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우주 삼라만상, 곧 대자연 그 자체의 합작품이다. 그 의미와 의지를 모른 채 자연과 대립자가 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여 생명의 양식인 먹을거리를 기르며 살아가고자 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어머니 대지에 반역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사탄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화전에서 시작한 농업 발달,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농업의 변천 및 문명 발달의 역사가 그대로 자연파괴의 역사가 되어왔다. --- p.3
일반적으로 자연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합니다. 다만 무엇이 자연인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최초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 결국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한 것입니다. (…) 자연상태의 흙이란 그냥 두어도 절로 비옥해지기 때문에 비료 따위는 넣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자연상태를 인간이 파괴하여 땅힘을 없애버린 채, 거기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비료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과일나무와 벼를 연약하게 만들어놓고, “농약을 썼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 pp.26-27
농약 뿌리기는 병충학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른바 인간의 진선미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 요컨대 철학자와 종교인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까지 참가하는 검토회를 열어서, 농약을 뿌려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뿌려서는 안되는 것인지, 비료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단 한번만이라도 이 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면, 인간의 지혜라든가 사고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pp.40-41
이상 증세에는 반드시 인간 쪽에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이 반성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연적인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자연농법의 네가지 원칙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자연의 힘을 살리고 그 질서를 따르는 일일 따름입니다. --- p.54
결국 ‘인위’를 가치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가치관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머리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오염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나빠질 뿐입니다. 그것이 실상입니다. 대책을 세우는 만큼, 오히려 문제는 악화되며 내부로 곪아갑니다. --- p.97
“유기농업은 (…) 과학농법과 차원이 같다. 실천하고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옛날의 퇴비농법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유기농법을 자연농법의 일부로 보이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자연농법은 (…) 과학농법의 차원에서 벗어난, 동양철학의 입장, 동양사상이나 종교의 입장에서 본 농법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완성을 목표로 한 농업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하나의 철학혁명이며 종교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p.143-144
현대 과학문명의 방황을 타개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그 기반으로 자연농법을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농법은 이미 오랜 옛날, 몇천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현재도 농업의 원류로서 엄존해 있으며, 미래에도 역시 농업의 궁극 목표로서 남게 되는 농법입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말하자면, 때로는 원시농법으로 보이기도 하고, 현대농법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도 하고, 미래를 앞서 거머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자연농법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변화가 자유로우나 축소나 확대가 없는 부동의 일점입니다. --- p.145
미국의 농민이 가난하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 농민이 일본 농민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있고, 풍요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다른 나라에 뭔가를 팔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식량을 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사실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 정말로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에 의한, 생명의 샘과 같은 식량을 생산하여 국민 모두가 풍요로운 식생활을 한다면 아무것도 다른 나라에 수출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 pp.254-255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농사를 위해, 그러한 생활을 위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자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보잘것없는 삶이 되고, 보람 없는 생활이 되지 않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한가하게 낮잠을 자며 지낼 때 거기서 가장 유쾌한 세계가 전개됩니다.
---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