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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스미다

그림에 스미다

: 그대에게 띄우는 50장의 그림엽서

리뷰 총점9.1 리뷰 8건 | 판매지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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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552g | 148*210*30mm
ISBN13 9788961960601
ISBN10 89619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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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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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러질 듯 울어대던 딸과 하얗게 질렸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는 해가 넘어가는 창가에 누웠다. 세 사람 모두 지쳐 있었고 잠이 드는 건 노을이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아마 엄마도 같이 쓰러졌을 것이다. 유난히 팔베개를 좋아하는 남매를 품고 나른한 안도감에 몸을 적시며 생각하셨겠지, ‘거친 하루였다’고. 하지만 난지와 나는 잊을 수 없는 무용담과 우애의 맛을 쩝쩝거리며 엄마의 젖무덤을 베개 삼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재밌는 하루였다는 듯이. --- 1장 '달려라 난지' 중에서

버찌의 맑고 깊은 눈을 보며 집안에 들어설 때, 세상은 내 것이었다. 행여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지나치면, 졸랑졸랑 쫓아와서 눈을 껌벅이던 막둥이. 우린 지금도 어딘가에서 겁에 질려 나와 동생을 찾고 있을 버찌의 눈매를 상상하고 한다. 그의 노년과 낯선 두려움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경을 치면서 --- 1장 '미안해 버찌야' 중에서

사랑이 지난 후엔 사랑이 온다. 사랑만이 다시 온다.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비슷하고 더 아플 수 있는 낯익은 사랑. 그렇게 해서 시간에 더께가 앉고 먼지가 낀다. 다칠지도 모르는데 또 시작하는 것. 사랑 후에 남는 것들이 얼마나 분분한지 생각하다, 그것조차 없었으면 어떻게 버텨냈을까 싶어지는 것. --- 2장 '이별이 남겨 놓은 시간' 중에서

인간에게 평생 부담이 되는 말이 있다면 ‘시작’일 것이다. 어떻게든 잘하고 싶고 좋게 보이고 싶어서다. 그래서 준비부터 철저하고 빈틈없이 하는 사람이 있고 무조건 덤벼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방향에서든, 시작이란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2장 '처음엔' 중에서

심신이 메말라서 건조주의보가 내릴 것만 같으면, 어린 날의 물놀이가 생각난다. 노란 물방울이 그려진 우의와 장화가 있었다. 그걸 신고 싶어서 물 호스를 들고 마당 끝까지 걸어가서 다시 출발 지점으로 거슬러 왔었다. 세례를 받는 아이들처럼 다소곳해지는 화초들을 보면, 식솔이고 참모 같았다. 그래서 잊지 않고 물을 줬나 보다. 자박자박, 물김치에 실파를 재우듯이. --- 3장 '눈물의 전통' 중에서

방은 정사각형 구조여서 어디에 누워도 바다가 포착됐다. 게다가 나의 눈높이와 벽이 뚫린 위치가 날나해서 자다 깨도 바다, 뒤척이다 봐도 바다, 베개 위치를 바꿔도 바다, 바다… 먼지처럼 바다가 온 방을 채워 놓고 있었다. 평생 볼 바다를 한꺼번에 보는 것처럼 물찬 육신의 밤. 어린 날에 본 바다까지 생각나서, 잠을 설쳤다. --- 3장 '바다' 중에서

공항이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수용소 같은 곳. 함부로 갇히거나 탈출할 수도 없는, 유쾌한 수인(囚人) 생활. 기다림과 기다림만 있고 헤어짐과 헤어짐뿐이지만 다시 온다는 여운이 남는 오작교 같은 것. 그것이 내 지론이다. 그래서 천장의 조명은 늘, 달빛 같았다. 빠르고 신속하기 위해 어떤 소음도 차단되도록 설계됐지만, 옆자리의 담소가 고스란히 들려올 만큼 밀착된 공간들. 게다가 착륙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무언가에 대한 동경도 만만치 않았다. 그 야릇한 떨림이 공항이 지닌 숨은 매력 아닐까. --- 4장 '공항' 중에서

행여 그 투정이 입 밖으로 나올까 봐 주둥이를 막고 도망쳐 버리는 곳. 거기가 극장인 때도 많았다. 울고 싶어서 수영장에 가는 것처럼, 결론이 안 나는 생각 좀 해보자고 택했던 곳. 아무리 무거운 심장을 걸쳐 놓아도 넘어가지 않는 등받이 의자,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며 시야를 막아 주는 동영상이야 말로, 사고(思考)뭉치 최고의 피난처였다.
--- 4장 '극장에 숨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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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봄내의 글을 좋아한다. 마르고 닳도록 성장통을 껴안고 사는 그녀의 삶과 무늬에 반한다. 그녀의 맑은 글을 마주하고 있으면 머리 안에 파릇파릇한 풀들이 솟고 심장 한쪽이 보온밥통처럼 데워진다. 세상 모든 관계가 햇살에 잘 마른 홑청 같아진다. 멀리로 떠난 길 위에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그림들로 번번이 부자가 되어 돌아왔으며, 돌아와서는 그것들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천사처럼 나누려 하였다. 이토록 여리고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나눠 받았으니 세상은 잠시 평화로워질 것이고 조금 더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나는 이 한 권이면서 동시에 여러 권인 듯한 추억의 양이 부럽다. 세상의 아름다움 모두를 담고도 남을 톡톡한 엽서의 결을 지닌 그녀 마음이 있어 나는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이병률(시인)
비가 그쳐가던 어느 저녁, 그녀에게 ‘하나 둘 접히는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마치 꽃봉오리 같다’고 씌인 쪽지를 건네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글은 빛나는 정원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린 손자가 귀여워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할머니, 설렘에 잠 못 이루는 연인, 텅 빈 방에 누워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 수많은 사연을 가진 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앉은 공간. 그 정원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꽃을 찾고 싶다면 언제든 펼쳐보시길.
허윤희(CBS FM '꿈과 음악 사이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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