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내가 처음 동시대인(contemporary)이라는 단어를 셰익스피어 관련 적의 겉표지에서 보았을 때, 이 단어는 꽤나 특별하고 멋있어 보였다. 하나는 Shakespeare and his contemporaries였고 다른 하나는Shakespeare our contemporary였는데, 첫번째 제목은 그와 그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 책 제목을 선뜻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그 옛날 살았던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현재의 우리와 연관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저 책이 나온 지 오래 되었나,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 라는 식의 앞뒤 없는 의문들을 품었었고, 그런 의문에 답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직까지 셰익스피어가 공부할 게
남았냐던 누군가의 질문에 시원스레 대답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으리라. 셰익스피어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시대의 동시대인이니까 우리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언제나 our contemporary Shakespeare라고.
십이야는 12월 25일로부터 12번째 날, 1월 6일을 뜻하며, 동방박사들이아기 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을 찾은 것을 기리는 축일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증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날은 영어로 표기하면 the feast of epiphany이며, 주현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피파니는 문득 알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 이 깨달음을 통한 정신적 성숙을 의미하며, 미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즉 삶의 무수한 순간 속에서 문득 얻게 되는 깨달
음의 순간,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 현재보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단지 그 날짜에 최초 상연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품의 부제인 what you will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연극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도 있고, 이 극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가보란 것일 수도 있고, 이 극이 당신이 맘 속으로 원하는 것을 이뤄줄 수도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관객과 독자의 해석에 따라 이 극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올라는 무엇을 알아차렸을까? 그녀의 여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랑의 쟁취를 통해 획득되고 완성될 수 있었을까? 올시노는 자신의 갑작스런 선택에 만족할 수 있을까? 올리비아와 세바스찬의 결혼은 옳은 것일까? 말볼리오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토비 경 일당의 속임수는 그들의 말마따나 양측에 똑 같은 정도의 비난과 웃음을 유발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을까? 우리는 이들의 웃음을 그저 웃고 즐길 수 있을까? 극중 여러 군상들이 보여주는 이런 저런 생각의 갈래들과 행동들은 우리를 어떤 끝에 도달하게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책을 읽다 가끔 문득 깨닫게 되는 때가 온다.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어서 머리 속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답답함을 어떻게 할 수 없이 안고 살다가, 책이 던져 주는 몇 마디 말이 무심히 알려주는 깨달음은 마치 텁텁한 입 안에 털어 넣은 박하사탕 한 알의 청량감을 준다. 그런 에피파니의 순간을 독자들이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부분의 역자들이 하는 똑같은 변명이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를 그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 숨겨진 의미를 모두 담은 채 우리 말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를 자위하면서 부족한 번
역에 변명을 하고, 욕이나 덜 먹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려 한다. 이 번역본은 아든(Arden Shakespeare) 3판을 기본 텍스트로 본문 번역을 하였으며, 주석은 여러 출판사의 판본을 같이 참고하였다. 원서와 되도록 행 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영어를 우리 말과 정확하게 행 수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고, 특히 산문으로되어 있는 대사는 우리 말의 맛을 살리려 노력하다 보니 운문 대사 보다 행 수를 맞추기가 더 힘들었다. 행 수의 숫자 표기는 원서의 행 수를 따랐다. 따라서 우리 말로 번역된 부분의 행 수가 일치하지 않는 곳이 더러 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학부 때 두근거리면서 만났던 셰익스피어는 졸업하고 나면 뭐하지 라는 물음에 조금은 안이한 답변을 주었었다. ‘책이 더 읽고 싶다.’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책이 더 읽고 싶어서 시작했던 대학원 공부가, 이러 저러한 세월을 건너 결국 이런 소중한 기회로 다가와 주었다. 취업을 바라셨던 부모님의 기대를 무심하게 외면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살아오면서 잘했다는 마음보다는 가보지 못한 길을 동경하며 뒤를 돌아보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었던 내 첫 선택이 마냥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 기쁘다. 언제나 따뜻하게 이끌어 주시고 나의 학문적 빈틈을 완벽하게 메워 주시는 박우수 교수님, 부족한 번역에 섬세한 조언과 교정을 해 주신 조혜영 선생님, 번역팀을 총괄하고 계신 권오숙 선생님, 그리고 부족한 글을 좋은 책으로 엮어 주신 외대 지식출판콘텐츠원 박현정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책은 살아 계셨으면 많이 기뻐하셨을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바친다.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