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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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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346g | 128*188*30mm
ISBN13 9788975279065
ISBN10 897527906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찐 계란 교장 선생님 건너편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앉아 있다. 검은색 양복을 말쑥이 차려 입고 넥타이도 맸다. 옷차림이 늘 엉망인 아버지와 정반대다. 교장 선생님이 그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소네자키 카오루입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교장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겠구나. 실은 지난번에 치렀던 잠재능력 시험 건 때문에 불렀다.”
불길한 예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잘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려오다니……. 혹시 이름 쓰는 걸 잊어버렸나?
교장 선생님은 내 생각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험에서 자네가 전국 1위를 했다.”
땡땡땡! 머리에서 종소리가 났다. 어어어? 뭐라고? 그럴 리가? 너무 놀라서 넋이 나갈 지경이다.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일본에서 1등을 하다니……. --- p.11

스즈키 교감 선생님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소네자키가 일전에 치른 전국통합잠재능력시험에서 전국 1등을 했다.”
교감 선생님은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믿을 수 없지만.”
(……)
“교감 선생님! 중요한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소네자키는 중학교를 그만둬야 하나요?”
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미안, 미안! 소네자키는 학교를 그만두지 않는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 도죠 대학 의학부로 가서 연구할 거다. 물론 중학교 공부도 병행할 거고.”
앗! 이럴 수가!
지리하고 따분한 새장에서 탈출한다는 꿈은 망상에 불과했단 말인가! 결국 짐만 잔뜩 늘어난 셈이잖아?
어째 이런 일이!
‘무엇이든 지나친 건 좋지 않다. 적당한 것이 제일이다.’
나는 사실 그게 무엇이든, 일본 제일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의대에 들어가고 싶어 한 적도 없다. 그저 잘 아는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풀었을 뿐이다.
그것이 화살이 되어 내게 돌아오다니! --- pp.25-27

후지타 교수가 나를 보며 기분 좋게 말했다.
“잘 왔네. 우리 후지타 연구실에. 이것이 자네에게 주는 내 선물이네.”
책상 위에 천을 덮어 놓은 무엇인가가 있다. 무엇일까? 내가 흥분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는지 후지타 교수가 씩 웃으며 천천히 하얀 천을 걷었다. 마치 연극배우처럼.
“짠!”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산처럼 쌓인 책들이 나타났다. 세어보니 모두 10권이었다.
“앞으로 자네가 읽어야할 최소한의 참고서일세. 연구에 필요한 것들이지. 이것들을 다 읽어오도록.”
네? 지금 뭐라고요? 이 10권의 책을 전부 읽어오라고?
“이것이 자네에게 주는 내 선물이자 첫 과제네.”
현기증이 일었다. 만화라면 몰라도……. 나는 기가 차서 후지타 교수에게 물었다.
“저기, 만화판 해설서 같은 것은 없습니까?”
그 순간 후지타 교수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나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p.63

후지타 교수는 막다른 방문 앞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았다.
“소네자키 군! 하나만 주의하게. 지금 통과한 복도 좌우에 있는 문은 결코 열면 안 되네.”
후지타 교수의 단호한 말을 이 복도에서 들으니 독특한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
“저 방들은 예전부터 해부된 사람들의 장기를 포르말린에 담아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야.”
“섬뜩하네요. 교수님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후지타 교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자네한테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지?”
막 지나온 복도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시체들이 쌓여 있다니!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다잡고 후지타 교수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 pp.94-95

모모쿠라 씨는 걱정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
“정말 단 2주 만에 10권 전부 독파하고 이해했어? 적어도 2개월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해줬어야죠. 그럼 미타무라에게 지도 받는 것을 2개월에 맞춰서 할 수 있었잖아요! 그때 아버지의 말이 폐부를 찔렀다.
“실수는 느끼는 순간 고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좋은 대응책이다.”
잠시 ‘진실을 고백할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검은 학생복 차림에 키가 큰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의 선배인 슈퍼 고등학생 의학도인 사사키였다.
아무 생각 없이 사사키 선배가 손에 들고 있는 병을 봤다.
오, 맙소사! 일순 내 몸은 망부석이 되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 그것은 적출한 안구였다. 물속에서 흔들거리는 안구가 나를 흘기는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두워져 가는 눈 앞의 광경 한구석에서 사사키 선배의 왼쪽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 pp.96-97

얼떨떨해서 정신이 없었다. 영어도 모르고 논문의 내용도 모르는데 후지타 교수는 내 대답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흥분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복사본을 줄 테니 내일 아침까지 전문을 외워 오도록 하게. 겁낼 것 없어. 논문 문장은 중학교 영어 정도고 단어만 특수하니까. 여기서 1개월 정도 공부하면 익숙한 것들뿐이니까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일 미디어를 불러 기자회견을 해야지. 어쩌면 영어로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군!”
전문 암기라니? 잠깐만요, 선생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기, 내일은 중학교에 가는 날인데…….”
후지타 교수는 한심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네이처〉지야! 노벨 의학상이라고. 보잘것없는 의무교육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아!” --- p.122

방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형과 누나들이 여럿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몇 명씩 은색 책상 주변에 모여 고개를 숙이고 속닥이고 있었다. 그런 책상이 전부 30개는 될까? 그 주변을 팔짱을 낀 선생들이 뚜벅뚜벅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모모쿠라 씨와 아카기 씨 그리고 백발의 쿠사카 교수를 발견했다.
안심도 잠깐이었다. 문득 은색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맙소사! 은색 책상 위에서 발견한 것. 그것은 갈색으로 굳은 사체, 사체, 그리고 또 사체였다.
나도 모르게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 p.162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철학자 같았다. 언제 이런 사진을 준비했을까?
“그는 일류 의학전문 잡지인 〈매그니피슨트-메디컬-아이〉에 논문을 투고해 한 달이라는 이례적인 스피드로 게재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일류 잡지? 이례적인 스피드?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이것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잖아. ‘매그니튜더슨슨’은 인기가 없기 때문에 응모 수가 적어 응모만 하면 쉽게 게재된다고 했다고.
미소 짓는 후지타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했다.
“소네자키 군의 잠재능력에는 놀랄 따름입니다. 그는 보통 의사들도 읽으려면 반년이나 걸리는 두꺼운 전문서적을 불과 하루 만에 독파했습니다. 그 두뇌 능력에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잠시만요, 선생님! 최소 열 배는 과장된 말이잖아요!’ --- p.183

모모쿠라 씨는 내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온 김에 천재 중학생과 꼭 토론을 해보고 싶어서 내일 모래 여기로 오기로 했어.”
네에~에! 잠깐 만요 선생님! 내게 영어로 말하라는 뜻인가요? 게다가 세계적 연구자인 오아프 교수와? 말도 안 되는 일을 내게…….
“물론 네가 영어를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사쿠라 TV가 냄새를 맡고 대담을 방송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어.”
잠깐만요! 그래서 받아 들였어요?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수밖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내일 모레는 미안하지만 중학교에 가는 날인데요.”
모모쿠라 씨는 한숨을 쉬었다.
“내일이 등교 일이지. 후지타 교수가 아까 중학교에 전화로 확인해서 일정을 조정했으니까 소네자키 군은 도망 칠 곳이 없어.” --- pp.196-197

후지타 교수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조소의 눈빛에 나는 오한이 났다. 후지타 교수의 입이 열렸다.
“어쩌면 소네자키 군이 책임을 져야할 시기가 왔는지 모르겠군.”
네? 제가 책임을 진다고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 제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나요?
후지타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보다 낮고 음산했다.
“소네자키 군, 이제 남아 있는 수단은 모든 사람 앞에서 자네가 ‘잘못된 결과를 냈습니다’하고 용서를 구하는 거야.”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 논문을 쓴 사람은 후지타 교수고 실험 대부분을 한 사람도 모모쿠라 씨인데……. 나는 기가 막혀버릴 지경이었다. 나야말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째서 내가 용서를 구해야만 하는 것인가? --- p.251

나는 벌떡 일어났다.
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후지타 교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속였습니다. 후지타 교수님의 설명은 완전히 다릅니다.”
회의실이 침묵에 사로잡혔다.
“무슨 말이지? 어디가 다른데?”
침묵을 깨고 무라야마 기자가 물었다. 옆에서 후지타 교수가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내 종이 풍선은 더 이상 찌그러지지 않았다.
“논문의 시퀀스는 정말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추가시험에서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전에 오아프 교수가 지적한 대로였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타 교수가 신음 소리처럼 떠들었다.
“엉터리야. 아무런 증거도 없어.”
후지타 교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후지타 교수님은 알고 계시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후지타 교수가 일어나며 나를 ?겼다.
“중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봐주니까 뒤에서 그런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아버지한테 상담 받아 속임수를 배웠어. 자네 아버지가 세계적인 게임이론 학자인 소네자키 신이치로 교수라며…….”
후지타 교수의 공격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증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 pp.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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