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에서 우리를 괴롭힌 것은 대담하고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석대의 보복이었다. 석대가 떠난 뒤로 한 달 가까이 우리 교실은 매일 같이어딘가 한 모퉁이는 자리가 비었다. 석대가 길목을 막고 있는 동네의 아이들이 결석하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입게 되는 피해는 하루 결석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어딘가 후미진 곳으로 끌려가 한나절 배신의 대가를 치렀고 그렇게까지는 안 돼도 가방이 예리한 칼로 찢기거나 책과 도시락이 든 채 수챗구덩이에 던져졌다. 나중에 석대를 몰아낸 걸 아이들이 공공연히 후회할 만큼 그 보복은 끈질기고 집요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안팎의 도전들은 차츰 해결되어 갔다.
--- p.188
이윽고 수업시간이 끝난 걸 알리는 종이 울리자 담임선생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백지들을 도로 거두어 말없이 교실을 나갔다. 아무런 선입견이 없음을 보여주려는 듯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교무실로 불려간 사이 석대가 아이들을 상대로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도 이번만은 그의 모든 죄상이 어김없이 백일하에 드러날 줄 나는 굳게 믿었다.
우리들의 그 무기명 고발장을 다 읽고 오느라 그랬는지, 다음 시간 선생님은 한 10분쯤 늦게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그는 자신이 읽은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내비치지도 않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다음 시간도, 그 다음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만 해나갈 뿐이었다. 수업 중 이따금 나와 눈길이 마주칠 때도 있었으나 그때조차도 특별한 조짐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례까지 끝난 뒤에야 비로소 담임선생은 날 불렀다.
--- p.89-90
야속스럽기는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과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새로운 전입생이 들어오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기 바쁘게 그를 빙 둘러싸고 이것 저것 묻기 마련이었다. 공부를 잘하는가, 힘은 센가, 집은 잘 사는가, 따위로 말하자면 나중 그 아이와 맺게 될 관계의 기초가 될 자료 수집인 셈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급우들은 새로운 담임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저만치서 힐끗힐끗 훔쳐 보기만 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몇 명 몰려와 묻는다는 게 고작 전차를 타봤는가, 남대문을 보았는가 따위였고, 부러워하거나 감탄한다는 것도 기껏 나만이 가진 고급한 학용품 따위였다. 하지만 삼십 년이 가까워지는 오늘까지도 그 전학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만든 것은 아무래도 엄석대(嚴石大)와의 만남이 될 것이다.
「모두 저리 비켜!」
--- p.17
나는 진작부터 아이들의 박해와 석대의 구원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으며, 결국 그것 이 나를 그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음흉한 술책임도 차갑게 뚫어보고 있었다.
--- p.47
「짐작은......간다. 모든 게 ― 맘에 차지 않겠지. 서울식과는...... 많이 다를 거야. 늑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돼먹고 ― 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이곳의 방식이다. 자치회가 있고, 모든 게 토론과 투표에 의해 결정되고 ― 급장은 다면 심부름꾼일 그런 학교도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서울 아이들같이 모두가 똘똘 하면...... 오히려 학급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 마땅하겠지. 그러나 거기서 좋았다고...... 그게 어디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의 방식이 있고...... 너는 먼저 거기 적응할 필요가 있어. 서울에서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이곳은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해.
굳이 그게 옳다고 고집하고 싶다면...... 너의 태도라도 바꿔. 네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반 아이들 모두와 싸우려 하거나 ―외토리로 빙빙 겉돌아서는 안돼. 봤지? 오늘...... 육십 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 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 p.20
「짐작은......간다. 모든 게 ― 맘에 차지 않겠지. 서울식과는...... 많이 다를 거야. 늑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돼먹고 ― 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이곳의 방식이다. 자치회가 있고, 모든 게 토론과 투표에 의해 결정되고 ― 급장은 다면 심부름꾼일 그런 학교도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서울 아이들같이 모두가 똘똘 하면...... 오히려 학급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 마땅하겠지. 그러나 거기서 좋았다고...... 그게 어디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의 방식이 있고...... 너는 먼저 거기 적응할 필요가 있어. 서울에서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이곳은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해.
굳이 그게 옳다고 고집하고 싶다면...... 너의 태도라도 바꿔. 네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반 아이들 모두와 싸우려 하거나 ―외토리로 빙빙 겉돌아서는 안돼. 봤지? 오늘...... 육십 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 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