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전시 환경에 유입시킨 것은 박물관의 교육적 사명의 맥락에서 소장품이나 전시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람 경험이 증진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후 테크놀로지와 전시기술학의 발전에 따라,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해석 도구로서의 차원을 넘어섰다. 전시물과의 상호작용이나 참여 등, 새로운 경험 창출을 위한 전시 미디어의 개발이나 복원으로 그 역할이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의 기술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 등에 대한 실험적인 행보가 박물관 환경에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나오Nao’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대화를 나누고, 로봇 ‘기도Guido’는 도슨트로서 관람객들에게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과대학, 램브란트 미술관은 데이터 기반의 딥 러닝 알고리즘과 3D 스캐닝 및 프린팅 기술을 사용해서 ‘넥스트 램브란트’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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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박물관에 어떤 영향력을 가져올지 전망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필자가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물관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도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높아짐에 따라 ‘박물관이 제공하는 것’과 ‘관람객이 경험하는 것’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크게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기술, 빅 데이터, 한층 더 발전된 아카이빙 기술 덕분에 우리는 한 박물관에서 전 세계에 산재된 반 고흐의 작품을 만나고 가상현실 기술로 탄생한 반 고흐와 작품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테크놀로지, 예술과 디자인, 인문학적 상상력의 융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변화는 관람 경험의 가치와 의미 생성 등에 대한 성찰과 담론을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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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텍스트나 출판물 등 아날로그 형태의 해석 매체나 도슨트가 제공하지 못했던 정보 전달의 용이성 및 효과성을 증진시켰다. 관람 행태 및 학습 방식에 따라 다양한 정보 유형이나 경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박물관은 해석 매체의 기능이나 정보, 적용 기술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중략) 박물관 기술에 대한 수용은 단지 기술이 관람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사용되는 유일한 수단이라서가 아니라, 기술에 내재된 인터랙션의 발생과 경험을 전달하는 능력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효과적인 해석 도구를 제공하여 관람 경험을 증진시켰을 뿐 아니라, 관람객 개발, 특히 테크놀로지를 선호하는 젊은 계층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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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피에리넨박물관의 경우, 전시물과 관련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퍼베이시브 러닝의 특성을 지닌 ‘LieksaMyst’ 가이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비디오 등의 정보로 구성된 이 시스템의 핵심은 역할 놀이 게임이다. 버츄얼 도슨트를 활용한 이 게임은 관객이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박물관 환경과 다양한 방식의 인터션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스토리텔링 기반의 몰입형 게임이 적용된 LieksaMyst에는 아나와 쥬시라고 불리는 아바타가 등장하는데, 이들 버추얼 도슨트의 역할은 관람객을 과거로 데려가서 당시의 생활상과 유물 연계하며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아나는 버터나 카펫의 제작 방식에 대해, 혹은 1895년에 어떠한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러한 인터랙션 과정에서 관람객은 아나와 질의응답을 나눌 수 있었는데, 관람객이 특정 유물과 관련된 과제를 수행해야만 게임이 종료되었다. LieksaMyst는 관람에 대한 흥미 및 적극적인 참여 유도, 박물관에 대한 태도, 관람객의 기대 충족 등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평가를 얻었으며, 특히 사용자의 게임적인 몰입 요소에 대한 호응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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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박물관에 대한 영향력은 전시물에 국한되지 않고 관람객으로 확장되면서 관람객과 전시물과의 상호작용 방식 및 전시 수용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예컨 대,전통적인 예술작품 중심의 전시에서 보였던 관람객의 관조적 태도는 참여 및 체험 기반의 능동적 태도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원본성, 진정성, 실제성 등에 의거하던 ‘증거물로서의 전시물’을 ‘체험을 유발하는 전시물’로 전환시켰으며, 이에 따라 전시물에 대한 객관적?인지적 의미보다 관람객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과 느낌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즉, 의미 생성과 관람 경험의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그 가치를 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동안 학습 매체로 활용되던 복제 전시물이나 재현 전시물에 대한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며, 원작과 병치 또는 독자적 전시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디지털 이미지와 뉴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디지털 전시 미디어의 활용이 확대되면서 원작을 재매개한 디지털 전시가 새로운 융합 콘텐츠로서 국내·외 전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명화 기반의 디지털 전시는 예술작품 원작으로 구성된 전시와는 달리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며, 원작에 대한 접근 이용성을 확장한다. 또한 프로젝션 맵핑과 모션 그래픽 등의 기술로 구현된 영상과 이미지가 대형 스크린에 투사됨으로써, 원작에서 간과했던 조형적 요소를 보다 깊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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