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에 들어서니, 중국의 전형적인 사찰답게 큰 연못이 도량 중앙에 조성되어 있다. 원통사는 전체적으로 앞이 높고 뒤는 낮은 독특한 구조라고 하는데, 산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도량 중심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연못이 있고, 연못을 중심으로 대웅전 · 원통보전 · 천왕전 · 승방 등 여러 당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연못 중심에 위치한 팔각정은 청나라 초기(17세기 중엽)에 지어졌고,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 p.24
절을 하는 길녘에서 젊은 승려 문현을 만났다. 허운은 작은 절 승은사에서 문현의 시중을 받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절을 시작해 문길과 헤어진 지 두어 달 만인 5월 말쯤 오대산 현통사에 도착해 문길이 맡겨 놓은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스님은 오대산 사찰들을 순례하며 문길을 찾았으나 문길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후에 허운이 한 노승에게 이런 사연을 말했더니, 노승이 합장하며 말했다.
“문길은 문수보살의 화신인데, 스님은 문수보살을 친견한 것입니다.”--- p.34
이전에는 짬이 있는 자투리 시간에 무언가 메모를 하고 움직였는데, 이번 순례에서는 마냥 쉼을 만끽한다. 햇볕을 쬐고 사람들의 천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순간의 삶이 바로 극락이려니.’ 순간순간 느끼는 자각된 현존의 삶이 바로 삶의 기쁨이요, 행복임을. 현재에 살지 않는 삶과 수행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나 같은 외부 승려는 공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재가자들은 5원(한화 850원)의 보시금을 내고 먹어야 한다. 중국 사찰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점도 괜찮아 보인다. --- p.54
승려들이 허운이 앉아서 열반한 줄 알고 스님을 가볍게 치며 소리를 내자, 허운이 삼매에서 깨어났다. 젊은 승려들이 새해 축하 겸 찾아왔다고 하자, 허운이 ‘오늘이 동짓날 21일인데, 벌써 해가 바뀌었냐?’고 물었다. 승려들은 ‘오늘은 정월 초이레’라고 하였다. 그때서야 허운은 자신이 삼매에 들어 있었음을 알았다. 토란을 삶으려고 막 불을 피우다가 입정에 들었던 것인데, 자신이 삼매에 들었던 보름간을 잠시 잊고, 젊은 승려들에게 ‘토란이 다 익었을 테니 토란을 먹으라’면서 솥뚜껑을 열라고 하였다. 솥 안의 토란에는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 p.90
티베트 사찰들은 제일 높은 지역이나 중심부에 법당과 종파의 종사가 모셔진 당우가 있고, 그 이외 주변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승방이다. 티베트 승려들은 대중생활이라고 하지만, 한국 승가의 대중과는 의미가 다르다. 티베트 승려들은 각각 개인 집과 마당을 따로 가지고 있고, 행사 때만 법당에서 서로 만날 뿐이지 그 이외 생활은 개별적이다.
도량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6~10명 단위로 승려들이 모여 앉아 체니를 하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으나 승려들의 격렬한 논쟁이 재미있다. 티베트 불교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체니인데,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된다. --- p.120
허운의 제자는 100여 명에 이른다. 몇 년간 스님을 시봉한 제자도 있고, 법맥을 이어받은 제자도 있으며, 구족계를 받은 제자, 불학원에서 스님께 공부한 제자, 재가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인연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계진· 구행· 관본은 스님 곁에서 십여 년에서 몇 십 년을 함께한 제자들로서 곧 도반 같은 이들이다. --- p.170
제가 죽고 살지는 알 수 없으나(병을) 떨치고 일어나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더 오래 살아 달라’는 축원을 보내 준 거사님 후의에 그저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거 숙업에 이끌려 한 세상을 물결치듯 흘러왔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쇠잔하기 그지없는데 오히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은 많기만 합니다. --- p.181
드디어 법회 날 수백 명의 곤명 사람들이 수탉의 수계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복흥사에 모여들었다. 스님이 수탉에게 삼귀의와 오계를 설해 주는데, 수탉은 조용히 땅에 엎드려 있었다. 이후 닭은 도량을 다니며 곤충을 잡아먹지 않았고, 축생을 괴롭히지 않았으며, 대웅전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대웅전 앞으로 달려갔다. 2년 후 수탉은 승려들이 대웅전에서 독송을 끝낼 무렵,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죽었다. 허운은 수탉의 장례를 치러 주고 묘비명까지 세워 주었다. --- p.223
--- “부처님께서 설한 모든 가르침은 ‘행벙?자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 범부로부터 성인에 이르는 것도 행이요, 성인으로부터 부처가 되는 것도 행이다. 행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그것은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교화시켜 국토를 장엄하는 데 있는 것이다.” - 본환
--- “수행이란 단지 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염불 · 간경 · 교학 · 참선 등을 총괄한 것이 불교 수행의 전부이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선정을 떠날 수 없으므로, 선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활선이 요구하는 바는 단지 선을 움직이는 가운데 실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 있어서 실행하는 것이다.” - 정혜
---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