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것을 지음은 대개 바른 체재體裁와 엄격한 성률聲律을 택한 것이 아니다. 다만 본래 사적을 서술하고 참된 마음을 전달하여 향산香山 백거이白居易와 석호石湖 범성대范成大가 했던 바와 비슷하게 되면 되는 것이다. 또다시 생황과 종소리의 절주에 어울리고 고운 베와 수놓은 비단의 문채와 나란히 하여 높은 벼슬의 여러 군자들의 반열에 아첨하기를 바랄 일이 있겠는가? --- p.30 「영남악부서嶺南樂府序」중에서
백결선생百結先生은 그 이름을 잃었다.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사람으로, 집이 매우 가난하여 백여 곳 기운 옷을 입었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금琴을 잘 다루었는데 무릇 희로애락의 일에 있어 반드시 금琴으로 마음을 풀어내었다. 한 해가 저물려 할 때 이웃 마을에서 곡식을 찧었는데 그 처가 절구 소리를 듣고 “남들은 모두 곡식을 찧는데 우리집만 홀로 그러질 못하니 어떻게 한 해를 넘기리요?”라고 하였다. 선생은 탄식하며 “죽고 사는 데에는 천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인데 당신은 어찌 걱정을 하는지요?”라고 하였다. 이어 금을 튕겨 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그를 위로하였다. 그뒤 세상에 전해져 대악?樂이라 하였다. --- p.61 「용저악」중에서
김후직金后稷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사람이다. 왕이 사냥을 좋아하여 후직이 간절히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가 죽을 때에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신하가 되어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구나. 내가 죽거든 왕이 사냥 다니는 길가에 묻어라.”하였다. 그의 아들이 그대로 따랐다. 훗날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도중에 “왕이여, 가지 마소서.”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왕이 이것을 듣고서 물으니, 시종侍從이 “김후직의 무덤입니다.”하고, 드디어 임종 때의 말로써 간하였다. 왕이 눈물을 글썽이고 종신토록 다시는 사냥을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것을 ‘묘간墓諫’이라 하였다. --- p.81 「왕이여, 가지 마소서王毋去」중에서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때 아들 일곱을 둔 과부가 있었는데, 사통私通하는 남자가 물의 남쪽에 있어 아들들이 잠든 것을 살피고 나서 그 곳을 왕래하였다.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밤길에 물을 건너다니시니 아들로서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고 돌다리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부끄러워하여 행실을 고쳤다. 당시 사람들이 이 다리를 이름하여 ‘효불효孝不孝’라고 하였는데, 다리는 경주부 동쪽 6리에 있다. --- p.119 「효불효孝不孝」중에서
고려 신우辛禑 2년(1376)에 왜구가 합포合浦[지금의 창원부昌原府]에 쳐들어왔다. 이보다 앞서 원수 김진金鎭이 도내의 기생과 악공들을 크게 모아놓고 휘하들과 함께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놀았다. 군중軍中에서 그 무리들을 ‘소주도燒酒徒’라고 불렀으니, 김진이 그들과 함께 소주를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 또 형장刑杖이 지나치게 혹독하여 모든 군사들이 원망하고 분통해 하였다. 왜구가 이르자, 군사들은 뒤로 물러서서 싸우지 않고 말하길 “원수는 소주도로 하여금 적을 칠 터이니, 우리들이 무엇을 하리요.”라고 하였다. 드디어 패함에 이르렀다. --- p.169 「소주도燒酒徒」중에서
고려 말에 배원룡裵元龍이란 자가 있었는데,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백성을 수탈하는데 백성들의 쇠스랑[鐵杷]까지 걷어서 집에 싣고 가는 정도였기에, 부민府民들이 ‘철문어鐵文魚 부윤府尹’이라고 불렀다. 팔초어八梢魚는 속칭 문어文魚인데, 쇠스랑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p.171 「철문어鐵文魚」중에서
주인원朱印遠이 경상도 안렴권농사按廉勸農使가 되었는데, 까치 소리 듣기를 싫어하여 늘 사람들에게 활과 화살로 쫓아내도록 시켰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은병銀甁을 징수하니, 사람들이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 p.173 「까치 쫓는 명령鵲令」중에서
영동신靈童神은 풍신風神이라고도 한다. 영남의 풍속은 매년 중춘仲春에 각 집에서 명수明水를 떠놓고 술과 고기를 갖추어 풍신에게 제사지내는데, 제사는 반드시 어두울 때에 해야 한다. 이 달에는 문상과 송장送葬, 그리고 온갖 상서롭지 못한 것을 꺼리는데, 특히 개를 잡는 것을 꺼린다. 이에 대해 선비들에게 물으니, 이 풍속이 누구에게 시작되었고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두 모른다고 한다.
--- p.194 「영동신靈童神」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