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의 '신화'
--- 99/12/03 조창완(chogaci@hitel.net)
지금 내가 사는 중국이란 나라는 10년을 예정하고,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대 공사를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양쯔강이라 불리는 장강에 치수를 위한 거대한 땜을 건설하는 것이다. 장강의 중상류인 충칭과 우한 사이에 놓이는 땜이다. 이름하여 장강삼협댐이다.
이 공사 때문에 장강의 절경중에 대표적인 장강삼협이 잠기고, 수많은 문화재가 수장된다. 난 개인적으로 이 땜과 치수의 함수관계는 물론 환경과의 함수관계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작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이가 있다. 바로 우왕(禹王)이다. 부정에 부정을 거듭해서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속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우가 시사하는 것은 많다.
우왕의 위인 순(舜)임금은 '곤'에게 골치거리인 장강의 치수를 지시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뚝을 쌓는 방법으로 치수를 도모했으나 뚝이 터져 실패를 거듭한다. 곤은 결국 죽임을 맞고, 아들인 우가 치수를 맡게 된다. 우가 선택한 치수는 물을 트는 것이다. 그는 '구하를 소통하고 제수와 탑수를 소통하여 바다로 주입.. 회수와 사수를 배수하여 양자강으로 주입하시니, 그 뒤에 중국이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443P)고 한다. 우가 치수를 성공하고 수신(水神) 공공의 횡포를 무찌르고,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을 복되게 한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능력을 동원해 댐을 쌓아 물을 막아 조절하겠다는 것은 자연과 정면으로 부딪혀 무찌르겠다는 것이다.
신화의 교훈을 어쩌면 그런 것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신화의 교훈을 따를 필요도 없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을 거부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신화에 관해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조지프 캠벨은 한번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비교적 늦게나마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동양신화를 다룬 '신의 가면 2-동양신화'로 조우했다. 첫 대면은 우선 솔찍히 기가 질린다고 해야 될 것이다. 원시-동양-서양-창조 신화 등 4부작으로 되어있는 신의 가면은 캠벨은 지식과 사고를 통해 정돈되어 있는 신화의 모든 것이다.
이 책 '동양신화'는 동서양 신화의 차이와 동일점을 서술하는 서론으로 시작된다. 이집트, 조로아스터 등과 비교하며 동양신화와 서양신화를 비교한다. 총론격인 2장 '신의 도시'는 캠벨의 중심테마인 신화의 근원인 신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신화와 종교는 '경이'와 '자기 구원'이라는 모티프를 갖고 있는데. 이곳이 발생, 유지되는 가를 밝힌다. 특히 이집트나 인도에서 벌어지는 순장에 관한 나름대로의 재현(81P)은 인간이 신의 세계를 동경해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캡벨이 극히 신경을 쓰는 창세기 신화들의 유사점을 찾으며, 기독교의 탄생(그 기록인 성경)과 그 이전의 신화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흥미롭다.
캠벨이 '피네건의 경야'에서 '인간은 광대이고 신은 각본을 가지고 있다'는 글을 인용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신의 각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나 우왕처럼 신의 경이에 도전할 때, 새로운 인간형이 만들어진다.
'인도의 신화'는 자이나교의 특이한 신화 등은 물론이고, 불교의 탄생등을 재현하며 중요하게 다룬다. 상대적으로 다음에 다루는 중국은 신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유야 당연하다. 중국이 한대나 송대 등에서 유교국가 단계를 거치며, 상대적으로 괴력난신이야기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에 수많은 신화 자료를 연구하다보니, 중국 신화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 듯도 하다. 사회주의를 채용하며 상대적으로 더욱 약화된 신화는 최근 '중국신화전설'이라는 저작에서 풀이되듯 상당한 무게를 갖고 있다. 이후에는 일본과 티벳의 신화가 약간 소개되어 있다.
아쉽게도 캠벨의 연구범위에서 한국은 제외되어 있는 듯 하다. 최근들어 우리 신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신화에 대해서 너무나도 한정된 연구를 해야하는 슬픔을 안고 있다. 삼국시대에 우리에게서 문명을 전달받은 일본이 세계 신화사에서 그 위치를 인정받는데,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삼국유사'정도의 수준에 신화도 대접받지 못한다.
신화연구는 단순히 신이나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원형을 연구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자료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사도 없으며, 연구자 역시 없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빨리빨리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읽기에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동양문화의 근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하는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