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에 가서 일주일 동안 간증과 전도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저는 목회자도 아니고 신학생도 아닙니다. 이런 제가 우리나라를 벗어나 외국까지 가서 간증하고 전도에 관한 강의를 하는 것이 저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고 쓰임 받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한 번은 하나님께 이렇게 여쭈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이면 저를 택하셨습니까? 저보다 더 잘나고 멋지고 뛰어난 사람도 많은데, 왜 하나님은 저에게 그 많은 영혼을 보내 주십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의 대답이 아주 간단명료했습니다.
“그건 바로 병호 너니까 그런 거다. 난 병호 네가 정말 좋단다.”
‘병호 너니까 그렇다’는 말씀에 기쁨의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간단한 응답이 저한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어 주는 분이십니다. --- pp.8-9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 누나 둘이 있는데, 어머니는 대구 팔공산 절에 가서 꼭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 잘 낳게 해준다는 절을 찾아 일본에까지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불교를 믿으며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 p.18
종교 시간에는 제가 대표로 목탁을 쳤습니다. 저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반 아이들은 모두 교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부처의 사진을 보고 합장하며 절을 올렸습니다. 그것을 ‘삼귀의’라고 하는데 부처에게 세 번 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처럼 불교에는 반야심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가 목탁을 치며 외우는 것을 듣고 아이들이 따라 읊곤 했습니다. 그때는 한 반에 거의 50~6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교실 안에 학생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는 가운데 제가 힘차게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외우고 부처의 사진에 절을 올리는 것은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p.20
저는 교회 가자는 세 친구들의 말을 못 들은 척 했지만 한 친구에게는 아주 못되게 굴기도 했습니다. 저보고 “교회 한번 가보자. 불교는 참 종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기억이 아직
도 생생합니다.
“야! 임마! 니 나보고 이제 더 이상 교회 가자는 말 하지 말고, 교회의 ‘교’자도 꺼내지 마라. 한 번만 더 나보고 교회 가자고 하면 니는 내 친구 아니다. 알긋나? 글고 교회는 자기 종교만 옳다 하고 타종교
를 인정 안 하는데 그래서 너무 싫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니 또 내한테 교회 얘기 꺼내면 니 싫어할 끼다. 조용해라!”
그런데 저는 제 인생에서 교회의 ‘교’자를 수도 없이 이야기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 p.22
그런데 학교 지원서를 적은 종이를 제출하는 날 아침, 함께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는 친구가 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병호야, 연산동에 있는 브니엘 고등학교가 구서동으로 옮겨 왔대. 그 학교 서울대 많이 보낸 명문학교라 하대. 서울대 보낸 순위가 전국에 있는 과학고, 외국어고 다 합쳐서 20등 안에 든다 하더라. 우리 그 학교 가 볼래?”
저는 서울대 많이 보낸 명문학교라는 말에 마음이 동요되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그 친구가 한 말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근데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란다.”
“아, 맞나? 에이고, 좋다 말았네.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만 아니면 무조건 가겠구만. 아깝다.”
저는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후다닥 점심을 먹고 막 축구하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그 친구가 한 번 더 저를 찾아왔습니다.
“병호야, 우리 브니엘 고등학교 가자. 기독교 학교지만 가서 우리만 안 믿으면 되는 거고 학교는 무지 좋다 아이가. 우리 1지망에 브니엘 한 번 써 보자. 쓴다 해도 어차피 뺑뺑이 돌리니까 확실히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아, 참나! 거기 학교 암만 좋아도 기독교 학교는 싫다케도. 됐다, 안 갈란다. 글구 지금 빨리 나가 봐야 한다. 축구 시합 있단 말이다. 내 학교 지원서 여기 있으니까 니가 니꺼 낼 때 내 꺼도 같이 내도. 알긋제? 그면 난 간다.”
교실 밖으로 정신없이 뛰어나가는데 그 친구가 내 등 뒤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호야, 그면 브니엘 1지망에 적는다.”
저는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아이, 몰라. 임마, 니 건 니 맘대로 해!” 하고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신나게 축구를 하고 교실로 들어와 보니 그 친구가 싱글벙글 웃으며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병호야, 니 꺼 브니엘을 1지망에 적어서 냈다.”
저는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습니다.
“뭐라꼬? 야, 임마! 내가 언제 적으라데. 니 웃기네.”
“어, 병호 니가 축구하러 가면서 내 맘대로 하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니 꺼를 니 맘대로 하라고 했지. 언제 내 꺼를 니 맘대로 하라고 하데. 아, 참나.” --- pp.24-25
이제 종교 시간만 되면 저는 열심히 듣다가 손을 들어 반박을 했고 그러면 전도사님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답변했습니다. 아이들은 종교 시간 전만 되면 저를 찾아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병호야, 오늘은 또 어떤 말로 그 초코파이 아줌마한테 대들 건지 기대된다. 최병호, 파이팅!”
그러면 저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습니다.
“야, 나만 믿어라. 오늘은 답변 못하는 질문을 할 테니. 니들 내 잘 보고 있으래이.”
저는 전도사님의 말에 날카로운 반박을 던지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제가 예의 없이 건방진 말투로 질문을 하는데도 전도사님은 단 한 번도 화를 안 내셨다는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시는 전도사님을 툭 치면서 “저기요, 아주머니 말씀은 말이 안 됩니다. 그란 게 어데 있습니까? 그건 거짓말 아닙니까?”라고 대들어도 “이런 버릇없는 녀석! 너 자꾸 이렇게 나오면 혼난다”라고 화를 내시기는커녕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저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이분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우신 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 p.32
전도사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하고 교목실을 나오는 순간, 저는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빼 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휙’ 하고 염주를 빼 버렸던 그때의 짜릿한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예수님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밀려 왔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첫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해준 이 브니엘 고등학교를 평생 후원하겠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아이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후 저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브니엘 예술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p.38
큰누나는 산후 조리하느라 꼼짝을 못하니 사소한 일들부터 저를 종처럼 부려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가지고 와라, 저것 가지고 와라, 팔 주물러라, 다리 주물러라, 옥상에 빨래 널어놓은 것 좀 걷어 와라’ 등등 시시콜콜한 집안일을 다 시키니 저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남동생이 되어서 예쁜 조카를 낳은 누나의 심부름을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점점 그런 일이 잦아지니 짜증이 나고, 누나를 피해 다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누나가 시키는 일을 기분 좋게 할 방법은 없을까?’
저는 점점 변하는 제 모습에 깜짝 놀라 반성을 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누나가 심부름을 한 가지씩 시킬 때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는 것이었습니
다. 좀 유치한 방법 같긴 하지만, 그 도장을 받으며 심부름을 하고 도장을 5개 모으면 교회에 같이 나가자는 조건을 내걸기로 했습니다. 저는 누나가 심부름을 시킬 때 기회는 바로 이때다 싶어 얼른 말을 꺼냈습니다.
“누나야, 내가 심부름 할 때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씩 찍어 주라. 그리고 그거 다섯 개 모이면 내 소원 하나 들어줘.”
“너, 교회 가자는 부탁하려고 그러지.”
눈치가 백 단인 큰누나가 말합니다.
“왜, 싫은가? 싫음 말고. 나야 뭐 손해 볼 것 없으니까.”
저는 배짱을 튕겼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누나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 같이 가고 싶은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의외로 “그래 알겠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대신 누나가 하나 덧붙인 조건은 심부름을 하고 도장을 찍어 줄 때는 누나가 완전히 만족할 때만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건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치고, 정말 누나가 시키는 일을 성심성의껏 했습니다. 약속대로 누나는 만족스럽다며 도장을 쾅쾅 찍어 주었습니다. 드디어 보름 만에 도장 5개를 채우고, 누나와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매형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누나의 말에 저는 정말 하늘을 날듯 기뻤습니다.
---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