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준비할 때는 ‘수많은 독자를 대변한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묻고 싶은 걸 묻고 싶은 대로 물으면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누구도 신경쓸 것 없이, 십대 중반부터 꾸준히 읽어온 작품의 작가에게 지금의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물어보면 된다. 무라카미 씨의 우물을 위에서 엿보며 이리저리 상상하는 대신 직접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무라카미 씨와 함께. ---「시작하며」중에서
“따분하고 재미없는 대답만 해서 미안합니다만, 따분하고 재미없는 질문에는 그런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 법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작가 생활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상황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물론 예의바른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번에 가와카미 미에코 씨와 총 네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정말이지 솔직하게,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신선하고 날카로운(때로는 묘하게 절실한) 질문이 속속 날아오는 통에 무심결에 식은땀을 흘릴 때가 잦았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끊임없는 공세’를 피부로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무라카미 하루키」중에서
한번 무의식층에 내려갔다 올라온 재료는 전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담갔다 건지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문장을 만들면 울림이 얕아요. 그러니 제가 이야기, 이야기, 하는 건 요컨대 재료를 담갔다가 건지는 작업입니다. 깊이 담글수록 나중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달라지죠. --- p.41
예를 들어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무라카미 씨 소설의 열렬한 팬입니다, 라고 말해주잖아요? 물론 진심이겠지만, 그래도 이 년쯤 지나면 저 사람도 ‘무라카미는 이제 틀렸어’라고 하지 않을까 상상하는 거예요. ‘전에는 좋았는데 이번 신작은 영 아니야, 못 읽겠어’, 뭐 그렇게(웃음). 항상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 p.53
일단 씁니다. 만약 친구가 와주지 않더라도 와줄 법한 환경을 만들어둬야죠. 저쪽에 방석도 좀 깔아놓고, 청소도 하고, 책상도 닦고, 차도 내려두고.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런 ‘밑준비’라도 해두는 겁니다. 아무도 안 오니까 오늘은 실컷 낮잠이나 자볼까, 이러지는 않아요. 전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 --- p.82
‘좋은 이야기’ ‘중층적인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속마음에 한층 강렬하게 가닿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아사하라 쇼코(*옴진리교 교주)가 제공한 이야기도 결과적으로는 분명 ‘나쁜 이야기’였고, 트럼프가 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뒤틀린, 굳이 말하자면 ‘나쁜 이야기’를 끌어내는 요소를 지니고 있지 않나,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 p.101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인식은 자꾸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문제로 도피하죠. 그런 것도 ‘나쁜 이야기’가 낳은 일종의, 뭐랄까, 후유증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들도 속은 거라는 말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면이 있죠. 천황도 나쁘지 않다, 국민도 나쁘지 않다, 나쁜 건 군부다, 하는 식으로. 그게 집합적 무의식의 무서운 면입니다. --- p.102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내 페이스에 맞춰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쓸 뿐이지만, 경제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설’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중 하나일 뿐이죠. (……) 그러니까 저는 결국 ‘무라카미 인더스트리즈’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거위일 뿐이에요(웃음). 내가 낳는 알이 황금인지 은인지 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p.321
이 글을 읽었더니 굴튀김이 먹고 싶어 못 참겠더라, 이 글을 읽었더니 맥주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더라 하는 물리적인 반응이 생기는 게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한층 갈고닦고 싶은 강한 욕심이 있죠. 어쨌거나 물리적인 욕구를 독자들의 마음속에 심고 싶어요. ‘아, 굴튀김이 먹고 싶어 죽겠다!’라고 외치게 하는 것.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런 글을 좋아합니다. --- p.340
그런 이야기의 ‘선함’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요컨대 역사의 무게입니다. 벌써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동굴 속에서 구전해온 이야기나 신화가 우리 안에 아직도 존속하는 것이죠. (……)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고 신용해야 해요. 기나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과 무게를 지닌 이야기를. 그 이야기는 먼 옛날의 동굴 속까지 뚜렷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 p.35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