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는 애써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잘 자랄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죽는다 한들 안타까울 것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면 굵고 튼실한 놈을 새로 사다 심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만 원이면 1년을 살 수 있는데….
볼 때마다 눈총을 쏴대도 대추나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두고 보라는 듯 몸집을 차근차근 불려 나갔습니다. 뜨거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쉬는 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돌아보면 커있고 다시 보면 어느새 또 클 수는 없었겠죠.
5년이 흘렀습니다. 제법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 거짓말처럼 대추가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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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쓰는 사람의 몫입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있어도 쓸 줄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습니다. 국화는 주인을 잘못 만나 애꿎게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마당 한켠에 이른 봄부터 짙푸른 잎을 달고 있는 풀이 있었습니다. 심은 기억은 없지만 흔한 잡풀 같지는 않아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와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꽃도 못 피우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왠지 더 지저분해 보여 10월 초쯤에 잘라버렸습니다.
이듬해 그 자리에 또 녀석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일찌감치 없앨까 하다가 하는 짓이 범상치 않아 못 본 척했습니다. 지켜보는 것이 그리 힘든 것은 아니니까요.
--- p. 18
세월은 그렇게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허투루 가는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쉬고 있는 것 같아도 늘 다음 세월을 준비합니다. 보통은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 맞겠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 쓰는 게 맞겠죠. 하지만 더러는 때가 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듯합니다.
느린 세월도 의외로 꽤 있습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오는 세월은 반드시 옵니다.
8~9월의 그 험한 태풍을 몇 차례나 맞고도 국화는 끄떡없었습니다. 모양새가 좀 흐트러진 게 안쓰럽고 흐느끼면서도 잘 견딘 녀석이 대견해 뒤늦게 받침대를 세우고 단단하게 묶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보니 꽃대 절반부가 꺾여져 있었습니다. 그다지 큰 바람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게 해야 버틸 수 있는 법인데 흔들리지 못하게 막아버려서 일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흔들려야 할 세월에는 흔들려야 합니다.
--- pp. 19~20
내가 걸어 다닌 이유는 그때그때 조금씩 달랐다. 중고등학교 땐 차(버스)멀미가 심해서 1~2km쯤은 걸었다. 대학 시절엔 더러 버스비 아껴 한잔하느라고 여럿이 어울려서 걸었다. 술 한잔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걸은 적도 있고, 눈길이 탐스러워서 걷기도 했고 비 맞는 게 신나서 걷기도 했다. 40대 후반엔 당뇨에 좋다고 해서 걸었다. 지금은…, 그냥 좋아서 걷는다. 걸어야 하기에 걷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걷는 것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두거나 잘난 척하지 않는다. 걷기 좋다는 길을 굳이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조금 빨리 걸어야 몸에 좋다고 해도 귓등으로 흘린다. 느리게, 천천히도 그닥 따지지 않는다. 걷는 방법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서 걸어 다닐 뿐이고 내 기분대로 걷는다. 약속 시간에 늦을 듯하면 조금 빨리 걷고 일찍 도착할 것 같으면 5~10분쯤 길을 돈다. 매일 차 타고 다니는 길이 궁금해서 걷기도 하고 처음 가는 장소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걷기도 한다.
그 좋다는 제주 올레길을 걸은 적은 없어도 한탄강에서 집까지 걸은 적은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걷지 못했어도 강화도까지 걸어가서 나들길 몇 코스를 다닌 적은 있다. 별 생각 없이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올림픽공원까지 간 적도 있다.
가끔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얽매이진 않는다. 힘들면 가다가 만다. 그냥 정한 것이지 꼭 가야 하는 곳도 아닌데 정했다고 굳이 가야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다음에 가도 되고 또 아니 간들 어때서.
--- pp. 65~66
사실 우리 대부분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집에서는 가족과 어울려야 하고 직장에선 동료들과 시간을 보낸다. 복잡한 도심에선 싫어도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쳐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 보니 생각하는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에 쫓기듯 매양 허겁지겁이다.
1시간여를 걷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 머리를 텅 비우게 된다. 텅 빈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이 피어오르면서 이내 깊은 상념에 빠지고 그럴 즈음이면 되면 소위 정신통일이라는 게 되어 머리가 맑아진다. 깊은 생각은 사람을 더욱 총명하게 만드는 법이니 굳이 책상다리 하고 앉아서 명상 수련을 할 필요가 없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집중은 대단한 효과가 있다.
--- p. 71
전화도 없고 차도 없었던 그 옛날엔 멀리 사는 친구가 보고 싶으면 몇 시간씩 걸어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게 1년에 한 번일 수도 있고 몇 년에 한 번일 수도 있다. 오래 못 본 친구를 찾아 나서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을 터. 그리운 얼굴, 뜻하지 않게 만나니 어찌 아니 즐겁겠는가. 잠깐 보고 돌아서기도 아쉽지만 돌아갈 길이 머니 1박 2일은 당연한 일. 술잔 기울이며 세상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글 이야기 하다 보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판. 자칫 길이라도 어긋나면 하루 이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얼굴 마주보고 있으니 그 감흥이야말로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공이 하나인 지금 세상에서 보면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만 걷는 것이 공간을 좁히는 유일한 방법일 때라면 이야기는 썩 달라진다. 하긴 집집마다 전화가 있지 않았던 우리 젊었을 때만 해도 친구 집에 갔다가 못 만나고 그냥 돌아선 적이 꽤 있었다.
--- p. 95
길은 많다. 대한민국이 좁다고…, 모르고 하는 말이다. 굉장히 넓고 아름다운 길이 수없이 많다. 가는 길은 모두 아름답다. 사계절 모습을 바꾸니 같은 길을 네 번 가도 지루하지 않다. 죽을 때까지 걸어도 우리 땅 반의반도 못 걷는다.
봉화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불영계곡이나 경북 영양의 숨겨진 길이나 영월 내리계곡 길은 풍광 자체만으로는 산티아고보다 좋다. 승부역 길, 영월의 김삿갓 길과 동강 서강길이나 주천강 길, 평창 조각공원길, 진부령 길은 그냥 사유의 길이다. 해운대 기찻길 옆 바닷길, 울산 정자 길, 경주 감포 길, 영덕의 50킬로미터 블루로드, 강진 바닷가 내리막길, 삼척 바닷가 숲길, 강릉 해안 길은 눈을 위한 길이다. 굳이 상계사 십리벚길, 광안리 벚꽃 길을 찾지 않아도된다. 아무길이나 길에 올라서면 길은 길을 낳고 길은 어디나 아름답다. 시골 길이 운치는 있지만 도시의 길은 역사와 문화가 있어서 또 좋다.
--- pp. 10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