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바꿀 힘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변화뿐이다 생각해보면 부두의 일상을 바꿀 힘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변화뿐이다. 예컨대 더 이상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거나 양모 대신 고무를 담요로 쓰기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생산과 유통 체계 전반이 휘청휘청 흔들리고 새로운 적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중기를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항해 중인 선박을 불러들이는 것은 바로 우리, 다시 말해 우리의 취향과 유행과 요구다. 우리 몸이 그들의 주인인 셈이다. 신발, 모피, 가방, 난로, 기름, 라이스푸딩, 양초 등등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우리 앞에 대령된다. 우리 내부에서 새롭게 자라는 욕망이 무엇이고 거부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역은 초조하게 우리를 주시한다. 부둣가에 서서 정박한 선박의 화물칸에서 통이며 상자며 꾸러미를 들어 올리는 기중기를 바라보노라면 어떤 복잡하고 중요한 동물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느껴진다. ---「런던 부두」중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를 위해 건축을 한다 런던의 현대적 매력은 지속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던은 사라짐을 목표로 세워진 도시다. 이 도시의 유리질, 투명성, 밀려드는 유색 회벽의 물결은 옛 건축가들과 그들의 후원자인 영국 귀족들이 원한 바와 다른 만족을 주고 그들이 꾀한 바와 다른 목표를 성취한다. 그들의 자부심에는 영속성에 대한 환상이 필요했다. 거꾸로 우리는 석재와 벽돌을 우리의 욕망만큼 덧없게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며 자부심을 즐기는 듯하다. 우리는 후손들을 위해 건물을 짓지 않는다. 후손들이 구름 위에서 살지 땅속에서 살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를 위해 건축을 한다. 부수고 새로 지으면서 다시 또 부서지고 새로 지어질 것을 예상한다. 충동이 창조와 다산을 가능하게 한다. 발견을 격려하고 언제라도 발명에 나설 태세다. ---「옥스퍼드 거리의 물결」중에서
존재의 의미를 여전히 숙고하고 여전히 사색하며 여전히 질문하는 곳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왕족보다 더 막강하고 위엄 있는 인물들도 아주 많다. 존재의 의미를 여전히 숙고하고 여전히 사색하며 여전히 질문하는 작고한 시인들이 이곳에 있다. “인생은 농담이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가리킨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그것을 알고 있다.” 게이가 웃으며 말한다. 말끔히 면도하고 홍백의 가운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성직자가 성서의 지침을 백만 번째 읊조리는 동안 초서, 스펜서, 드라이든을 비롯한 모든 문인이 여전히 정신의 긴장을 팽팽히 당기고 경청하는 듯하다. ---「수도원과 대성당」중에서
여기는 하원의사당이다. 여기서 세계의 운명이 바뀐다 속으로 이렇게 엄중히 되뇔 필요가 있다. ‘여기는 하원의사당이다. 여기서 세계의 운명이 바뀐다. 이 자리에서 글래드스턴과 파머스턴과 디즈레일리가 투쟁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한다. 우리는 매일 그들의 지시를 따른다. 우리의 지갑이 그들 손에 맡겨져 있다. 하이드파크에서 우리가 차량을 운전할 때 속도를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고, 우리가 전쟁을 할지 평화를 지킬지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다.’ 우리 스스로 자꾸 상기해야 한다. 그냥 봐서는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원의사당」중에서
너무 깊이 들어가도 안 되고 너무 똑똑해도 안 되는 대화 사실 크로 부인이 원한 것은 친밀함이 아니었다. 부인은 대화를 원했다. 친밀함은 으레 침묵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침묵이야말로 부인이 질색하는 바였다. 모름지기 대화가 이어져야 하고 대화는 보편적이면서 세상만사를 두루 다뤄야 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도 안 되고 너무 똑똑해도 안 되는 것이, 이런 방향으로 멀리 가다 보면 틀림없이 누군가 소외감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문 채 자리에 앉아 찻잔만 만지작거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