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러시아는 멀고도 먼 나라, 너무도 추운 동토의 나라… ,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아주 가까운 이웃국가이고, 여름엔 우리나라 못지않게 무더운 나라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우리와 깊은 관계를 지녔던 나라다.
러시아 땅의 2/3가 아시아에 걸쳐 있다.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단어는 지리적으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정서도 그렇다. 러시아 사람들은 서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동양적인 의식과 정서를 갖고 있다. 자연에 순종적이며, 공동체를 중시한다. 말과 행동을 통일하려하고, 분석하기보다는 종합적인 사유에 익숙하다. 깊은 모성애와 사람들 사이의 우정의 연대감도 크다. 우리 한국인들이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정서의 많은 부분을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서 발견한다. 러시아의 민속 음악을 듣노라면 우리의 옛 음악을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애절하고 구슬프다.
지난 70년 혹은 100년 가까이 한국인에게 러시아, 러시아인은 정치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국가요 국민이었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그들은 적성국으로서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그에 대한 말만 꺼내도 정치적 의심을 받는 지경이었다. 러시아는 서방을 통해야만 자그나마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었던 그런 나라였다. 그 결과, 러시아를 제대로 아는 한국의 전문가나 지식인이 거의 없었으며, 한국인 대다수가 미국을 통해 러시아를 이해했다. 그것도 할리우드 영화, 편향적인 정치잡지, 반소련 정치인과 역사적인 낭설을 통해서 말이다.
세계화의 의미를 정보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부당한 일이다. 이제는 부당했던 역사를 끝내야 한다. 남의 말만 듣고 이웃을 판단할 수 없듯이, 미국과 서방의 말만 듣고 러시아를 판단 할 수는 없다. 이는 러시아와 러시아인에게 부당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치명적인 실수로 남을 것이다. 실수는 개인적일 수도, 외교적일 수도, 경제적일 수도, 세계 정치적일 수도 있다.
메진스키 교수는 러시아에 관한 제반 낭설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졌으며, 어떤 정치적 관계 속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러시아와 러시아인을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러시아에 관한 여러 이미지들,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러시아에 관한 온갖 정보들이 근거 없는 낭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저자 메진스키는 목소리 높여 강조한다. 러시아를 위한, 러시아에 관한, 러시아인의 항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을 직접 비난하기보다, 러시아인 자신을 향해 성찰을 구한다. 그의 이야기가 과연 객관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그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는 러시아에 대하여 매우 왜곡되고 부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이 우리에게는 충격적이고 아, 속고 살았구나 하는 반성을 유발할 것이라 믿는다. 역사를 통해 왜곡된 러시아의 기억을 메진스키 교수의 이야기에 덧씌우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 주길 바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님의 권유가 없었다면 이 책을 번역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총장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세 권의 방대한 책을 함께 읽고 발췌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신 타마라 카플란 교수님, 초벌 번역에 참여해 준 한노과 나의 제자들 김규형, 김은혜, 김자영, 류경희, 송선희, 신유경, 안혜령, 정보나, 유명화, 꼼꼼하게 원고를 정리해 준 이지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은 라디오 방송을 위해 자연스러운 구두체로 쓰여졌다. 학술적으로 추가해서 설명할 내용이 아니라서 본 서문에서는 본문내용을 인용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직접 보물을 건져 올리시기 바란다. 번역의 오류가 있다면 당연히 본인 책임이며 독자의 질책을 바란다.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
저의 저서 ‘러시아 민족에 관한 신화’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아닌 외국에서 저의 저서가 소개되는 것도 처음입니다. ‘러시아를 둘러싼 낭설에 관하여’가 처음으로 소개되는 해외 국가가 한국이라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출판사에서 보여주신 관심 덕분에 ‘러시아를 둘러싼 낭설에 관하여’를 한국에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책을 읽고 계실 모든 한국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인과 러시아인만큼 서로 다른 민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한 다름은 겉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습으로 보자면 두 나라 국민은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한국인, 러시아인 모두 미국에서 입기 시작한 청바지를 입고, 러시아 과학자 즈보르킨이 발명한 텔레비전을 보며,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양국 국민 모두 러시아 과학자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만든 한국산 핸드폰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이렇듯 겉모습은 닮았지만, 내면을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양국 사이에는 굉장히 큰 문화적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제 저서 ‘러시아를 둘러싼 낭설에 관하여’가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정교(正敎)의 종주국입니다. 또한 몇 십 년 동안 공산주의는 러시아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측면을 보자면,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수는 50만 명입니다. 이처럼, 한민족은 러시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고려인식 매운 당근요리는 러시아인의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국 문화가 러시아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고려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들의 책임감과 조직력을 높이 평가해 왔습니다. 저의 절친한 친구 중에 러시아 한인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러시아 국회 하원에서 한·러 의원 친선 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의 저서 ‘러시아를 둘러싼 낭설에 관하여’를 통해 한국인들이 러시아 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러시아 인들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러시아 민족은 여러분께 더 이상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