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특강을 하러 갔었을 때 주최측에서 강연제목을 “부정 커뮤니케이션: 거절”이라고 붙여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거절이 “싫다”는 말과 연관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거절은 부정보다는 진정 커뮤니케이션이다. 거절을 잘하게 된다는 것은 내 감정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를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나는 오랜 기간 ‘싫다’는 말을 남에게 못하며 살아왔다. 사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착하고 소심해서 그래”와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하고 그 관성으로 살게 되면 결국은 신해철의 노래 제목처럼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게 된다. 남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어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 거절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내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찾아가는 과정이다.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교환이다. 누군가는 할 말을 하고, 또 한 사람은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폭력적인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 의견은 닫아버리고 남의 의견과 부탁만 들어주면 ‘착한’ 사람이 아니라 ‘호구’가 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 먼저 ‘거울’을 쳐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거절과 관련된 이론들을 쉽게 풀어 소개하는 이유는 거절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왜 과거의 나보다 오늘 더 거절을 잘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져야, 거절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의미가 있고, 실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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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기버’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평소 남들에게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라. ‘당신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10번 정도일 때, 그중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 예를 들어, 누군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여러분이 우연히 알게 된 정보나 자료를 그것을 필요로 할 만한 사람에게 전달한다든지, 어떤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이를 알려줄 필요도 없는데 연결을 시켜준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반대로 ‘나는 남들이 요청할 때에만 거절을 못하고 계속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남에게 주는 도움이 내가 주도하여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늘 남들의 요청에 의하여 주는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움에는 자기 주도적으로 베푸는 액션으로서의 도움이 있는가 하면, 요청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주는 리액션으로서의 도움이 있다. 만약 내가 베푸는 도움들이 거의 리액션에 의한 것이라면 당신은 ‘호구’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그랜트가 말하는 것처럼 도움은 도움대로 주고, 실적은 형편없는, 즉 건질 게 없는 기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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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대기업 한 곳에서 거절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며 연극배우 두 사람을 특별히 초대했다. 그리고 워크숍이 시작되자마자 연극배우들에게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가서 다양한 부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예를 들면, “저 5만 원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제 어깨좀 주물러 주시겠어요?” 같은 난데없는 요청을 하게 한 것이다. 동시에 참석자들에게는 무슨 이유든 대면서 거절을 하라고 했다. 이때 중요한 규칙은 부탁을 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면서 거절을 하는 것이다. “아뇨. 제가 현금이 없어서 빌려드릴 수 없어요” 혹은 “저도 피곤해서 주물러 드릴 수 없어요”와 같이. 이렇게 한 바퀴 돌면서 첫 번째 연습을 한다. 두 번째 연습은 한 가지만 빼고 모두 똑같다. 이번에는 거절을 할 때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 그저 눈만 똑바로 쳐다보면서 싫다고 말하면 된다. 많은 경우 누군가에게 거절을 할 때, 이유를 대면서 정당화시킬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싫을 때 그저 싫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연습은 나 역시 코칭을 받을 때 배웠던 것인데, 마음이 약해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싫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과 마주하도록 시선을 맞추고 거절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이 연습 문제를 ‘거절의 기초 근육 키우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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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약해 거절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거절하도록 노력하라’는 말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오랜 시간 동안 거절을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다 갑자기 거절을 하려고 들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앞서 나의 코치인 파트리샤가 알려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절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평소 잘할 수 있는 성향과 연결 지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즉, 일반적으로 마음이 약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남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거절 훈련의 핵심은 실상 ‘주는 것’에 있다. 무엇을 주어야 할까? 내 마음 속의 진실, 즉 솔직한 마음이다. 심리학자이면서 《솔직함의 심리버튼》의 저자인 수잔 캠벨은 똑바로 사는 것보다 솔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비폭력 대화》에서 도 로젠버그는 결국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이것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보통 마음이 약해 거절이나 부탁을 못하는 사람들은 소통을 할 때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편이다. 이제부터 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는지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속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솔직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p.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