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무시하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 컨텐츠팀 정 민경 (bennys@yes24.com)
2011-09-08
"이 책을 무시하면 위험에 빠질 것이다" - 『똑바로 일하라』에 대한 세스 고딘의 서평 일부이다. 『보라빛 소가 온다』로 한동안 '보라빛 소-Remarkable' 열풍을 일으켰던 그의 호들갑스러운 추천에, 또 'Rework'라는 간결하고 강력한 원제에 집어 든 이 책은 예상대로 재기발랄하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한국어판은 『똑바로 일하라』라는 다소 고압적인(?) 명령문으로 나왔는데, 아마도 원저의 신랄한 면을 살리려는 의도라 믿고, 슬그머니 올라오는 반발심을 눌렀다.
책을 쓴 제이슨 프라이드와 데이비드 핸슨은 [37signals]라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의 설립자들로, 필요 최소한의 기능만을 남긴 소프트웨어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은 회사'를 꾸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하면서 발견한 점을 회사 블로그를 통해 적극적으로 나누고, TED 강의에도 참여하는 새로운 유형의 CEO들이다. 이 책 역시 하루 십만 명이 찾는다는 블로그 Signal vs. Noise의 내용을 기초로 했다.
'비즈니스계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비유될 만큼, 이들이 만드는 제품의 가장 큰 차별 포인트는 기본을 중시한 단순함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단지 상품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과정 전반에서 기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한 믿음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차례차례 "왜 당연해 그게?"라고 반문한다. 많은 비즈니스 도서가 강조하는 목표, 태도, 기준을, 특히 작은 기업이 맹신하고 신봉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고(!) 비효율적인 것인지 지적한다. 사업하는데 이런 건 있어야 하고, 조직을 유지하려면 이런 건 지켜야 하는 식의 고정 관념을 아래처럼 뒤집어 본다.
꼭 성장해야 하는가?
소규모는 기착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목적지다. 5인 규모가 당신 회사에 적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40명? 어쩌면 200명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 자신과 노트북 한대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중소기업은 사업규모가 커지기를 원하는 반면, 대기업은 민첩성과 유동성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 일단 덩치가 커지면 사람들을 해고하고 비즈니스 방식을 통째로 바꾸지 않고서는 몸집을 줄이기는 힘들다. 덩치는 작을수록 좋다. (p27)
'사업가'라는 말은 이제 그만
사업가(entrepreneur)는 너무 구식이고 부담스러운 표현이다. 어딘지 배타적인 클럽의 분위기를 풍긴다.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 그만이지 굳이 자신을 사업가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 중에 새로운 부류가 나타났다. 그들은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대다수는 스스로를 회사 소유주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덤으로 돈까지 벌 뿐이다. 그러니 허파에 바람만 넣는 표현 말고 보다 실질적인 표현을 쓰자. 사업가 말고 스타터(starter)라 부르자. 새로 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모두다 스타터다. 경영학 학위나 자격증, 번드르르한 정장, 서류 가방, 특별한 모험심 따위는 없어도 괜찮다. (p33)
완벽한 계획은 불가능하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 조건과 경쟁사, 고객, 경기 등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요인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을 세우면 이런 요인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업 계획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업 추측이라면 또 모를까....미래에 관해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다가올 장애물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장기 계획까지는 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애써 몇 페이지에 달하는 장기 계획서를 써봐야 어차피 구닥다리가 되어 서류함에 처박힐 게 뻔하다. (p25)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많은 기업이 따끈따끈한 최신 트렌드와 기술에 목숨을 건다. 영원한 것은 몰라보고 수시로 변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사업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오늘도 원하고 앞으로 10년 후에도 변함없이 원할 것들, 바로 이런 것에 투자해야 한다. '사용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가 있었으면 좋겠어' '프로그램 실행이 좀 느렸으면 좋겠어' 10년이 지나도 이런 고객은 나타날 리가 없다. (p94)
이 밖에도 "경쟁자보다 적게 하라", "무명시절을 즐겨라" "너무 커버린 고객은 떠나 보내라", "열정을 진정한 가치와 혼동하지 마라", "월스트리트 저널은 꿈도 꾸지 마라", "인재를 포기하라" 등 제목 자체로 흥미 있는 메시지를 전개한다. '유레카!'를 외칠 정도의 혁신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저자들의 실제 사업 사례와 맞물려 구체성을 띄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기획, 생산, 마케팅, 관리 등 여러 영역의 경험을 골고루 다루고 있으므로, 실제 기업을 세우려는 경우뿐 아니라, 조직 속의 개인 차원에서도 은연중에 나오는 고정관념, 결정 패턴들을 한번쯤 의심해 보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하나 하나의 소주제가 짧고, 메시지를 강조한 삽화가 많은 분량을 차지해 긴 시간 공들인 독서를 원할 때는 아쉽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트위터 140자 시대에 그리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큰 틀은 비즈니스 잠언집에 가깝기 때문에다. 출퇴근길 맘에 드는 곳부터 펼쳐 읽거나, 출장 가방에 챙겨 넣고, 틈틈이 새로운 자극을 얻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독서법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각도로 상황을 볼 수 있다면 가벼운 안전 장치 한개쯤은 갖출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