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3년 12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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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8쪽 | 200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014647 |
ISBN10 | 8932014647 |
발행일 | 2003년 12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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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8쪽 | 200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014647 |
ISBN10 | 8932014647 |
강 골목길 냄새 무교동 거미의 달 갇힌 사람 남산, 11월 네 마흔 살 아주 외딴 골목길 모진 소리 폭풍 속으로 1 폭풍 속으로 2 르네 마그리트의 하늘 숨쉬는 명함들 화난, 환한 수풀 시리다 명아주 비 여기서부터 해방촌, 나의 언덕길 막다른 골목 코끼리 조용한 이웃 황사 바람 1 황사 바람 2 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 안데르센 봄 벚꽃 반쯤 떨어지고 시멘트 연못 희망 관광 거미의 밤 광장, 착오, 책략 주름과 균열 나무들 그날 그녀는 걸었다 수전증 노인 겨울밤 나 꿈들 그때는 설레었지요 사닥다리 석류 한 알 젖은 혀, 마른 혀 다른 삶 삶은 감자 악착같이 병든 사람 움찔, 아찔 그렇게 여름은 앉아 있고 밤 열한시 반 밤과 고양이 삶의 음보 공터 어두운 장롱 복개천에서 비 詩 아, 해가 나를 겨울 햇살 아래서 工作所 거리 가을밤 1 가을밤 2 나무들 아직 푸르른데 담쟁이 자명한 산책 눈길 봄의 꿈 불행의 나비, 행운의 나비 환청 나비 하늘로 뚫린 계단 풍경 해설 : 자명한 산책길에 놓인 일곱 개의 푯말 - 고종석 |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순전히 <강> 때문에 나는 이 시집을 샀다.
얼마전 나는 외로움의 강, 트위터를 탈퇴헀다.
sns가 내 일상을 침범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트위터를 견디기 어려웠고 바로 그 가면무도회에서 나와버렸는데, 트위터 탈퇴 전후로 느꼈던 감정들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트위터 탈퇴 이후에 내 트친 A의 소식이 궁금해서 다음을 통해 트위터를 검색했다가 트친 A, 트친 A와 나름 엄청나게 시끄럽게 서로 언팔한 B, 그 둘과 맞팔 관계였던 C의 멘션들을 봤다. C는 A와 대화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B와도 서로 다른 주제로 대화 중이었다. 물론 A,B는 서로 대화가 안 되는 중이었다. 이거는 무슨 '소통의 문제'를 주제로 하는 희극을 보는 것도 아니고, A와 B가 어떻게 하다가 언팔했는지 C도 다 봤을 텐데 그 둘과 동시다발적으로 대화했던 C를 보는 순간, 나는 C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평소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C는 종종 내 유리신경줄을 박박 긁어대는 외로움이 가득한 글들을 쏟아냈었는데(직접 나에게 얘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내 신경줄을 막 긁어댔음), C에게는 자기의 외로움만 달래줄 수 있다면, 상대가 누구인지, 상대의 표정이나 감정 같은 건 상관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녀들이 당신의 정신적 위안부, 자위도구입니까?' 그 말이 진짜 내 마음 속에서 터져 나왔다.
사실 C와 내 사이는 농담 몇 번이 전부다. 한번은 C가 나한테 '농담'으로 던진 말이 있었는데 사실 그게 나한테는 '금기어'였다. 나는 트위터 밖에서 엄청 당황했지만, 트위터에서는 대충 둘러대는 말로 '거절'했다. 아마 C는 내 반응이 이해가 안 갔을 거다. 나를 전혀 모르기에 우연히 나라는 인간의 최소한의 윤리를 건들면서 C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버렸다. 어쩌면 C도 트위터에서는 태연하게 A,B 양쪽과 대화를 해도 트위터 밖에서는 A와 B 때문에 당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과의 SNS에서 관계라는 걸 기대했던 A와 나는 바보였다.
더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나는 트위터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외로움의 강, 그게 트위터다. 그런데, 외로운 사람 모두 트위터로 달려가면 나처럼 트위터에서 도망가는 사람도 나온다.
* 사족이지만, A와 C가 행복하길 바란다.
* 내가 트위터에서 탈출할 때 내 유일한 문제가 트위터였다. 일상과 SNS,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참 싫었다.
자명한 산책이 뭘까, 했다. 같은 제목의 시도 있기는 하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서는 '자명' 하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손끝에 그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고, 그런 냄새가 나는 듯하고, 그런 색감이 보이는 듯 해서였다.
감각들이 선명하게 묘사되는 시가 많다.
「명아주」 는 마치 그 밭에 나도 들어가본 것만 같았고 (실제로 가본 적은 없다)
「아주 외딴 골목길」 은 언젠가 이름 모를 골목을 기웃거렸던 생각이 났다.
특히 「모진 소리」 라는 시는 글이 아주 단순한데도 쩡-하고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 풍경들 중 근처에서 가장 익숙하게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조용한 이웃」 이었다.
'봄기운을 두 방울 떨군 /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씹는'다니,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는 능력이 참 부럽기만 하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시는 맨 처음에 나오는 「강」 이었다.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시인데 이 분의 시인 줄은 몰랐다.
여러 마음을 강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거기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각자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일들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 가장 신선했던 시는 「노인」 이었다.
노인을 감정의, 행위의, 잠의 서민으로 표현한 것이 무척 와닿았다.
기억의 서민이자 욕망의 서민, 生의 서민이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바쁨과 효율성을 잠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 에 대해 묻는 질문을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질문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는 것은 알겠다.
말의 느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시 같다.
바쁜 일상 중에 시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잠시 멈추었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