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4제1장 / 브랜드는 뱀파이어야!|11 제2장 / 어느 집에나 있는 꼰대, 그리고 브랜드|31제3장 / 브랜드 썰전 제1라운드 - 브랜드가 만든 세상|55 제4장 / 브랜드 썰전 제2라운드 ? 착한 뱀파이어의 등장|85제5장 / 브랜드 썰전 제3라운드 ? 브랜드와 나|131 제6장 / 그까짓 브랜드|173사진 및 자료 출처|189이 책을 추천하며|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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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나쁘게만 생각하는 건 아주 좁은 생각인 것 같아. 우리 사촌 형을 보면 늘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신거든. 형은 그 브랜드 신발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했어.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잖아. 브랜드가 그 자유의 일부라고 한다면 뱀파이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중략)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언제나 최고와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어. 그래도 우리가 브랜드 점퍼를 입으려고 하는 건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야.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건 인간이 가진 본능일 수 있잖아? 우리에게도 하고 싶다, 하기 싫다는 감정이 있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못 하게 한다면 우리에게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가 되라는 거야?” --- p.51 |
“브랜드가 가진 처음 의미는 ‘Keep your hands off’ 즉 ‘손대지 마!’였지. 자기 소유의 재산임을 낙인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경계하라는 의미를 가졌던 거야. 그렇게 사람과 가축에게 사용되던 낙인은 이후 물건으로 옮겨갔어. 도예공은 자신이 만든 도자기에, 빵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빵에 고유 표식을 하곤 했지. 이것이 물건의 상표인 브랜드로 발전한 거야.”
현수는 브랜드의 역사에 대한 아빠의 이야기를 꽤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 p.76 |
“한때 많은 물건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였다는 거 알고 있니? 우리도 방금 이야기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비슷한 상황이었어. 식민지에 전쟁까지 치렀으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였지. 그때 필리핀이 우리나라를 도와준 일도 있어. 가난한 우리는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세였단다. 그걸 이용한 건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외국 기업과 그 외국 기업의 하청업을 맡은 몇몇 공장의 사장들이었지. 청계천의 공장들은 불이 꺼질 줄 몰랐단다. 사람들은 일어서기도 힘든 공간에 앉아서 밤늦도록 재봉틀을 돌렸지. 화장실을 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할 정도였어.”
현수는 방송에서 보았던 청계천 공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자 책으로 읽었던 전태일 열사도 떠올랐다. --- p.83 |
“푸네스는 순간순간 보이는 것을 모두 기억하지만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은 없었어. 그래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그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통합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야. 오직 눈에 보이는 그 자체로만 인식하고 기억하지. 내가 바로 그러지 않았나 싶어. 눈에 보이는 브랜드의 화려함에 열광하면서도 그 이면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지. 아빠는 내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려 하셨던 거야. 내가 축구공에 열광할 때 그 축구공을 만드는 어린이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했으면 하셨고, 브랜드 점퍼에 값비싼 비용을 지불할 때 인간이 가진 불합리한 생각과 쓸데없는 허영심을 고민해봤으면 하셨던 거지. 사실 아빠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봐야 하는 거잖아.”
--- p.181 |
현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해와 소통, 공감이 만나 사유를 만들어내는 인문학의 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쓴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푸네스는 완벽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즉 보통 사람들이 한 번에 탁자 위에 있는 세 개의 유리컵 정도를 본다면 그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나뭇잎과 포도알의 수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세계에는 거의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인지되는 세부들밖에 없다. 즉 그는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등골브레이커 1순위였던 브랜드 점퍼가 순식간에 고가의 자전거로 갈아타듯 십대들의 세계는 빠르게 변해간다. 왜 명품 브랜드여야 하는지 고민해볼 새도 없이 그 흐름에 발맞춰 흘러가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때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만 그치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혹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인 사유, 그것은 단순히 기억의 조각들의 차이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낱개의 조각으로부터 전체를 볼 줄 아는 눈, 사유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브랜드 점퍼를 놓고 벌이는 아빠와 아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썰전. 브랜드에 대한 각 세대의 시선에서 출발해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고 사유하는 인문의 힘을 기르는 것, 명품 브랜드보다 더욱 값진 가치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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