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머리를 가져다 놓을 작정으로 요요기하치만 역에서 내려 조금 걷기로 했다. 오전 6시, 공기는 맑고, 펜스로 둘러싸인 요요기 공원의 녹음은 새벽이슬에 젖어 싱그러웠다. 큰길에 자동차가 늘어나고 주택이나 빌딩에서 가스를 배출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라질 귀중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지금은 알 바 아니다. 걸음을 재촉해 높은 건물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빌딩 숲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요요기하치만 주변은 평범한 주택가지만 이노카시라 거리를 따라 우다가와초 근처까지 내려오면 그곳은 이미 시부야다. 네온사인을 뽐내는 휘황찬란한 빌딩들도 담백한 태양 빛 아래에서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중략)
낮은 수풀에 둘러싸인 아키타견 동상. 어려서부터 뉴스 등을 통해 잘 알고 있었고, 상경한 후에는 더 친숙해진 명소이자 명물이다. 이 동상을 설마 이런 식으로 이용하게 될 줄이야.
하치코 동상 앞에 서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편의점 봉지를 뒤적였다. 왼손에 든 가방으로 감추면서 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서리가 끼어 파란 비닐 시트에 붙은 탓에 양손을 사용해야만 했다. 뒤를 지나는 구둣발 소리가 등을 찌르는 듯했다. 그러나 조심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그녀를 봉지에서 쑥 끄집어내 양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집고 살며시 들어 동상 다리 사이,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 p.7~10
창에 비치는 내 인상이 어두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아니 내가 사건을 일으키고 나서 벌써 사흘째다. 그렇게 확실한 실마리가 있는데도 아직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고생을 하며 그녀의 머리를 잘랐다고 생각하는가.
평판이 아깝다. 이러면 안 되지, 일본 경찰. 퇴근길 전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주어졌다. 이제 서둘러 조사하기만 하면 된다. 시부야 역 앞에 사람 머리를 유기한 엽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나를 체포하기 위해. --- p.51~52
복도에 들어선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들어가지 말라고 한 내 방에 누군가가 멋대로 들어갔을 때의 감각. 아무리 전과 다를 것 없어 보여도 묘한 위화감이 있다. 그 감각이다. (중략)
냉장고 문을 열었다. 파란 불빛과 함께 새하얀 냉기가 넘실거리는 내부를 술기운 탓에 어렴풋한 눈으로 주시했다. 특별히 이상은 없는 듯 보였다. 그야 목부터 그 위가 없는 젊은 여성의 나체가 무릎을 접고 앉아 있는 상황이 이상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래도 시선을 계속 움직였고 이윽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뭔가 다르다, 뭔가가……. 그녀의 전신을 필사적인 시선으로 좇다가 이변의 형태를 간신히 깨달았다. 떨리는 손을 냉장고 안으로 뻗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라와 있는 딱딱한 손가락으로 향했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그녀의 그 부위를 건드리지 못했다. 조그만 그루터기 같은 절단면을 남긴 채 그녀의 왼쪽 손가락이 엄지를 제외하고 전부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 p.75~76
다음 타격은 귀로 왔다. 뒤에서 머리를 치려고 한 모양인데, 내가 움직이는 바람에 귀에 닿았다. 연골이 두개골에서 벗겨지는 쩍쩍 소리가 고막 안에서 울렸다. 귀 안에서 난 소리여서 아주 잘 들렸다. 얼굴 오른쪽에서 뜨거운 액체가 분출하는 소리도. 그것이 차츰 뺨을, 아니 얼굴 오른쪽 전체를 덮었다. 오른쪽 시야가 빨갛다. 망막이 직접 색과 온도를 느끼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중략)
코앞까지 닥친 벽돌 바닥에 손을 짚어 지지대로 삼으며 필사적으로 충돌을 피했다. 엎드린 자세에서 옆구리를 걷어차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대는 내게 상당한 원한이 있나 보다. 견디지 못하고 나는 옆으로 밀리며 땅을 굴렀다. 벽돌이 강판처럼 뺨을 갈았다.
그 덕분에 몸이 뒤집어져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의미했다. 상대는 까만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 얼굴은 물론이고 눈 색깔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 대자로 누워 초고층 빌딩을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처음 하는 경험이다.
‘아아, 아름답다.’
왜 좀 더 일찍 해보지 않았을까. 아직 빛이 듬성듬성 남은 창과 빌딩의 새하얀 벽 그리고 가로등과 달과 별이 이루는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다. 다들 이렇게 침착하게 밤하늘을 바라보면 좋을 텐데. 역 앞에서 발광하는 폭도들도 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앞에 두면 조금쯤 반성하겠지.
다들 너무 바쁘다. 나는 미소 지으며 옆에 선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아까 나를 후려갈긴 벽돌을 쥐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얼굴로 짐작되는 부근을 올려다보며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눈살을 찌푸렸다.
“뭘 망설이고 있어. 손에 든 벽돌로 두세 번 내 얼굴을 내리치면 다 끝나는데.”
그때 내 귀에 추오 거리 너머 도청 쪽 대로에서 다가오는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렸다. 두엇 정도 되는 주정뱅이들의 목소리로, 이런 밤에도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는지 정적을 요란하게 깨뜨렸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한참 기다려도 마지막 일격이 오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며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을 때 주변에는 신기루처럼 아무도 없었다. --- p.181~183
끝없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어쨌든 내일은 회사도 업무를 재개할 것이다.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아아, 살인 사건이 일어나든 천재지변이 일어나든 회사는 멀쩡하게 영업을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섭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p.203
창 너머로 오전 중의 맑은 겨울 하늘과 거리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저 하늘이 이어진 곳에 있을 더운 나라와 작년 여름까지 살아 있었던 한 여성, 불과 2주 전까지 살아 있었던 한 남성을.
조금 부러웠다. 죽은 두 사람이. 결국 이번 사건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흔들리는 커튼 너머로 작은 얼굴이 하나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또 그런 여성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후에도 그녀와 보냈던 시간은 충만했다. 그것 역시 인간과 인간의 결합이며 연결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중략)
그렇다면 됐다. 그녀는 그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 한 명이라도 알고 있는 인간이 있다면, 고독하지 않다. 내게는 노다와 실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내가 있다. 그렇다면 기쁘겠는데, 실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인간이란 혼자 살아가기 어렵다. 아니, 혼자 죽기도 어렵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빛이 가득한 복도로 나가 오전 중의 조용한 빌딩 안을 걸었다.
--- p.3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