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에서는 아직도 모든 동양인 고객들을 줄 세워 기다리게 만드니?」
「잘 모르겠는데요. 외숙모, 저도 루이뷔통 매장에 안 들어간 지 수십 년 됐어요.」
「잘했다. 그 줄은 정말 끔찍해. 게다가 기다려서 들어가면 동양인은 딱 하나만 살 수 있게 하더라고. 일제 강점기에 중국인들은 모두 줄 서서 음식 찌꺼기나 받아먹게 하던 것이 생각나더구나.」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외숙모, 왜 그들이 그런 규칙을 세워야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동양인 관광객들이 루이뷔통뿐만 아니라 명품이라면 모조리 사 가는 모습을 보셨어야 해요. 사방에서 보이는 것은 다 사 가더라고요. 명품 로고만 있으면 가져가려 하던데요. 완전 미쳤어요.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값을 더 붙여 팔려고 하잖아요.」
「그래, 라. 그런 뜨내기 관광객들이 우리 평판을 더럽히지. 하지만 나는 70년대부터 파리에서 쇼핑을 했단다. 절대로 어떤 줄에 서지도, 내가 뭘 살 수 있는지 지정받지도 않겠어!」
--- p.96
에디는 중국 체육 협회와 홍콩 골프 클럽, 차이나 클럽, 홍콩 클럽, 크리켓 클럽, 다이너스티 클럽, 아메리칸 클럽, 자키 클럽, 로열 홍콩 요트 클럽,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회원제 다이닝 클럽들의 회원이었다. 또 홍콩 최상류층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에디와 그의 가족 모두는 [궁극의 멤버십 카드]라고도 불리는 캐나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베이징의 권력자들이 다시금 톈안먼 사건을 일으킬 경우를 대비한 안전책이었다.) 에디는 시계를 수집했고, 최고급 시계 70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두 스위스제였고, 빈티지 카르티에 시계만 프랑스제로 예외였다.) 그는 그 시계들을 주문 제작한 단풍나무 진열장에 전시해 놨다. (그 진열장은 에디의 개인 옷방에 있었는데 그의 아내에게는 옷방이 없었다.) 그는 『홍콩 태틀』 잡지에서 [가장 많은 초대를 받은 인물] 리스트에 4년 연속 올랐으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피오나와 13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벌써 애인을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이렇게 낯 뜨거울 정도로 부유한데도 에디는 자신이 주변 친구들에 비해 굉장히 빈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빅토리아 피크에 개인 저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개인 비행기도 없었다. 그의 요트에는 상근 직원이 없었고, 열 명 이상의 손님에게 안락한 브런치를 대접하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게다가 요즘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꼭 벽에 진열해야 한다는 로스코나 폴록, 아니면 세상을 떠난 다른 미국 화가의 작품도 하나 없었다. 그리고 리오와 다르게 에디의 부모님은 구식이었다. 그래서 에디가 졸업하자마자 자립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젠장, 너무 불공평했다. 그의 부모님은 엄청난 부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싱가포르에 있는 할머니가 언제든 명을 다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돈다발을 또다시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아마는 이미 지난 10년 사이에 두 번의 심장마비를 겪었으며 지금은 제세동기를 삽입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마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신만이 알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부모님 또한 지나치게 건강했다. 두 분이 쓰러진 후 유산을 개떡 같은 여동생, 그리고 득 될 것 없는 남동생과 나누면 액수가 충분치 못할 것이었다. 에디는 언제나 부모님의 순자산이 얼마 정도인지 계산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 자산 정보의 대부분은 부동산 업계에 있는 친구들이 그에게 흘려 준 것이었다. 이 일에 그는 집착하게 됐다. 그렇게 자택 컴퓨터에 부모님의 자산에 대한 엑셀 파일을 만들어 두며 부지런히 매주 자산 가치를 업데이트하고 자신이 미래에 상속받을지도 모를 유산을 계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떻게 계산하든 간에 부모님이 자산을 굴리는 방식 가지고는 절대로 그가 『포천 아시아』의 〈홍콩 부자 10위〉에 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 p.129~131
「자기 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레이철은 닉이 JFK 공항에서 레드 카펫이 깔린 싱가포르 항공 퍼스트 클래스 카운터로 그녀를 데리고 가자 그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닉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철의 반응을 즐겼다. 「네가 나와 함께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가야 하는데, 그 길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했지.」
「하지만 엄청 비쌌을 텐데! 콩팥이라도 떼다 판 건 아니지?」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모아 놓은 마일리지가 1백만 마일리지 정도 있었어.」
여전히 레이철은 닉이 이 항공권을 사기 위해 지금까지 꼬박꼬박 모은 마일리지를 희생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일등석을 탄다고. 그러나 레이철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거대한 2층짜리 에어버스 A380에 탑승하려 할 때, 마치 여행 잡지 광고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승무원들이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었다. 「Mr. 영, Ms. 추, 탑승을 환영합니다. 스위트룸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은 몸매가 드러나는 롱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통로를 따라 내려가며 둘을 비행기의 앞쪽 구역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열두 개의 스위트룸이 있었다.
--- p.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