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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나에게 말을 걸다

예언자, 나에게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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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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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574g | 153*224*30mm
ISBN13 9788953115019
ISBN10 895311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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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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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이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연결하여서 하늘의 뜻을 알려 주는 자라면, 예언자는 어느 사회, 어느 시대든지 있었던 점술가나 무속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이나 무속인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자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구약성경의 예언자는 그 기능 면에서는 여느 무속인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의 예언자들도 누군가가 찾아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면, 신께 구하여 그 뜻을 전달하기도 했답니다. 일례로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예언자들에게 하늘의 뜻을 물어 보고, 그들로부터 하늘의 뜻을 전달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듯 기능면에서는 예언자도 무속인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예언자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누구의 영으로 예언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예언자들이 예언 행위나 기적을 행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그를 사로잡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겔 2:2; 3:24; 8:3; 11:1, 24; 37:1; 43:5). 예를 들어 에스겔서 2장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여기서 ‘그’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다른 예로 사무엘상 10장 6절을 보면, 예언자 사무엘이 앞으로 왕이 될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울은 비록 예언자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나서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이 누구의 영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예언자는 구약성경의 예언자들밖에 없습니다. 이밖에 많은 무속인들과 예언자들이 있고 그들의 행위도 구약성경의 예언자와 비슷하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영이 아닌 다른 영으로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자들의 기능과 관련하여 현 시대의 사역자들을 조명하여 봅시다. 현대에는 옛날 구약시대처럼 주의 종의 임무가 예언자나 제사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행하는 모든 사역자에게 예언자와 제사장의 임무가 주어지지요. 따라서 지금의 사역자들은 예언자 역할도 감당해야 하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겉으로 그 현상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영이 임한 증거로 초월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사역자들이 늘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의 힘과 감동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역자는 예언자와 같은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이 매우 ‘행동파’(activists)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예언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행적을 보면 그들이 사회 정치 문제에 적극 참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에 불의가 가득하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에, 이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저항하던 행동파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저 앉아서 찾아오는 이들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사로운 개인의 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점들까지 짚어 소리치던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현대의 많은 사역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독교는 개개인의 신앙생활만 염려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예언자들이 전해 주는 신앙의 전통은, 기독교가 이웃과 사회 속에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는 무관심한 채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심만 고취하려는 것은 예언자적 신앙 전통을 무시하는 모습입니다.
내면의 문제만 평생 붙들며 기도하고 위로 받는 신앙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고통에도 참여하는 신앙이 예언자적 전통을 잘 구현하는 모습입니다. --- pp.18-21

예언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예언의 가장 원초적 행위는 바로 미래를 밝히 전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미래의 일을 알려 줌으로써 자주 경고하였습니다. 때로 무시무시하기도 해서 나라가 엄청난 폭력에 의해 멸망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구원을 선포하는 예언들도 있었지요.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기원전 6세기에 멸망하기 전에는 주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이 많았고, 나라가 망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는 그들을 향한 희망과 구원의 내용이 많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처럼 원초적 행위로 봤을 때 예언의 목적은 미래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언이라는 것이 과연 미래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요? 예언의 목적이 시간적으로 미래로만 향해 있을까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의사가 그를 진찰한 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유감이지만, 환자께서는 약 3개월 후면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이 의사의 선고는 분명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예언이 이 환자의 미래에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의사는 단순히 미래에 죽을 사실만 말한 것일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이 환자가 3개월쯤 있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환자는 이 미래에 대한 선고를 듣고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려 하겠죠.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면 미리 만나 볼 것이고, 해보고 싶은 일들도 죽기 전에 해보려 할 것이며, 미워하거나 해를 끼쳤던 사람이 있다면 가서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은 비록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미래의 일을 말한 것은 현재의 삶을 잘 정리하라는 의미이고, 선고를 들은 환자 역시 이 예언을 통해 현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성경의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한 예언자들은 그저 단순히 미래의 멸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근거들을 제시하였고 신랄히 비판하였습니다. 예언을 듣는 자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한 것입니다. --- pp.41-43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갈라져 있던 때였습니다. 북쪽과 남쪽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그 두 나라를 (북)이스라엘 그리고 (남)유다로 불렀습니다. 아모스는 남쪽 유다 출신인데, 흥미롭게도 북쪽 이스라엘로 가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더 특이한 것은 본래 양을 치고 뽕나무를 키우던 농사꾼으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시골의 순박한 농사꾼 출신이라고 해서 얕잡아 봐서는 안 됩니다. 아마 예언자들 가운데 아모스만큼 과격하게 독설을 퍼붓는 예언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이 나라는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고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망할 것이다”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정말 용기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쪽에 있던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아모스를 무척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모스가 북쪽에 있던 다른 종교 지도자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북쪽 벧엘이라는 곳에서 일하던 아마샤라는 제사장인데, 이 제사장이 하루는 아모스의 과격한 예언에 분노하여 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합니다. 이때의 상황을 아모스서 7장 10-1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북이스라엘에 아모스가 가서는, 북쪽 나라 왕 여로보암이 칼에 죽임을 당하고 북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에 의해 망할 것이라고 외치며 다녔다고 합니다. 용기가 지나쳐서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인 도발입니다. 아마샤는 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하고 나서, 이번엔 직접 아모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암 7:12-13).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한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마샤라는 종교 지도자의 어그러진 신앙관이 잘 드러납니다. 먼저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고향땅에 돌아가서 먹을 것을 먹으며 예언하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살펴보면 ‘먹을 것을 먹으라’는 말과 ‘예언을 하라’는 말이 ‘거기에서’라는 말에 의해 서로 병행합니다. 즉 먹을 것을 먹는 것과 예언하는 것을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아마샤라는 종교 지도자에게 예언하는 일은 곧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인 것입니다. 그에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사업을 이루기 위한 소명이라기보다 그저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라는 뜻이지요.
그 다음에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여기는 왕의 성소이고 궁궐이다.” 벧엘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벧엘은 아주 유명한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 그리고 벧엘이라는 이름 자체도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하나님의 것이 아닌 왕의 성소요 왕의 궁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마샤에게 성소 즉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의 터전이 아니라, 나라의 왕을 위해 존재하고 권력기관에 기생하는 그런 정치적인 기관이라는 겁니다. 아마샤의 이 말은 그가 얼마나 신앙의 정신을 왜곡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런 아마샤 같은 종교 지도자가 북이스라엘의 왕과 가까운 사이였으니 그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살 리가 없었겠지요.
앞장에서 거짓 선지자들은 그저 왕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여 호의를 얻고 풍족하게 먹고살았다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바로 그런 부류의 인물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사역 즉 예언하는 일은 그저 먹을 것을 얻기 위함이고, 교회 즉 하나님의 성소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왕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샤는 아모스를 아주 불편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아모스의 정직한 예언은 자신이 평소에 왕에게 아첨하며 한 예언과 아주 달랐던 모양입니다. 아마샤는 왕에게 날마다 이 나라가 평안하게 잘 될 것이라고 축복하고, 왕이 잘못해도 지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온 농사꾼 아모스가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다니며 민심을 흔들어 놓으니 어지간히 싫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귀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사업에 동참하는 주의 일꾼들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아마샤처럼 하나님의 일을 그저 직업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성직자나 사역자들은 이 일을 통해 살아갈 급여를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의 아마샤처럼 하나님의 성소를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마도 아마샤처럼 빗나간 사역자들을 경고하기 위해 이 아모스의 일화를 성경 속에 남기셨나 봅니다.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역이 내 생활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pp.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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