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만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즉 ‘직업으로서의 작가’(전업작가)는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1980년대라고 봅니다. 물론 이청준, 최인호, 황석영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1970년대가 되면 소위 문학으로 먹고사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성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p.24
“9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운동의 도구로서의 문학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소멸되자 ‘직업으로서의 문학’이 일반화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90년대 초반을 풍미한 소위 ‘후일담문학’이라 할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 그것들은 80년대의 시대정신(정치적 문학)에 대한 반성 내지 비판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투항이었습니다. 신경숙과 공지영이 바로 그것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이후의 한국문학은 그녀들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p.26
“‘직업으로서의 문학’이란 한마디로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한국에서 그것은 9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성립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방금 이야기한 ‘상업성=문학성’이라는 공식입니다. (중략)
다른 하나는 문예창작과의 증가와 창작자의 교수화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80년대에 문학이 많이 팔렸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에 한정된 이야기로,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여전히 빈곤한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단의 평가를 받은 작가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즈음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예창작과는 그런 창작자들을 대거 대학에 흡수시켰습니다. 이런 문학인의 집단취직은 매우 특기할 만한 문학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백 명의 생계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p.29~30
“순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많이 팔리지 않습니다. 운 좋게 팔려도 겨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문학하기 좋았던 시절로 회상하는 것은 ‘상품성=문학성’이 상식으로 통하는 지금의 관점(90년대에 시작되어 2000년대에 고착된)을 과거에 역투사하기 때문입니다.”--- p.32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까? 정말이지 심각하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더 이상 문학인들을 지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특혜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문학인들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지난 100여 년간의 한국문학사에서 지금처럼 문학가들이 잘 먹고사는 때가 없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 벌컥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사실이 그러합니다. 그저 창작만 해서는 살기가 힘들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옛날이 더 힘들었습니다. ‘문학으로 먹고살기’가 모든 문학가들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지금이 그 로망을 이룬 사람이 가장 많은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문학의 위기가 처음 감지되던 90년대, 당시 한국문학계에는 전례 없는 풍요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답은 대학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예창작과에 있습니다. 이 시기 신분이 불안했던 창작가들의 대학진출이 대거 일어납니다. (중략) 한국의 비평가들과 창작자들은 대학이라는 우산 아래서 신분보장은 물론 경제적 안정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85
“우리에게 경제적 관계란 곧 도덕적 관계이다.”(시마자키 도손) 이는 문학이란 국가의 보호대상이나 치부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했기에 문학가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 재야에서 겪는 소외감(쓸쓸함)이란 문학가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p.94~95
“오늘날 작가가 작품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은 비판을 받을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크게 장려될 뿐만 아니라 팔리지 않는 작가는 아내에게서조차 작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대이지요(간 큰 남자 현진건인 셈이죠).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분위기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으로, 일부 작가의 성공이란 다른 수많은 작가들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성공한 작가들은 자신들의 상업적 성공을 문학적 성취로 착각하고 통장에 거액이 들어와도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어쩌면 그들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은 자가 노력한 자이고 능력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경제적 관계가 곧 도덕적 관계인 셈이지요.”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