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웨이브 베이 로드가 구불구불 굽이치며 이어지는 곳을 빅 웨이브 베이라고 부르는데, 순서에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네 개의 작은 만이 이어진다. 사이완, 함틴완, 타이완, 퉁완으로 이어지는 이 네 개의 만은 파도에 깨끗하게 씻긴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암초로 가득하다. 이 해안을 굽어보는 샤프 피크는 험준하고 독특한 형상을 한 채, 우뚝 솟은 북쪽 꼭대기에서 이 아름다운 풍경의 종착지 역할을 한다.
이 뾰족한 네 개의 만이 연출하는 장엄하고 광활한 풍경은 일반 대도시 교외 지역의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반적인 홍콩 여행 책자에서는 이런 풍경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첵랍콕홍콩국제공항(香港國際機場, Hong Kong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얻은 간단한 지도도 네이탄 로드(彌敦道, Nathan Road), 센트럴(中環, Central), 코즈웨이 베이(銅?灣, Causeway Bay) 같은 화려한 도심지만 확대해놓은 채, 사이쿵(西貢, Sai Kung)의 해산물 레스토랑을 억지로 끼워 넣은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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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래된 마을이 ‘첵켕(赤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아마도 옛날 이 동네에 붉은 흙이 깔린 길이 많았던 게 아닌가 착각했다. 그러다 하이킹 사이트에서 찾아봤더니, 실은 예전에 이곳에 마을을 지을 때 바닷가의 붉은 돌들을 가져다 길을 깔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마을길이 이런 빛깔을 띠게 되었고, 마을이 ‘첵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 역시 역사가 오래된 마을인데, 주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뉜다. 보통 때는 사람 그림자를 거의 찾기 어렵고 오래된 가옥들은 잠겨 있든 열려 있든 하나같이 황량하고 쓸쓸한 빛깔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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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롱 지역에서 소금물 벼를 재배할 때 사이쿵의 쉥이우 부근 해안가 논에서도 분명 부분적으로 소금물 벼를 심었을 것이다. 매년 4월이 되면 농민들은 제방을 쌓아 조류를 막았다. 여름비가 논밭을 씻어내면 진흙 속 염분기가 사라졌고, 6월 즈음에 파종에 들어가 3개월 동안의 성장기를 거쳤다. 10월 말이 되면 황금 들녘에서 벼를 수확할 수 있었다. 벼 이삭을 수확하고 나면, 경작하지 않고 휴지기를 갖거나 해수가 들어오도록 게이와이의 수갑을 열어놓고 어류와 생선을 건져냈다. 또 다른 의미의 풍성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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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보 여행의 중심지는 라이치총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지명은, 혹시 광둥어로 라이치라고 불리는 과일 ‘여지’를 이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까닭에 붙여진 게 아닐까? 라이치총 주변에 마치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이름 모를 수많은 들판과 산길을 보며 또 한 번의 도보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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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테리토리에서 만나는 이런 종류의 산길 중에는 해안으로 뻗은 길도 있고 두 마을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길도 있다. 요새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길을 고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 내가 걸어보려고 하는 남충 컨트리 트레일은 그 역할이 고도와는 다르다. 이 길은 교외공원에서 구획한 새로운 도보로, 핑텡아우라고 불리는 들판을 통과해 탄축항과 원래 남충에 있던 오래된 산속 경작로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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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렇다. 추석이 지난 어느 날 혹타우 저수지로 향했다. 물가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호반(湖畔) 가득 수옹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저수지 끝자락 산골짜기에서는 시내가 졸졸 흐르고 있었다. 더 오래되고 거대한 수옹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켜켜이 쌓인 두꺼운 나뭇잎들이 해를 가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어둡고 습한 삼림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려 늘어진 밝은 진홍빛 수옹나무 열매는 크기가 작은 것이 산앵두를 닮았지만, 이 녀석이 실은 왁스애플(Syzygium Samarangense)의 가까운 친척 격으로, 도금양과에 속한다는 사실이 확실히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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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나간 시대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 법. 라이언 락 위에서 이 어지러운 세상을 내려보다가, 라이언 락 아래로 내려오면 다시 인간 세상에서 살아갈 뿐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감은 채 서서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실어다 주는 선선한 기운을 느끼며 그 순간 맑고 또렷하게 깨어나는 행복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내일부터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날을 위해 또다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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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물새들의 몽콕이었다. 녀석들은 마이포도 아니고 틴수이와이도 아닌 남상와이를 택했다. 재벌 건설업체가 사들이고 정부가 묵인해 거대한 건물이 세워질, 그렇게 사라질 이 습지를 말이다. 녹색 도시 베를린 외곽에서 만난 아름다운 숲의 기억을 떠올리는, 물이 용솟음치는 이 환경을 말이다.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자연생태는 이렇게 생기로 충만하건만 환경의식이 드높은 요즘 같은 때에도 토지 정의를 거스르는 개발이 행해진다니 너무나 화가 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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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적게 잡아도 30~40개의 고도가 있고, 모두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고풍스러운 정취가 가득하다. 다만 대부분은 일상생활 중 이동 경로로 활용된 좁은 오솔길이고, 전쟁이나 이주 경로로 이용된 노선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탓인지 고도의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중요한 여행길로도 발전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홍콩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도시가 되면서, 걷기 좋은 도보 여행길이 구획되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구획된 길들은 대부분 산의 능선을 타고 종주하는, 시야가 탁 트인 노선들이다. 외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맥리호스 트레일, 윌슨 트레일, 란타우 트레일 등이 모두 이런 레저형 트레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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