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과 친구, 동료의 생각을 끊임없이 살핌으로써 그들을 평가하고 보다 깊이 이해한다. 또 누가 칭찬받을 만한 사람인지, 누가 비난받을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처음의 의견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공연이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정치인들의 토론과 뉴스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의 판단을 점점 깊이 있게 만들어 나간다. 물론, 때에 따라 좀 더 현명하거나 다소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또 어느 때는 좀 더 예리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예리하지 못하거나 편향된 생각을 나타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끊임없이 판단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장 그냥 보는 눈은 없다, 판단하는 눈만 있을 뿐], pp. 44~45
심리학과 1학년생이 맨 처음 접하는 과목은 인간의 가장 일반적인 편견, 즉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라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심리학 과정을 수강하며 학생들은 다음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탐색하게 된다.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평균 이하, 평균 이상 가운데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93퍼센트가 기술 측면에서 평균 이상, 88퍼센트가 안전 측면에서 평균 이상에 속한다고 응답했다. 평균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따라 그 의미를 고려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의 운전 실력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아주 명백하게, 응답자들은 자기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비단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논리나 주장의 결과에 대해 심층적으로 평가하는 훈련을 받은 학계 사람들조차 자신이 우월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경영학 석사 과정 교수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수의 68퍼센트는 자신의 교수 능력이 상위 25퍼센트에 속한다고 믿었으며, 학생의 87퍼센트는 자기 학업 성취도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2장 칭찬 :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p. 70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실수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뭔가 모를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과의 힘을 학습한다. “미안해”라는 말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어떠한 비난도 달게 받겠다는 사과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죄책감을 알아 달라는 바람도 포함되어 있다. 잘못에 대한 후회보다 중요한 것은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상처받은 상대방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나 관계에서 보상이나 자백, 속죄 등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다시 인정을 받고 비난의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
[3장 비난 : 나는 너에게 거부당하고 싶지 않다], p. 109
단 하나의 부정적인 판단으로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일반화된 비난이다. 보통 비난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지, 혹은 일반적인지에 따라 우리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나를 향한 비난이 특정 실수에 국한되어 있을 경우 처음의 격앙된 마음은 금세 가라앉는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난을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조언을 듣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반화된 비난을 듣게 되면 마음속 분노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점점 커진다.
[4장 가족 : 자존감의 크기가 결정되는 곳], p. 127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전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때로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도, 내 배우자는 기본적으로 존경할 만한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이 같은 전제는 또한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의무를 저버려도 쉽게 만회할 수 있고, 그 배우자는 당연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는 약속의 바탕이 된다. 이와 반대로 ‘내 배우자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배려도 없는 등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전제는 불행한 결혼 생활의 씨앗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배우자의 성격적인 결함 탓으로 돌려 버리면 해결은 결코 쉽지 않다.
[6장 부부 : 항상 나를 존중하고 있음을 표현해 줘], p. 227
디지털 기기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오직 팔로워들의 박수갈채만을 기대하며 우리의 마음은 마치 “나를 봐 줘요!”라고 외치는 아이들 수준으로 퇴행하는 것 같다. 댓글이 하나둘 달리면 괜한 자신감에 우쭐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내 생각에 반응하고 있어!” 그러면서 팔로워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흐뭇한 상상도 해 본다. 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존경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소셜 미디어 외에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판단받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려 주는 실존 인물이 소셜 미디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더욱 강해지고 비판적인 태도는 점차 줄어든다.
[8장 소셜 미디어 : 내면을 피폐하게 하는 끝없는 비교], p.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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