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는 서사는 최소한의 시간에 급한 걸음으로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그 사람의 인생 전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에서 보면 단편적이더라도 각각의 서사는 지극히 생생하고, 한 편으로 완결되고, 매우 자극적이고 시사적입니다. 이 책의 서사는 각각 단편이면서도 세계 자체와 비등한 의미와 무게와 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음으로써 겨우 몇 시간 동안이지만 ‘내가 아닌 나’의 인생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인생 기억이나 시간, 감정, 경험을 더불어 나눌 수 있습니다. 생활사를 읽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지 않은 또 다른 우리 인생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별개의 우리 인생’도 단편일 따름입니다. 다만 그 단편을 통해 우리는 ‘내가 아닌 나’의 가능성을 훨씬 더 멀리까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또 ‘지금의 나’로 돌아오고 말지라도…. _13~14쪽 「머리말」
일본인이라고 할까…, 음.…, 뭘까, 내가 제일 화가 났던 건, 저, 뭐였더라. 리먼 쇼크 때, 그럼 항공권 사 줄 테니까 가라, 이런 말은, 그건 정말 화가 났어(2009년, 일자리가 격감해서 생활이 파탄 난 브라질인 등 외국 국적의 주민이 속출했고, 주로 일본계 남미 사람에 대해 귀국할 비용을 일본 정부가 부담한 일. ‘귀국 지원금’이라고 불렀는데, 이 비용으로 돌아가면 일정 기간은 일본에 재입국할 수 없는 등 제한이 있었다).
무슨 소리지? 무슨 말을 하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지. 어쩐지…
74쪽 「루이스_국가, 가족, 사랑」
강의 때 남학생한테 물었어. 친구가 게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커밍아웃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요즘 애들이니까, 대체로 “전혀 상관없어요” 하더라고. 그런데 한 아이만, “나한테 다가오면 좀 곤란하긴 하지요” 하더라.
그렇지? 그러니까 다가오면(덮치면) 어떡하느냐, 그런 생각이지? 나 참, 네가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면박을 주고 싶어. …(중략)…
그렇다면 넌 길에서 스치는 여자 엉덩이는 전부 만지냐고 묻고 싶겠지? (웃음)
맞아, 그렇다니까. 넌 치마만 둘렀으면 전부 그런 눈으로 보느냐고 말이야. 그렇게 허구한 날 덮치고 싶어? 이렇게 쏘아 주고 싶다니까.
92~93쪽 「루이스_국가, 가족, 사랑」
난 편견에 찬 말을 듣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는 않은데, 그래도 안타까우니까, 한 번쯤 직접 보고 나서 생각하고 말을 해 보라고 해. 한 번 보라고 말이야. 그러고 나서 좋다든지 싫다든지 말하라고 해. 안 그러면 아무런 설득력도 없잖아?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보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해. 그게,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느낌이지.
어떤 세상이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든지, 그런 거 있어?
음, 글쎄. 어떤 세상이 되면 좋겠느냐고? 모든 차별이 없어지면 좋겠지. 그게 없어지면 다른 게 곤란해지는 일이라도 있을까? 그래서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걸까?
_142~143쪽 「리카_‘여자 되기’」
…어떻게 하면 나을까?
글쎄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요. 난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십 년, 몇 십 년….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절대 무리라고, 낫지 않는다고, 설사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는 걸, 멈추는 날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게 지금의, 내 현실이니까요. 엄청 시간이 걸렸어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음…. 낫는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회복론이라는 게 있지요? 회복에 관여하는 거, 증상이 없어지는 거, 그거 이퀄 회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았다, 낫지 않았다, 난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나 혼자서도, 건강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밖에는 가능하지 않다고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나았느냐? 이렇게 물으면 지금도 대답할 수 없어요. 무엇을 가리켜 회복이라고 하나요? 그러면 증상이 없어지면 사람은 회복한 걸까요? 증상이 없어져도 괴로워하는 사람을 잔뜩 보아 왔기 때문에, 문제는 증상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
으음…, 회복…, 그렇다면 거꾸로, 회복이라는 건 어떨까요? 그건, 어떤 것일까요? 아하하.
_173~174쪽 「마유_병, 존엄, 회복」
현재 서른여덟이지요?
지금 서른여덟이에요. (서른여섯쯤에 일단 그만둔) 그다음? 그다음에는…, 선술집에서 일하거나 했어요. 음. 역시 여유 있게 지내고 싶어서요. 모자(母子) 가정, 이니까요.
저기, 금액이 같은 금액밖에 받지 못하잖아요. 같은 금액이랄까, 저, 생활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중략)…
그런데 저, 그러니까, 아이가 셋이나 있어요. 그래서요. 저기,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중학교에 들어가거나, 그런 단계가 꽤 있잖아요. 아이들은요. 그럴 때, 중학교까지는 생활 보호요, 생활 보호를 내주지만, 고등학교는 나오지 않거든요. 전혀요. (학비 이외에도) 교복이니, 뭐니, 그렇게, 처음에 들어가는 돈을, 왕창 들여야 하잖아요, 고등학교 가면요. 그런 돈은 하나도 내주지 않아요. 예, 그래요. 부모가 전부 부담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돈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건 참 이상한 일이지요.
우후후. 그러니까, 역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니까, 일을 해야지요.
_204~205쪽 「요시노_싱글맘으로서, 마사지 걸로서」
거기에서 망해 버렸어. (복구 사업 수요가 한 단계 감소하면서) 일거리가 없어졌거든. 그래서 100명 있으면 50명 줄여야 한다는 거야. 그럼, 옛날부터 오래 일한 사람이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새로 온 사람을 그만두게 할까 하는 얘기가 나왔어. 절반쯤 난…, 일을 하지 못했어. 일을 그만둔 거나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오사카로 와서, 돈이 없으니까, 텐트라고 하나? 텐트 생활 말이야, 전혀 (무료 급식 같은 정보를) 알지 못했어. 그래서 아까 얘기한 것처럼 된 거야. 이리 가서 밥 얻어먹고, 저리 가서 밥 얻어먹고. 잘 때는 밤에 골판지 상자 안에서 자고. 역 안 벤치에서 자기도 하고. 온갖 별짓을 다 했어. 그래서 내가 경험 좀 했다고 말하는 거야.
참, 그거 말이야, 자고 있으면, 기분 좋게 잠들었다, 그랬는데 그때 마침 툭툭 치는 거야. 눈을 떠 보면 (야간 순찰 스태프가) “몸은 괜찮습니까?” 물어. 괜찮다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몸조심하세요” 그러고는 가 버려. “나 참, 모처럼 기분 좋게 자는데, 추워 죽겠네, 왜 깨우고 야단이요? 깨우지 말란 말이요.” 그런데 저기 가면 오늘 따뜻한 된장국과 주먹밥을 준다고 알려 줘. 그러면 거기에 가 보자, 하고 가서, 거기 가서 자고 있잖아? 그러면 역시 밤에 다들 그리로 모여들어. 그러니까 머릿속에, 저기 가면 어느 요일 밤에, 거기로 가면 밤에 주먹밥과 된장국을 주겠구나. 그러니까 거기 가서 잠을 자자, 그런 생각만 해.
_263~264쪽 「니시나리 아저씨_길거리 그리고 전쟁」
난, 인생 참, 멍청이였다고 생각하거든. 지금 일흔 몇인데도 말이야. 그 인생의 삶을, 삶의 방식, 삶의 방향을, 방향을 잘못 잡았구나, 생각해.
벌써 내가 지금 일흔일곱이잖아? 일흔일곱이 되도록, 성인이 되어, 무슨 일을 했나, 생각해 봤어. 그랬더니 아무것도 여기에 남아 있지 않은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무덤이라도 마련하고, 유족이 무덤을 만들어 주기라도 하잖아. 나 같은 건, 아?무도 무덤을 만들어 주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무연고자 묘에 들어가야 하겠지. 음, 그야 물론 넣어 주겠지. 그런 곳이 따로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도, 추석 같은 때 성묘랄까, 뭐, 보통 사람도 그렇겠지만. …없을 거야.
그리고 또, 전혀, 이런 생활에는 그게 없어. 죽으면, 죽은 다음은 딱히 생각한 적이 없지만….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다, 보통 가정이라면 감기 들어서 앓아누워 있으면 말이야. 감기 들면 수건 한 장이라도 여기에 대 주잖아. 열 있으면. 아무도 그런 것 해 주러 오지도 않고, “어라, 감기 들었어?” “응, 감기 들었어.” 그걸로 끝이야. “조심해야지,” 이런 말은 누구나 하잖아. 감기 들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런 말 들으면 고맙다는 마음은 들지만, 그다지 뭐….
_307~308쪽 「니시나리 아저씨_길거리 그리고 전쟁」
‘사람의 생활사란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람, 또는 특이한 경험을 가졌거나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인생 이야기라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워서 읽는 사람을 질리게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재주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은 조사나 취재 때문에 누군가와 인터뷰를 하는 일은 고통스럽기조차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긴장과 불안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일을 선택한 보람을 느낍니다.
나는 이제까지 몇 백 명의 사람들과 만나 생활사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직접 구체적인 개인과 만나 이야기를 계속 듣는 조사 방식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제까지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싱글맘인 요시노 씨는 오사카와 모리오카를 잇는 한 가닥의 전화선으로 이어졌을 뿐, 이름도, 얼굴도,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요시노 씨와 유흥업에 종사하는 요시노 씨, 이 둘의 생활이 지닌 양 측면을 동시에 들은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겠지요. 그것은 한 사람의 여성이 살아가는, 가족조차 모르는 생활사입니다 아마도 그 작업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_355~356쪽 「맺음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