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땅에서 태어나 일찍이 동방의 지혜에 눈을 뜬 20세기 대표 석학인 루트비히 클라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 중심의 관점은 ‘정신’의 잠입에 따른 자아의 발생에서, 자연 중심의 관점은 ‘심정’의 각성에 따른 우주 생명과의 교류에서 각각 유래하는 인간의 독자적인 성향으로, (……) 이 양대 기둥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 즉 ‘뇌’와 ‘심장’에 해당한다고 클라게스는 힘주어 말합니다. 또한 전자인 인간 중심의 사고가 머리 곧 정신에, 후자인 자연 중심의 사고가 마음 곧 심정에 각각 의존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공업화 문제의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컨대 이 영역은 자연과학인 머리의 세계, 말하자면 전자에 속합니다. 특히 공업화의 문제는 후자, 즉 마음의 세계를 말살할 때 비로소 성립하는 ‘수(數)’의 세계에 근거를 둡니다. 결국 ‘마음’의 버팀목을 상실한 ‘머리’의 독주, 즉 인간 기능의 심각한 실조 증상이 일상생활을 짓누르고 있다는 뜻이지요--- p.18~19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형태’를 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기능’을 보는 눈이다. 이처럼 좌우 눈의 구분에 따라 하나의 존재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고, 반대로 죽은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전자를 ‘마음의 눈’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머리의 눈’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생명’이란 생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자태 속에 깃들어 있음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인간이 갖춘 ‘형태’의 강렬한 인상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때, 그 생명은 생활이 끝난 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또렷이 퍼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요컨대 죽어도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생명의 의미는 인간의 생활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아니라, 인간이 품고 있는 형태, 그 자체여야 한다--- p.23
‘형태’라는 학문 체계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형태학(Morphologie)에서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괴테는 인간의 독자적인 형태를 인간의 ‘원형(Urtypus)’이라고 부르고, 이 원형을 규명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더 정확한 의미에서 ‘인간형태학(Anthropologie)’이란 인간의 원형 탐구에 관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학문이 인문학에 속하든, 자연학에 속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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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을 되풀이하면서 인체를 형성해 나가는데, 이 발생 과정이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려는 ‘태아의 세계’입니다. 바로 태아의 세계는 조금 전에 언급한 원시 세포가 생기고 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30억 년이라는 기나긴 진화 과정을 꿈처럼 재현하는 참으로 신비로운 세계이지요. 사마귀도, 연어도, 그리고 뱀도, 미꾸라지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인간도 그렇고요.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열 달 동안 어머니 배 속에서는 생명 진화의 대하드라마가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마치 무대도, 의상도 한순간에 변신하는 무언극을 감상하는 듯하지요--- p.41
태아의 세계는 (……)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나긴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압축된 세계입니다. 어떤 생물이나 예외 없이 ‘생명의 파동’의 영원한 리듬을 타고, 매순간 수정란의 발생과 동시에 생명 진화의 드라마를 주마등처럼 반드시 재현합니다. 우리 인간도 모두 이런 발생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열 달 동안 어머니 배 속에서 머나먼 조상의 유구한 발자취를 온몸으로 덧그리고, 끊임없이 복습했습니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기억’이 되어, 말 그대로 뼈 속까지 그 기억을 아로새긴,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p.58
우리 인간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리듬이 존재합니다. 그 리듬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주위의 환경 변화에 따라 리듬이 달라지는 성질입니다. 또 하나는 주위 환경과 상관없이 우주 리듬, 쉽게 말하면 태양계의 거대한 리듬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구가 하루 동안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1년 동안 공전합니다. 지구 주위를 달이 한 달 동안 돌게 되고요. 요컨대 연, 월, 일이라는 커다란 리듬이 있습니다. 인체 활동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사건 사고와는 관계없이 연월일의 리듬에 따라 조정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리듬에는 주변의 영향을 받는 측면과 개인의 신상과는 전혀 관계없이 머나먼 우주와 공진하는 측면,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리듬이 있습니다--- p.124~125
꽤 오래전부터 저는 원인 불명의 다양한 증상에서 ‘뭔가 공통된 생리의 부조화는 없을까?’라는 의문점에 몰두해왔는데, 최근에는 ‘하루 주기 리듬의 부조화’에서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호소하는 컨디션 난조 증상을 들으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했던 생리 부조화가 ‘하루 주기 리듬의 부조화’였습니다. 대체로 리듬 불균형 상태가 되면 흐트러진 주기와 감소된 진폭이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잠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고 흐리멍덩한 하루가 지속되는 사례를 많이 접했습니다--- p.172
인체의 구조에는 근원적인 하나의 ‘틀’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손발의 신경을 도려내도, 혹은 위 혈관을 제거해도 해부의 횟수를 거듭하는 동안 개체의 차이와는 무관한 고유의 틀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가끔씩 만나는 기묘한 변이(Variation)도 결국은 그 틀에서 한걸음도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같은 사실은 굳이 메스를 들고 해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인간의 몸을 외부에서 바라본, 즉 우리 인간의 생김새와 매무새에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 테니까.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아주 별난 기인과 마주치더라도 우리는 그가 인간임을 곧바로 알아챈다. 바꿔 말하면 모든 인간의 꼴에는 원숭이와는 다른 ‘옛 모습’이 존재하고, 우리 인간은 이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이런 ‘틀’ 혹은 ‘옛 모습’은 모두 인간의 몸이 지닌 이른바 ‘근원의 형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때때로 드러나는 ‘개개인의 형태’에서 또렷이 식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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