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월급 받는 자들을 위하여
직장인들의 다양한 고민과 마주하기를 3년, 쉬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법을 논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는 사실이다. 상사와의 갈등, 승진 탈락, 좌천 인사 발령, 이직의 어려움, 목표 미달의 고민, 루머에 시달림 등.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그들의 막막한 심정이 느껴져서 나도 같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조언을 듣고 난 후에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보내오는 감사의 글을 읽을 때는 속 시원한 청량감을 느꼈다. 지금 직장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해결의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는 순간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우리는 직장 생활을 너무 힘들게 생각한다는 것인데, 이는 직장 생활의 어려운 면을 너무 크게 확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은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움도 많다. 이 둘 사이에 관점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나 돌아갈래!’와 ‘나 회사 안 갈래!’는 어쩌면 우리 직장인들이 날마다 속으로 외치는 대사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때 누가 ‘왜’라고 물어 보면 ‘회사 가면 우울하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멀쩡하다가도 회사에만 가면 답답해진다. 이 증상을 가리켜 우리는 ‘직장인 우울증’이라 부른다. 근심스럽고 답답한 기분 속에 살아간다는 것인데, 그 원인은 바로 실적, 경쟁, 자리에 대한 걱정이 많으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직장인 우울증이 더 대두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전체적인 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조직에서 개인은 약자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 직장인들은 더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회사는 ‘당신이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현재 직장에 더욱매달려야 한다. 그러자면 험한 꼴을 보아도 웃고, 비굴한 경우도 참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미는 식으로 자신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 당연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또하나의 원인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근원적인 불만족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문득문득 자신이 바라던 삶이 이게 아닌데 하는 불만족이 있을 수 있다. 예전에도 ‘직장인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불만족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먹고산다는 것 자체가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도나 보람을 따지게 되는데 이게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1초식 진심직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바로 그대」 중에서
직장인들은 너나없이 상사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진나라 말기 유방을 도와 한(s)을 건국한 장자방처럼 오른팔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상사가 인정해 주지 않아서 힘들다’고 토로한다.
도대체 왜 많은 상사들은 열심히 일하는 부하들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뒤집어 생각하면 왜 많은 부하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야말로 열심히 일만 하기 때문이다. 인정받는 것에는 실력이나 노력 이상의 것이 포함된다는 뜻인데, 그 이상의 것이란 바로 마음이다. 즉 상사와의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열심히 일해도, 행동이나 인간성이나 가치관 등이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사는 그 부하 직원의 실력을 알아주기는 해도 마음으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사람이 싫으면 애정을 가지고 아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 있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인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2초식 불가근불가원: 그대는 나의 장자방!」 중에서
직급이 차이 나는 두 상사의 의견이 서로 엇갈릴 때 대부분 직급이 더 높은 쪽의 지시를 따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바로 위 직속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서 부장과 과장의 의견이 엇갈릴 때 일단 과장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회사는 계층화된 조직이기 때문에 부장은 과장에 대해서 지시 통솔할 책임이 있고, 당신은 그 과장의 지시를 따를 의무가 있다. 만약에 과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부장의 지시만 따른다면 그건 조직의 위계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조직이 있다면 조직 기강은 얼마 안 있어 어지러워질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과장의 존재 이유를 무시해 버린 셈이어서 부장과 과장 간의 갈등을 부채질하게 되고 나중에 당신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을 겪을 수 있다. 먼저 과장을 무시한 건 부장인데도 과장의 총부리는 약자인 당신에게로 온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지 않던가.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 ---「2초식 불가근불가원: 부러지지 말고 차라리 휘어져라」 중에서
간혹 동료, 후배들이 “당신밖에 없다” 하며 등을 떠밀 때가 있는데, 이때는 ‘직장에서 동반 자살은 없다’라는 말을 꼭 명심하라고 권하고 싶다.
꼭 자기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닌데도 옆에서 동료나 후배들이 부추기면 우쭐해져서 얼떨결에 총대를 메는 일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다 나서서 같이 사표라도 쓰겠다’라는 식으로 등을 떠미는 것인데, 막상 무슨 일이 생겨서 잘리기라도 하면 술 한 잔하며 같이 분개하고 위로는 해주어도 절대 같이 사표는 쓰지 않는다. 결론은, 총대를 멜 때는 자신의 판단과 각오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총대를 멜 때 주의할 점은 두 가?이다. 첫째, 상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안 된다. 상사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 상사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잘 하려고 했는데 무언가 판단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까 부장님도 잘 하시려고 하는 점은 이해합니다. 근데 사실은 이게 이렇거든요”라는 식으로, 자존심에 상처입지 않도록 존경심을 품고 직언해야 한다. 역사극에 나오는, 불로 지져도 눈 부릅뜨고 대드는 충신열사처럼 무조건 “아니 되옵니다”라는 식으로 들이대는 것은 아무리 옳은 건의라 해도 뒤끝이 좋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직언을 할 때 솔루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총대를 메야 한다는 것이다. 윗사람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는데 비용이나 인력 문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걸 그냥 “광고가 부족합니다” “영업 활동비가 경쟁사보다 너무 적어서 사기가 죽어 있습니다” 하고 들이대면 윗사람이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난들 자갈논 팔아서 장사하는 줄 알아?” 이렇게 나온다.---「2초식 불가근불가원: 조직에서 동반 자살은 없다」 중에서
설득의 단계에서 하수나 중수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아, 그렇게까지 설명해도 못 알아듣겠어? 좋아, 그러는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하고 칼자루를 넘겨버리는 일이다. 이건 절대로 안 된다. 만약 그 말을 듣고 부하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면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논쟁으로 가게 되어 더 복잡해진다. 설득은 토론이 아니다.
또 명분 검법을 쓰는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남자답지 못하게 그러지 마라’ ‘회사를 위해서 네가 참아라’ 이런 것들인데, 명분 검법으로는 설득이 잘 안 된다. 명분 검법의 맹점은 상대도 명분 검법으로 나올 때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흔히 노조에서 이 검법을 많이 쓰는데, 아예 큰 것을 들이밀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 ‘그러면 물러설 테니 물러서는 명분이 서도록 작은 거라도 달라’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면 그야말로 그마저 안 들어줄 명분이 없기 때문에 결국 코너에 몰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분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명분이 아닌 실리 검법을 쓰는 것이다. ‘나 잘되자고 하는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또는 ‘내 말을 듣는 것이 이러이러해서 너에게 이익이다’라는 식으로 실익을 알려줘야 한다. 나는 이것을 ‘포유 화법’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듯이 상대를 보살피며 설득하는 화법이다.
---「3초식 청출어람: 설득이 필요할 땐 실리 검법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