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난제(難題)다. 수학보다 어려운 데다가 그 공식마저 매번 새롭게 바뀌니, 때로 난감하고 때로 어리둥절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게임의 양상이 아무리 복잡하게 전개되더라도 결국 게임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듯이, 난해한 인간관계에도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부저추신(釜底抽薪), 즉 "끓는 물을 식히기 위해서는 솥 밑의 장작을 빼내야 한다"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법은 직장 내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용한 솔루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 p.26
맹상군은 '전국시대 4군(君)'의 한 명으로 불릴 만큼 학식과 덕망이 높았다. 그가 고위 관직에 올랐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3,000명이나 되는 엄청난 식객을 거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식객들의 구성에서 특이한 점은 속칭 '개나 소나' 모여 있었다는 점이다. 도둑질을 일삼던 전과자, 문서 위조 전문 사기꾼, 닭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는 개그맨 같은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고고한 선비인 맹상군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나중에 맹상군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이 바로 그들, '개나 소'들이었다. --- p.28
유방에게 투항한 숙손통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적지 않은 쓰임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정작 우두머리인 숙손통이 제자인 자신들을 제쳐두고 도적 출신들만을 유방에게 추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 제자가 나섰다.
"저희는 선생님을 따라나선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런 저희는 놔둔 채 싸움질을 일삼는 교활한 자들만 추천하고 계시니,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숙손통이 말했다.
"지금 한 왕은 돌과 화살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있는 자들 가운데 칼과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p.78
살아 있는 유기체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절대불변의 본능이다. 조직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행복과 안정을 원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희생까지도 불사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면'이다. 당신이 필요한 국면이 아니라면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 p.83
모든 일을 자기 힘으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기 능력만으로 성취를 빚어낼 수 있다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혼자 힘만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일은 없다. 설령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지혜가 배제된 이상, 부실의 씨앗은 어딘가에 분명히 도사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역설이 탄생한다. 당신의 부족함이 새로운 채움을 불러 마지막을 완성시킨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어리석게 보이되 미치지 말라"는 가치부전(假痴不癲)의 전략은 유력한 동지들을 끌어와 당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다. --- p.84
한나라로 찾아온 진평이 오래지 않아 높은 벼슬에 앉게 되자 많은 장수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평이 과거 형수와 잠자리를 했던 추잡한 행실이며 군사들에게 뇌물을 받아 챙긴 사실을 유방에게 고했다. 유방은 진평을 추천했던 위무지를 불러 다그쳤다.
"자네는 진평의 나쁜 행실을 알고도 나에게 추천했단 말인가?"
이에 위무지가 대답했다.
"제가 진평을 추천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진평의 행실에 대해 논하고자 하십니까?" --- p.130
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변화의 틈새에서 자신이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주변의 상황이 빠른 시간 안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모든 전투와 전략의 목적은 단 하나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위기에 빠뜨릴 것인가,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어떻게 그 위기를 깨뜨리고 솟아나 용맹을 되찾을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위기 탈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금빛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는 금선탈각(金蟬脫殼)의 지혜는 위기에 빠진 당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탈출 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 --- p.136
개인적 역량만 놓고 보면 항우의 참모가 유방의 참모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항우에게는 범증 한 명뿐이었지만 유방에게는 장량, 장평, 한신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범증 한 명이 이 세 명을 커버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범증은 제갈공명과 강태공에 버금가는 최고의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결국 유방이 승리쿇고 항우가 패배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범증은 '평가 목표'를 추구했던 인물인 반면 장량, 장평, 한신은 '학습 목표'를 추구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 p.182
모든 샐러리맨의 염원은 한결같다. 조직 내에서 쓸모없는 취급을 당해 변방으로 물러나지 않는 것, 그리고 사형선고와도 같은 퇴사 권유를 받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살아 펄펄 뛰는 청춘의 열정으로 조직의 '중심'에 머물러 있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관점을 파악해 유기적인 움직임과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며, 주변 사람을 휘어잡아 그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조직 내에서 밀리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방법론. [초한지]는 그에 관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 --- p.188
공성신퇴(攻城身退)라는 말이 있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뒤로 물리라는 뜻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물론 멋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떠나지?"라는 의문도 생긴다. 박수를 받았으면 다음에 더 큰 박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면 되고, 공을 이루었으면 이를 든든한 밑천 삼아 더 나은 커리어로 발전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점이 지나치게 '성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치는데 왜 떠나?"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점을 '성공'이 아니라 '성공의 다음'으로 바꿔보면 공성신퇴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공의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혼란, 혹은 새로운 질서다. --- p.199
황제를 속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조고는 결국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반란 이후에 신하들이 자신을 따라줄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먼저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조고가 황제 일행과 산책을 하던 중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조고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저기에 말 한 마리가 있습니다."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허허. 승상, 무슨 말씀이시오. 저건 말이 아니라 사슴이 아니오?"
하지만 조고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반박했다.
"아닙니다, 폐하. 저기에 있는 것은 분명 말입니다."
황제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고, 조고는 고개를 숙인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하들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 p.214
인간관계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행복과 성공을 얻을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불행과 실패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혹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당신이 불신의 눈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그 눈빛을 본 사람은 당신을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웃음으로 칼을 감추다"라는 소리장도(笑裏藏刀)의 메시지는 웃음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울음과 불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울며 불만을 말할 때, 그들의 표정에는 연민이 어리겠지만 마음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웃어라, 세상이 당신과 함께 웃어줄 것이다. --- p.232
[초한지]는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냉정한 승자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놀라우면서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초한지]에서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유방의 모습은 오히려 정반대라는 점이다. 그것이 전략적이었든 진심이었든, 유방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허리를 숙였으며, 때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동생'과 '아랫사람'을 자처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초한지]가 말하려는 주제와 [초한지]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 p.257
떡이 갖고 있는 진정한 효과는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서로의 닫힌 마음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내 마음 한번 바꿔 먹는다고 미운 놈이 갑자기 사랑스러운 놈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떡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는 별개로 떡 그 자체는 '현실적인 효력'을 발생시킨다. 계속해서 무탈하게 떡을 받아먹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날 그렇게 미워한 건 아니었구나'라며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떡으로 웃음을 날려주면 상대도 나를 향해 웃게 된다. 날카롭게 서 있던 감정의 송곳도 서서히 무뎌지면서 이른바 '떡으로 대동단결'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 pp.275-276
관점을 '영향력'의 문제로 바꾸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당신의 직책이 높지 않아도 영향력이 높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나갈 수 있고, 자신에게 최종적인 결정권이 없어도 모두들 당신이 원하는 방향을 원함으로써 결정권을 쥘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은근하지만 빠르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향력'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방이 말한 성공 비결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방은 스스로 전략에서도, 전투력에서도, 그리고 관리 측면에서도 모든 것이 부족했음을 자인했지만, 결국 뛰어난 사람을 옆에 두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고 말했다. 유방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