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는 ‘영적’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쓰기 시작했고, 가능하면 그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어. 그 말은 성(聖)과 속(俗), 안과 밖, 세련된 종교적 감수성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추장스런 일들―기저귀를 갈고, 세금을 내고, 바꿀 수 없는 직업에 책임을 다하는 것 등―을 갈라놓는 표시처럼 보일 때가 너무나 많거든. 이처럼 ‘영적’이라는 말이 엘리트주의를 암시하는 한, 나는 가능하면 그 말을 쓰지 않을 작정이야. 아주 오랜 공백 끝에 다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들어왔으니, 너 역시 기독교 용어들의 정확한 참뜻을 알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거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그 말을 사용하는 방법에 매우 주의해야 해.
--- p.5. ‘영적’이라는 말의 참 의미가 궁금한 친구에게
네가 그랬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은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자기 자신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하나님보다 심각하게 여김으로써 더 중요한 일을 놓치곤 하지.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데도 말이야.
--- p.18. 신학자가 필요한 친구에게
오늘 아침에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네 삶에 나를 초청해 준 덕분에, 성령이 사랑과 용서와 순종의 일을 하시는 동안 함께 기도하고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몰라. 서로 3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그동안 40년에 걸친 침묵이 있었는데도 말이지.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쁨과 은혜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지루한 날들이 있다는 걸 나도 알아.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보지 않는 사이에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
--- p.24. 일상이 무미건조하다고 느끼는 친구에게 중에서
‘목회자’의 일은 기독교 공동체에 아주 중요한 명예로운 일이야. 나 자신도 목회자로서 네가 과학자로 살아온 세월만큼 목사로 살아왔어. 하지만 네 목사님의 역할은 네가 목사처럼 생각하고 일하도록 훈련시켜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여러 난관을 뛰어넘으며 회중을 관리하고 교회 재정을 관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야. 네가 목사님을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일하도록 훈련시켜서 엔트로피와 중성자와 퀘이사(quasars)의 세계에서 잘 살아가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
우리에게는 각자 고유한 일이 있어. 우리는 그 일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서로를 섬겨야 해. 자기 일을 누군가에게 대신 시키려고 사람들을 모아서는 안 되는 거야.
--- p.25. 그리스도인의 책 읽기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1
이 충고를 하면서 가정하는 것이 있어(네가 이 가정을 공유할 필요는 없어). 그것은 네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네 삶에서 어떤 일을 해 오셨고 또 하기 원하시는지를 생각해 볼 때, 지금 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이야. 이런 일은 평소에 별문제 없는 너의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가나안에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경로야. 너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 지금으로서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 p.29.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가 존경하는 옛 스승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회중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도하고자 할 때 단순히 주기도문을 가르쳤어. 기도는 우리가 무릎을 꿇고 하는 어떤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이야. 무릎이 기도의 받침대 역할을 할 수는 있어.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삶이 곧 기도가 되는 것이잖아. 나는 네가 현대 종교의 변덕스러움과 유행을 쫓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옛 방법이 더 좋은 법이거든.
--- p.51. 기도를 잘하고 싶은 친구에게 2
우리는 때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어. 우리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죄인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사실은 그 유익과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많아. 가장 큰 유익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아니겠니. 그렇기 때문에 희생 제사가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거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야.
--- p.52. 중요한 결정을 앞둔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