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함께라면, 이곳이 바로 지극한 ‘21세기의 월든’이 아닐까”
헤세가 꽃 피우는 봄의 언어들은 다사롭고 향긋하며 그윽하다. 그의 싱그러운 언어를 통해 ‘봄’은 원래의 봄보다 더 눈부시고 조화롭게 다시 태어난다. 그는 “우리가 몹시 아름다운 이른 봄을 맞고 있다”면서, 그 아름다운 봄이 다른 예술가들처럼 세계의 역사 앞에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에게 봄은 단지 계절이 아니라 자연이 빚은 최고의 예술품이며, 인간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생명의 신비를 펼쳐내는 시간의 춤이다. 그는 밀레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처럼 다만 경건하게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봄이라는 시간의 씨앗을 그의 산문 곳곳에 뿌려놓는다.
헤세에게 시인이란 “어쩌면 내일 파괴될지도 모를 세계 안에서” “자신의 말들을 열심히 주워 모았다가 골라내는” 숙명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꽃들이나 벌들이나 나무들이나 개미들처럼, 자기 안의 아름다움과 부지런함을 아낌없이 세상 밖으로 내놓으며 자연과 소통하는 존재. 그것이 헤세에게는 시인다운 시인이었다. 그는 평생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로 와서 살라는 지인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한적한 시골생활을 즐겼다. 가끔씩 낭독회나 강연을 위해 도시로 떠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시의 북적거림과 메마른 인심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소설 속에서는 처절한 내면의 고투를 체험하는 파란만장한 인간군상을 그렸지만, 시나 산문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예찬하는 소박한 삶을 예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어쩌면 소설을 쓸 때 느끼는 엄청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산문이나 시, 그림 그리기를 통해 부드럽게 이완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들 마르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름다운 꽃들에 대한 감탄을 이렇게 표현해내고 있다. “어쩌면 내일 독가스로 뒤덮일지도 모를 세계 안에서 그것들은 조심스럽게 이파리와 꽃받침들을, 매끈하거나 톱니 모양의 꽃잎들을 네다섯 개 또는 일곱 개씩, 모두 제대로, 가능하면 아름답게 피워가고 있다.”
그는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피워내는 자연의 마력을 속속들이 이해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인생의 다음 행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헤세 자신의 마력이기도 했다. 그는 봄의 마력을 이렇게 예찬했다. “마음은 삶의 온갖 부름에/ 이별을 고하고 새로이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용기를 지니고 슬퍼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새로운 묶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우리가 살아가도록/ 보호하고 도와주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지금까지 견뎌왔던 모든 아픔을 딛고,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의 순환 속으로 진입하는 것. 그것이 헤세의 봄이다. 겨울을 ‘작년의 것’으로 만들고 봄을 ‘올해의 것’으로 만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새해’를 잉태하는 우주의 신비 앞에서 헤세는 매번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는 뼛속 깊은 방랑자였으며, 정착할 때조차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영혼의 보헤미안이었다. 그는 생각의 관성에 빠지고, 매너리즘에 젖고, 집착과 소유에 물드는 삶을 경계했다. “익숙해지자마자 무기력해질 위험이 있다/ 불쑥 떠나 먼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무감각해진 습관에서 벗어난다.” 그리하여 그는 지나간 시간과 영원히 결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의 시간이 우리를 또/새로운 공간을 향해 젊은 모습으로 나아가게 해줄지 모르니,/ 삶이 우리를 부르는 일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그러니 자,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겨울의 죽음을 통해 탄생하는 봄의 신비, 그것은 죽음에 굴하지 않고 삶을 피워내는 생명의 기적이며, 결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롭게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꺼지지 않는 열정의 불꽃이기도 했다.
그는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산과 호수가 펼쳐진 시골 마을로 돌아올 때마다 “마치 추방되었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마침내 다시 산속의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멀리 루가노 호수가 보이고,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진 스위스의 시골 마을 몬타뇰라에서 그는 안식을 찾았다. 그는 사람들이 만든 인공적인 물건들조차도 마치 바위나 나무, 이끼처럼 그저 그렇게 자연스레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산골 마을의 농가를 사랑했다. “포도원 담장, 집 그리고 지붕, 그 모든 것들은 똑같은 갈색 편마암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모두가 서로 다정하게 잘 어울린다. 어떤 것도 낯설거나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친숙하고 쾌활하고 이웃 같아 보인다.” 헤세는 삭막한 도시의 생존경쟁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그대가 원하는 어디든 가서 앉아 보아라. 담장 위든, 바위 위든, 나무 둥치 위든, 잔디 위나 땅 위든. 어디에나 그림과 시가 그대를 감싸고 있다. 도처에 그대를 감싸고 있는 세계는 아름답고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삭막한 도시 안에서도 헤세가 그린 풍요로운 봄여름가을겨울의 기록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이곳이 바로 지극한 ‘21세기의 월든’이 아닐까. 헤세와 함께라면, 세계는 비로소 갈등과 반목을 잠시나마 멈추고, 다가오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빠짐없이 예찬하느라 바쁜, 너그러운 시인의 미소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정여울(작가,『헤세로 가는 길』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