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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

엔조

: 철학자 개 엔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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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39쪽 | 460g | 148*210*30mm
ISBN13 9788984371088
ISBN10 898437108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난 늘 인간과 비슷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내게는 다른 개와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개의 몸을 입고 있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이다. 몸 안에 뭐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영혼. 내 영혼은 인간인 것을.
난 이제 인간이 될 준비가 다 됐다. 죽음으로 나의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것을 안다. 기억 전부를, 경험 전부를 잃겠지. 그것들을 안고 다음 생으로 가고 싶지만-스위프트 가족과 겪은 일이 워낙 많아서-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억지로 기억하는 것 외에 어쩔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걸 영혼에-위도 옆도 없고, 페이지도 없고, 아무 형태도 없는 영혼에-새기려 애쓸 수밖에. 내 존재의 주머니 속 깊이 박혀서, 새로 눈을 떴을 때 물건을 쥘 수 있는 손을 보면 알리라. 이미 알고 있으리라. ---pp.8~9

데니는 레이싱을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한순간의 일부이며, 그 순간을 제외한 어떤 것도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은 나중에 해야 된다.
위대한 챔피언 줄리언 사벨라로사는 ‘레이싱을 할 때는 내 몸과 마음이 워낙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나는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했다가는 실수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p.20

데니가 외출하면 이브가 내게 밥을 차려주었다. 그녀가 몸을 굽혀 사료그릇을 줄 때, 내 코는 그녀의 머리 근처에 있게 된다. 그때 나는 나쁜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나무 썩는 냄새, 버섯 상한 냄새, 축축하고 질펀하게 썩는 내. 이브의 귀와 누관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브의 머리에 뭔가 이상이 있어보였다. 내가 말할 수 있었다면 데니와 이브에게 경고할 수 있었으련만. 병이 발견되기 한참 전에.
안타깝게도 그들은 오랜 후에야 기계와 컴퓨터, 인간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의료장비를 동원해 병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첨단 의료장비를 정밀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투박하고 무딘 편이다. 증상에 무게를 두는 의료철학에 근거해 반응할 뿐, 늘 한 발 늦기 때문이다. 내 코는-그렇다, 맨질맨질하고 작고 검은 코는-이브보다도 한참 전에 뇌가 병들었음을 알았다.---p.42

레이싱에서 차는 눈이 가는 곳으로 간다고들 말한다. 차가 멋대로 스핀할 때 드라이버가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 차는 벽에 부딪친다. 타이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낄 때 드라이버가 트랙을 내려다보면 차를 제어할 수 있다.
차는 눈이 가는 곳으로 간다. ‘증명할 것이 눈앞에 있다’와 같은 말이다.
레이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p.90

진정한 영웅이라면 흠결이 있다. 진정한 챔피언이라면 승리 자체보다는 승리하기 위해 어떤 장애물을 넘고 극복해왔는지를 보아야 한다.
흠결이 없는 영웅은 사람과 우주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레이싱 역사상 가장 재능이 뛰어난 포뮬러 원 드라이버이자 역대 최다 우승한 마이클 슈마허가 팬들이 좋아하는 챔피언들의 순위에서 밀려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슈마허는 아일톤 세나와는 다른 드라이버다. 세나 역시 귀신 같은 기술을 구사하는 드라이버였지만 관객들을 향해 매력적인 윙크를 보낼 줄 알기에 슈마허보다 카리스마 넘치고 감성적이라고 평가받는다.---p.145

가끔은 상대 차가 앞서가지 못하도록 자리를 지키는 게 유리한 경우도 있다. 레이스 전략상 혹은 심리적인 이유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이다. 때로 드라이버는 경쟁자보다 뛰어나다는 걸 입증해야 하니까.
레이싱은 훈련과 지략의 싸움이다. 단순히 누가 더 속도를 잘 내는지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마지막에는 늘 현명하게 운전한 드라이버가 승리한다.---pp.188~189

정말이지 내 몸을 벗어버리고 싶고, 내던지고 싶었다. 매일이다시피 저 아래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외롭고 심심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내 꼴이라니……. 문을 열고 나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조차 없었다. 인사할 수 있다고 해도 개의 혀로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악수도 못했다. 사람들에게 어찌나 말을 걸고 싶던지! 그들의 삶에 어찌나 끼어들고 싶던지! 구경이 아니라 참여하고 싶었다. 지지하는 친구 노릇 말고 내 주변 세상을 심판하고 싶었다.
---p.262

‘이건 위기에 불과해요. 위기는 곧 지나가요! 세월의 무자비한 어둠 속에 한 번 처박힌 것뿐이에요!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당신 아니었나요?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각오가 된 사람들에게는 늘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게 된다고 가르쳐줬잖아요. 그러면 자기 자신도 믿어야죠!’
하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는.
“노력했지만 이젠 정말 어려워.”
그가 말했다.
내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렇게 말할 만했다. 내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으니. 나는 개니까. ---pp.272~273

진정한 챔피언이라면 운명을 받아들일 것이다. 진창에서도 계속 달린다. 최선을 다해 라인을 유지쿇면서, 안전할 때 트랙에 진입할 것이다. 그렇다, 그는 레이스에서 몇 등 뒤로 밀린다. 그렇다,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고, 아직 살아 있다.
레이스는 길다. 너무 빨리 달리다가 중도에서 주저앉는 것보다는 차라리 늦게라도 완주하는 쪽이 더 낫다.---p.306

나는 빗속을 달리는 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 균형의 문제이자 예측과 인내의 문제이다. 빗속에서 성공적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드라이빙 기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력이 중요한 문제이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트랙은 차의 연장선이며, 비 역시 연장선이다. 하늘이 비의 연장선이라는 걸 믿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라는 걸 믿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나라는 걸 믿어야 한다.
---p.329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래브라도 & 테리어 혼혈견인 엔조는 스스로 다른 개들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의 몸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 그런 엔조이기에 사랑하는 주인 데니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제스처밖에 없다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데니는 프로페셔널 카레이서가 되기 위한 사전 준비로 시애틀에 있는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 엔조는 텔레비전에서 카레이싱을 시청하면서 갖가지 세상사와 인간사회의 지식들을 빨아들인다. 엔조는 데니와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곧 둘만의 공간에 이브가 끼어든다. 데니가 이브와 결혼한 것.

어느 날 이브는 데니가 카레이싱 때문에 집을 비운 사이 출산을 하게 되고, 엔조에게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엔조는 데니의 아기 조위를 끔찍이 좋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엔조는 이브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민한 후각을 통해 알게 된다. 조위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이브는 자주 심한 두통에 시달리지만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때를 놓치게 된다.

이브의 고통스런 투병생활과 함께 데니의 가족에게는 시련이 밀어닥친다. 지금껏 데니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던 이브의 부모가 나타나 가족생활 전반에 걸쳐 노골적인 간섭을 시작한다. 급기야 이브가 세상을 떠나면서 데니와 처부모는 조위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법정싸움을 전개한다. 데니는 송사를 벌이는 동안 그나마 조금 있던 재산이 소진되다시피 한다. 좌절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 일보직전 곁을 지키는 엔조의 우정은 데니에게 재기를 위한 정신적 발판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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