의 고민은 적어도 성경을 읽고 혼자서 공부하거나 함께 공부한 경험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봤을 고민이다.
문제는 저자처럼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하지 못한 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지...'하며 합리화하는 게 대부분이란 점이 아닐까.
교회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근거로 율법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예수님이 비판하신 유대교회당과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이런 고민하는 모든 평신도와 목회자들에게 '전통'이 아닌 '성경의 본 뜻'을 알게 하는 수단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한다.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댓글 0

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기독교인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네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g***e | 2018.06.17
평점5점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로얄 사*****스 | 2016.10.13
평점5점
많은 개신교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g*******e | 2015.03.18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2,6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