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만 찾지만, 사실은 쓸모없는 것도 소중한 거야.” “네? 쓸모없는 게 소중한 거라고요?” 평소 나는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할아버지는 쓸모없는 것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알쏭달쏭한 말로 남을 감동시키는 희한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 p.29
“저는 편하게 살고 싶은데.” “다들 그러더구나.” “할아버지는 편하게 살고 싶지 않으세요?” “나는 많이 힘들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편하게 살고 싶지도 않아요. 몸뚱이가 있으니까 몸뚱이를 움직일 수 있는 만큼은 일하고 살아야 사람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 대신 일을 해야 하는 법이거든. 남들 고생시켜서 자기 편하게 사는 걸 도둑놈 심보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구나.” --- p.35
그 뒤에 다른 주민들이 나서서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자 부녀회장은 오히려 호통을 쳤단다. “그렇게들 생각하시면 아파트 관리비를 더 내셔야지요. 직원들 복지 시설이다 뭐다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면 그 돈은 누가 내죠? 여러분이 내실 거예요? 괜히 관리비 많이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잘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엄마도 관리비 올린다는 말에 기가 죽어 별다른 대꾸도 못 하고 속으로만 야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 p.42
할아버지는 냉동실에 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주었다. 나는 얼른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민주야.” “네.” “너는 원숭이가 약자라고만 생각했지, 주인과 동등하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은 것 같구나.” “원숭이하고 주인하고 동등하다고요?” “그렇지.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지.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원숭이라면 원숭이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겠니? 그런데 하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이나원숭이나 그저 똑같은 생명 아니냐? 하늘은 인간이라고 해서 더 사랑하고, 원숭이라고 해서 더 미워하지 않겠지?” --- p.65
“뭐가 그렇게 재밌어?” “넌 재미없어?” “나? 나야 요리 배우는 게 재밌지.” “나도 목공 배우고 집 짓는 걸 배우는 게 재밌어.” “재밌으면 그만인가?” “뭘 더 바래.” “그런가?” “그렇지.”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킬킬대며 웃었다. 우리 나이에 재밌으면 그만이지 뭘 더 바라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문제가 단순하게 보였다. 어른들의 셈법은 이보다 복잡하겠지만, 아직 우리는 어른이 아니니까. 나는 영후 형 손을 잡고 힘차게 걸었다. 영후 형의 손이 듬직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신도시에 사는 민주는 공부를 잘하지만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지만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닌 스스로를 어중간하다고 생각하는 중2 학생이다. 어느 날 아파트에 경비원으로 장두루 할아버지가 온다. 봄이 되자 장두루 할아버지는 화단을 텃밭으로 만들면서 아파트 안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화단 문제에 이어 청소 아주머니들의 처우 문제까지 불거지자 부녀회장은 장두루 할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며 쫓아낼 궁리를 하고……. 한편 장두루 할아버지와 조금은 친해진 민주는 어느 날 ‘나는 쓸모없는 아이인가 봐요.’라며 속내를 드러낸다. 민주는 할아버지가 내준 ‘생각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세상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할아버지의 매력에 은근히 끌리게 된다. 그러던 중 이웃 아파트 단지 경비원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