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A. Charriere 1905년 11월 16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포주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도형지로 보내졌다. 1934년, 생 로랑의 병원에서 맨 처음 탈출을 시도한 이후 11년 간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탈출을 계획하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마다 그는 더욱 가혹한 형벌에 처해졌다. 1941년, 수용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디아블(악마의 섬)에서 코코넛 자루 두 개를 연결한 뗏목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다. 서른여섯 살 때였다. 1944년, 베네수엘라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1968년, 자신의 체험을 풀어낸 소설 『빠삐용Papillon』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꺼내 읽는 ‘희망의 바이블’로 자리잡았다. 1973년, 그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빠삐용〉이 제작되었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이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해 7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밤 11시에 승부는 끝이 났다. 내 변호인들은 꼼짝도 못하고 궁지에 몰렸다. 아무 죄도 없는 나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프라델 차장검사로 대표되는 프랑스 사회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를 영원히 제거했다. 에누리도 없이 말이다! --- p.20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갔다. 검은색 작은 줄무늬가 있는 하늘색 나비였다. 벌 한 마리가 그 나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창가에서 윙윙댔다. 저 곤충들은 하필 이런 곳에서 무얼 찾는 것일까? --- p.46
겨우 이렇게 되려고 2,500킬로미터를 지나왔다니! 굉장한 성공이군. 신이시여! 그렇게도 관대하시더니 이제 와서 저를 버리시렵니까? 저한테 화가 나셨습니까? --- p.280
이번 탈출에서 내가 만났던 그 모든 이들은 내가 얻은 값진 수확이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실패하긴 했어도 내 탈출은 특별한 사람들을 알게 되어 내 영혼이 풍요로워진 것만으로도 일종의 승리였다. 난 결코 탈출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 p.335
나는 독방 안을 꼼꼼히 살폈다. 전 세계 자유의 어머니이자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낳았던 내 조국 프랑스 같은 나라가, 아무리 프랑스령 기아나라 할지라도 대서양의 버려진 작은 섬에 생 조제프 격리소 같은, 야만적으로 인간을 탄압하는 건물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추측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p.373
‘가련한 아들아. 너의 죄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인생을 낭비한 죄, 너는 그토록 소중한 네 젊음을 방탕하고 삿되게 흘려보냈다. 사랑과 용서를 위해 마련된 시간들을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채웠다. 자, 눈을 뜨고 보거라. 그러므로 네가 지은 죄는, 그 무엇보다 중한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굵은 눈물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 p.400
제도는 사람들이 누리는 그 거짓 자유 때문에 극도로 위험했다. 나는 다들 편안하게 그 생활에 안주해서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떤 이들은 형기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러지 않은 이들은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 p.520
무고한 드레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살아갈 용기를 되찾게 해준 그 벤치는 내게도 무언가를 해줄 것이다.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시 시도하면 된다. --- p.605
이번에야말로 진짜 행운이 깃든 모양이었다. 이제껏 계획했던 다른 탈출들은 모두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고 지나치게 많이 준비를 했다. 결국은 제일 우스꽝스러운 시도가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코코넛 자루 두 개로 바람과 바다를 가르면서…. --- p.626
단추를 다시 꿰듯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내가 결혼해 카라카스에서 베네수엘라의 시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숱한 모험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의 성공과 실패를 맛본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