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요리를 공부하기에는 오히려 힘들 수도 있는 곳이다. 렌트비가 비싸고, 부엌이 갖춰져 있는 곳이 드물고, 요리학교의 기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짧지만 그만큼 수련과정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고, 전 세계 음식이 모여 있으며 배달까지 되는 맛의 천국. 천 가지 다른 색깔과 맛으로 단맛부터 쓴맛까지 모두 맛볼 수 있는, 음식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뉴욕. 그 백과사전을 모두 통독했다고 하면 나는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의 굵은 글씨들만이라도 모두 읽어보려고 노력한 곳, 좋아하는 부분은 몇 번이고 외울 정도로 읽어보고자 한 그곳, 뉴욕을 맛보기 위한 준비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이 책에는 뉴욕의 길거리 핫도그부터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할 정도의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뉴욕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스케치하듯 담아보았다.
만약 음식의 백과사전이 있다면, 무엇부터 맛보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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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처음 느낀 혼자라는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그곳에서 태어난 폴 오스터조차 그렇게 느끼며 이야기했으니까. 뉴욕은 나 자신이 타인이라고 느끼게 되는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미소 짓고, 말을 건넨다. 그 안에서 타인 속의 나를 발견하고 주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나를 위한 샌드위치를 맛보아야겠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카츠 델리카트슨Katz's Delicatessen의 샌드위치를 한입 맛보며,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미소를 지어본다.
--- p.65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세계의 다양한 재료를 프랑스의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재현해내는 블레는 입구에서 느꼈던 기대만큼 음식도 모두 훌륭했다. 적절한 소금간에서 느낄 수 있는 세프의 성격처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센스는 마지막까지 이어져서, 그래머시 태번에서 컵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던 것처럼 블레에서는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집에서 열어본 촉촉한 레몬과 럼시럽을 충분히 끼얹은 파운드 케이크는 무척 촉촉하고 부드러워 가벼운 차와 함께 간식으로 먹기 그만이었다. 이 케이크가 생각나 또다시 들렀을 때도 여전히 기분 좋은 서비스와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진 음식으로 기분 좋은 한 끼를 경험할 수 있었다.
--- p.104
바보Babbo는 맛과 따뜻함을 모두 지닌 식당이다. 부담스러운 기교가 없으면서도 소박하지만 열정적으로 만든 바탈리의 요리는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상상했던 음식 맛 그대로여서 두 달간의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또한 비슷한 명성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인심이 좋아 양도 푸짐하다. 웨이터는 끝까지 열심히 빵을 썰고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다주려고 노력했다. 굳이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도 마치 이탈리아에서 맛보는 듯한 음식과 그 햇볕처럼 따뜻함을 주는 바탈리와 그의 음식에 고마움이 스몄다. 예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귀찮은 일이겠지만, 뉴욕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을 맛보려면 예약은 필수다.
--- p.137
뉴욕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는 뉴욕에서 컵케이크의 붐을 일으킨 곳이다. 웨스트 빌리지의 본점은 특히 날씨가 좋은 날이면 휴일 공원의 놀이기구 앞처럼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 긴 줄을 헤치고 좁은 실내로 들어서면 코끝을 찌르는 달콤한 컵케이크 향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알록달록한 색깔이 너무 예뻐 무얼 골라야 할지 몰라 다시금 두근거린다. 소설『달팽이 식당』의 링고가 베이커리를 열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 p.190
사실 뉴욕은 유명인을, 특히 예술과 문화에 밀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에 무척 쉬운 도시이다. 함께 뉴욕의 공기를 마시는 친구에게 이제까지 만나본 유명인에 대해 물어보니, 아는 사람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술술 나온다. (중간생략) 문화와 예술은 산업의 일부를 넘어서서 뉴욕을 창조하고 지금의 뉴욕이 있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원동력이다. 문화와 예술은 수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영화배우 그리고 그들을 동경하는 수많은 사람을 모이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렇게도 쉽게 소호의 옷가게에서 외계에서 왔을 법한 10등신 모델을 만날 수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왠지 친숙한(미디어에서 많이 봤기에)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 p.232
이 바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기본적인 칵테일뿐 아니라 계절마다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고, 때로는 손님이 원하는 칵테일도 즉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첫 방문 때, 내가 바텐더에게 어떤 칵테일이 가장 자신 있는지 묻자, 그는 되려 무슨 맛을 원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조금 장난기가 발동해 어려운 주문을 하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언제나 다른 특별한 칵테일을 삸볼 수 있었다.
"이제 봄이 시작되었네요.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봄을 느끼게 해주세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건지 레몬으로 나비 같은 모양을 만든 시원한 핑크색 칵테일은 정말 봄날의 따뜻한 오후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봄의 거리에서 진짜 나비를 본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여기에서라도 나비를 만나 달콤한 복숭아 맛과 레몬향이 가득한 봄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 p.255
1년 후, 학교를 마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년 한두 달씩은 꼭 뉴욕에 들러 하루에 서너 곳씩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50여 권에 달하는 한국, 일본, 미국의 뉴욕 레스토랑 관광서, 잡지를 읽고, 300여 곳의 레스토랑 및 카페 방문을 통해 뉴욕을 맛보는 데에 정신을 쏟았다. 또한 뉴욕 곳곳의 공원과 미술, 그리고 거리의 풍경들에 홀린 마냥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그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픈 욕심을 17편의 글과 사진에 담았다.
누군가, 홀로 여행을 떠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거나, 세계의 다양한 맛을 보고 싶은 사람, 뉴욕이라는 도시가 궁금하거나, 이미 뉴욕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뉴욕을 맛보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을 사람들을 위해 170여 곳의 알짜 레스토랑 정보와 지도를 또 하나의 책으로 함께 엮어보았다. 언젠가, 뉴욕의 어느 거리에선가 이 책을 손에 들고 뉴욕을 맛보는 사람들을 만날 가슴 두근거리는 상상을 하며…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