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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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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 이봄 | 2018년 03월 0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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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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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50g | 130*225*20mm
ISBN13 9791188451142
ISBN10 118845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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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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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같은 추억의 짐을 안고 오른 여행길이라 하더라도 도착지는 언제나 다르다. 인생의 한 구간을 정해두고 그 구간을 사랑이라 말했던 두 남녀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대화를 한 짧고도 긴 여정. 왜 그 여정을 끝낸 두 남녀의 기억이 서로 다를까. 마치 같은 구간에서 사랑을 노래했던 음악들이 같은 가사에 다른 음이 붙은 것만 같다.
_산문 「너의 시간과 나의 기억과」 중에서

어느 터널을 지났다. 지나는 길목, 터널마다 그야말로 봄이 피어 있었던 때. 나는 조금도 봄을 만끽하지 못했다. 계절 없는 터널을 지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기분일까. 모두가 꽃을 찍어대는데 그 속에서 다른 계절에 머문 느낌이랄까. 모두가 느끼는 계절을 모르고 나 혼자 어느 특정한 시절에 멈춰 살고 있다면 차라리 계절이 없는 편이 낫겠다는 기분이었다.
그 터널을 지나오며 햇빛과 비를 동시에 본 것 같다. 겨울옷을 입고 있지만 옷 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봄이 뛴다. 봄의 시절이. 그래, 우산을 펼쳐도 그토록 눈이 부셨던 날이 있었지. 나는 햇비를 맞았었지. _산문 「햇비가 내리던 날」 중에서

흔적을 걸어두면, 그림이 될까요

정물화가 걸린 벽에서
움직이지 않는 감정들을 바라봅니다
한때는 오른쪽에 한때는 왼쪽에 두었던
언어보다 사랑스러운 배치에 대해 생각합니다
날아가던 바람이 왼쪽에 앉을 때
정지한 사물들이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풍경화가 걸린 벽에서
껴안은 구간의 감정들을 바라봅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만 싹둑, 한 계절로 담았던
편집된 공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나가던 구름의 손이 다른 곳을 더듬을 때
나무와 지붕의 대사가 달라집니다

그림을 걸어두면, 흔적이 살아날까요
_시 「벽의 장르」 전문

P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까워질 일상은 많았다. 자주 만나 길을 걷고 메일을 주고받고 안부를 묻고 서로 읽은 책을 추천하고…… 그래서 나는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는 박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6개월, 1년이 지났다. 계속해서 우린 만나 걷고 이야기하고 웃고 진지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내가 너무 관계를 규정하려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불쑥 만나는 게 가장 가깝고도 편한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_산문 「우리의 암호」 중에서

기차표를 끊다가 골목길을 걷는다
한밤의 반짝거림과 언제나의 오후 사이였다
편지를 쓰다가 키스를 하던 날에는
안부와 현재 사이에 안고 있는 그림자 둘이 있었다
배낭을 놓고 잔디밭에 누우면 그곳이 옥상 같아서
우린 꼭 둘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에 있는지 서서히 잊게 되는 시간 앞에서
사랑은 언제나 반의 여행과 반의 일상이었다
낯선 온도에서도 사계절을 예감하듯이
_시 「사랑은 언제나 반의 여행과 반의 일상」 전문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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