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동안 무덤덤하게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최근 들어 하나님을 좀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성경에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정보가 알려 주는 하나님, 성경이 소개하는 예수님을 접한 뒤에도 삶이 변하는 체험은 해 보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14장에 걸쳐 성경 전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각 장에서 성경의 한두 본문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설명한 뒤 그것이 전체 문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한데 모이는지 보여 주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갖고 여러 차례 강연을 했다. 최근 트윈시티에서 2주에 걸쳐 진행된 주말연속 강좌 내용이 DVD로 나왔다. 개별 강의는 thegospelcoalition.org에서 무료로 내려받기를 할 수 있다. 비디오 강연의 구성은 이 책과 거의 비슷하다. 이 책과 비디오 강좌의 내용으로 소그룹 모임을 진행하기 원하거나 추가 자료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도자 가이드도 나와 있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히 따지는 중립적 방관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다. 성경 말씀을 최대한 신중하게 다루려고 노력하겠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처음부터 밝히고 들어가겠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발견한 내용은 실로 감동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그분까지 알아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 해 동안 내가 쓴 책의 서문 이름 옆에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라는 라틴어 문구를 덧붙였고, 이 책에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이 문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또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5백 년 전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요약하기 위해 만든 다섯 가지 문구 중 하나인데,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의 자기 영광과 거만함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위대한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모든 칸타타의 초고 악보에 ‘SDG’라는 머리글자를 붙였다. 그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도 동일한 문구를 사용했다. 이는 지금부터 읽게 될 성경이 가르치는 한 가지 교훈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단 카슨 (Don Carson) --- 서문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
1. 하나님의 존재가 출발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긴 논증과 함께 시작되지 않는다. 상향식 접근 방식도 볼 수 없고, 비슷한 다른 무엇을 가지고 모종의 유비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냥 “태초에 하나님이”로 시작한다. 만약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면 이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접근 방식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면 편안히 앉아 하나님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하고 증거를 평가한 뒤 이런저런 신이 존재할 개연성이 어느 정도 된다고 제시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재판관이 된다.
하지만 성경 속의 하나님은 이와 다르다. 성경의 출발점은 간단하지만 극적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그분이 계신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평가 대상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시다. 이것으로 모든 역학관계가 달라진다.
2. 하나님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을 만드셨다. 이 사실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돌이킬 수 없는 구분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다. 절대적 의미에서 우리는 결코 창조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 그럼 하나님은 어디서 생겨났지?”라고 물을 때 성경은 그분의 존재가 다른 무엇, 다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분의 존재는 자존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겐 원인이 없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그분은 언제나 존재하셨다. 그에 반해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은 대폭발이든 출생이든 어딘가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만드셨다. 하나님을 제외한 우주의 모든 것은 결국 그분께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3.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강하게 부각된다. 하나님은 공개적으로 “이것이 있으라”, “저것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 뒷부분에 가서도 이 점은 거듭 강조된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오늘날까지 경건하게 암송하는 성경 구절 ‘쉐마’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신 6:4,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그러나 몼경의 첫 장에서부터 하나님의 단일성에 깃든 복잡성이 암시되어 있다.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 분 하나님밖에 안 계시며 하나님이 한 분뿐이라고 거듭거듭 주장하는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치고는 참 이상하다. 혹시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이 복잡한 존재, 복잡한 단일성을 가진 분이라는 암시가 아닐까?
우리가 이 일인칭 복수형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성경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을 만드셨다고 말한다.
4. 하나님은 말씀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일반적인 제목 아래 등장하는 그분의 첫 번째 행위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창 1:3)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생겨나게 하셨다는 일종의 비유적 표현 방식이고, 실제로 어떤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비유적인 표현? 좋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뒤 그들에게 몇 가지 책임을 맡기신다.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 결혼은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했다. 그러므로 성경의 첫 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모종의 추상적인 ‘부동의 동자?’, 정의할 수 없는 영, 신비한 체험 등이 아니다. 그분은 인격을 갖고 계시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신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그림은 성경 전체에 걸쳐 계속 나타난다. 하나님은 더없이 위대하고 초월적인 분이시지만, 동시에 말씀하는 하나님이시다.
5.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하다. 매우 선하다.
성경의 기록이 펼쳐지는 과정을 보면 창세기 1~2장에는 죽음이나 부패, 살생, 악의, 증오, 술책, 오만, 교만, 파괴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그 어느 것에 대한 일말의 암시도 없다. 모든 것이 아주 선하다. 고통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토대를 바로 창세기 1장에서부터 볼 수 있다.
6.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마치신 후에 안식하셨다.
즉 창조의 일을 멈추셨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일을 마치고 쉬셨다는 말은 “휴, 지쳤다. 끝나서 기쁘구나. 이제 다리를 올리고 편히 앉아 쉬어야겠다”고 말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본문을 잘못 읽은 것이다. 그분은 창조의 한 주간의 끝에 이르셨고, 창조의 일을 마치신 후 멈추셨다. 쉬셨다. 그리고 일곱째 날을 특별한 날로 정하신다.
7.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을 선포한다.
성경의 처음 두 장에서는 하나님의 자기공개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이 암시된다. 하지만 성경의 뒷부분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손에 들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바이올린 제작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손에 들린 그 악기를 만든 장인을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조 세계의 광대함과 그 복잡성, 물리적 현상, 2천 킬로미터의 먼 길을 떠났다가 똑같은 나무로 되돌아오는 자그마한 벌새의 힘, 팽창하는 우주의 상상도 하지 못할 거대함, 믿을 수 없을 만큼 반감기가 짧은 아원자 입자들의 미세함 등 창조 질서에 대해 알수록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를 흠모하게 되고 더없이 경외하게 된다. 이런 반응은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