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굴리말라의 고백
손아귀에 쥔 칼이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미처 지난 일을 후회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이 태산처럼 밀려들었습니다. 한마디 말로 미치광이를 일깨운 그분은 진정 부처님이셨습니다. 전 목걸이를 벗어던지고 부처님의 발자국에 예배하고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선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오라, 비구여.”
그날 밤, 피와 땀이 엉켜 붙은 머리카락을 자르며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 머리를 깎았듯이
결박 또한 그같이 버려라.
결박이 없어지면 큰 과보 이루고
근심과 고뇌 다시는 없으리라. --- p.30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낸 빠따짜라 비구니
‘여인이여, 울음을 멈추라. 그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대는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는 것이다.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대는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는다. 그 아이가 오고 간 길을 그대가 안다면 그대는 아이 때문에 이처럼 비탄에 잠기지만은 않으리라.’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뵙는 듯 그 음성은 너무도 따스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이야 살만큼 살았다지만…… 그 어린 핏덩이를 눈앞에서 잃어야 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대에게 왔을 때, 그대는 그 아이를 청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겨우 며칠밖에 머물지 않았다고, 그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떠났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
다시 터져 나오는 울음 너머로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기약 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기약 없이 떠나갔는데, 무엇을 비통해한단 말인가? 그 아이와 너의 인연은 이것이었다. 그 아이는 이제 다른 길을 따라갈 것이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긴 모든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마련이다. 사랑과 은혜로 뒤얽힌 삶은 이별과 비탄의 고통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되돌아 흐르지 않는 강물처럼 무상하고, 소나기 끝 무지개처럼 허망한 것이 인연임을 그대가 깨닫는다면, 그대의 슬픔은 곧 사라지리라.’--- pp.125-126
마지막 언덕까지 배웅해 주신 부처님
오늘 하루 석양으로 기우니
이 목숨도 따라 줄었네.
말라가는 옹달샘 물고기 신세
여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사람의 목숨 낮밤과 같아
잠시 머물렀다 곧 변하며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같아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부처님께서 대중을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이 비구만 옹달샘 속 물고기 신세이고 그대들은 살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는 자신의 몸이 어제나 오늘이나 같다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내 몸도 저 강물처럼 영원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아, 그대들이 부러워하는 강물을 보라. 세차게 흐르는 물살의 앞 물결은 뒤 물결이 아니고, 뒤 물결은 앞 물결이 아니다. 한 번 떠나간 물결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밀려오는 물결 또한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다.” --- pp.172-173
교만을 버린 꼿티따
영 마땅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고따마라는 자는 한술 더 뜨는 자였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마을의 장로들이 찾아왔는데도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았습니다. 괘씸한 마음이 치솟았지만 노여움으로 마음의 빈틈을 보일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예의도 차릴 줄 모르는 젊은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필요까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소매를 털고 그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결코 반갑지 않을 방문에도 그는 가볍게 눈을 내려뜨고서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한참을 노려보다 한마디 던졌습니다.
“젊은이, 나는 어떤 법도 인정하지 않고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네.”
“인정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은 인정하십니까?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짬도 없이 메아리처럼 돌아온 그의 대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서운 독을 가진 뱀이 제 꼬리를 물 처지에 놓였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한번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물은 적이 없었고, 누구도 나에게 이와 같이 되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남의 턱밑에 들이밀었던 날카로운 회의와 비판의 칼날이 순식간에 나의 턱에 겨눠져 있었습니다. 당황한 난 엉겁결에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엇도 인정하지 않고 무엇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마저 나는 인정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다네.”
젊은이는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다면 무슨 까닭에 일부러 저를 찾아와 묻지도 않은 말을 저에게 던지는 것입니까?”--- pp.252-253
왁깔리의 마지막 여행
“슬퍼하지 마라, 뿐니야. 나의 죽음은 길고 편안한 휴식이란다. 마지막으로 세존께 예배드리고 싶구나. 힘들더라도 죽림정사가 보이는 검은 바위 언덕까지 날 데려다오.”
벗들이 만든 침상에 누워 멀리 죽림정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을 무렵입니다. 한 젊은 수행자가 다급히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잠시 멈추십시오. 존자 왓깔리여, 세존께서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어리석고 아둔한 이를 평생 행복 속에서 키우시고, 결국은 피안의 언덕에 오르게 하신 삼먁삼붓다의 마지막 말씀을 감히 누워서 들을 순 없습니다. 벗들의 도움으로 땅에 내려선 전 겨우 합장하고 물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이른 아침 대중을 모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른 새벽 두 명의 천신에 나에게 찾아왔다. 한 천신은 왁깔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다른 한 천신은 왁깔리가 이미 번뇌로부터 해탈하여 완전한 열반을 얻었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존자 왁깔리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부끄러움 없이 진리의 길을 걸은 그대의 삶은 훌륭했다. 오온에 대한 탐착과 갈망을 떨쳐버렸다면 죽음은 그대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으리라. 그대 왓깔리의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다.’”
--- p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