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12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74g | 128*190*15mm |
ISBN13 | 9791160402186 |
ISBN10 | 1160402183 |
발행일 | 2018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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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74g | 128*190*15mm |
ISBN13 | 9791160402186 |
ISBN10 | 1160402183 |
Prologue 중년, 책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 Chapter 1 비로소 삶의 물음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 내 마음속 그림자 이해하기 -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중년의 시간 - 책을 읽고 마침내 헤어질 수 있었다 - 어떤 일도 평온한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 -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 -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Chapter 2 모든 걸 능가하는 ‘나로도 충분한 마음’ : 흔들리지 않는 중년되기 - 마음이 시끄러울 때 소중한 것 돌아보기 - 모든 걸 능가하는 ‘나로도 충분한 마음’ - 나라고 믿고 있는 ‘나’가 진짜 나일까? - 충분히 슬퍼해야만 하는 시간도 있다 - ‘어디에서’가 아닌 ‘누구와’의 프레임으로 - 내면의 비밀을 저장할 수 있는 힘, 글쓰기 - 자서전으로 타인을 통해 나를 보다 Chapter 3 함께해야 할 때와 분리되어야 할 때를 알게 되다 : 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 우리는 과연 사랑할 줄 아는 걸까? - 마음을 쏟은 만큼 사랑이 정직하게 지속된다면 - 나이 듦에는 ‘품위’ 이상의 ‘유쾌함’이 필요하다 - 내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희망이 있다 - 나에게 너그럽듯이 상대에게도 시간을 준다면 - 질투와 여유, 내 나이 듦은 어느 쪽일까? - 우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지만 - 행복해질 수 있다. 자기몰입을 줄인다면 Chapter 4 삶은 결국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 : 외롭지 않은 연대하는 중년되기 - 마음속 온도를 높이는 공감적 상상력 - 삶은 결국 좋은 것들을 남기는 것이다 - 행복의 두 가지 수식어 ‘홀로’와 ‘더불어’ - 경쟁과 공존, 우리가 바라는 건강한 합주 - ‘소유할 것’과 ‘버릴 것’, 바꾸어 생각해보기 Chapter 5 흠집이 난다 해도 멋스럽게 남기기로 했다 :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 목적이 있는 삶, 희망 있는 일에 투신하기 - 흐름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실험’ - 과거의 성공한 자아가 나에게 하는 말 - 이제, 인생이 현명해지는 기회의 시간 - 나답게 사는 길, 소명대로 사는 방법 - 즐겁게 일하며 조금 느릿하게 살기 - 우리는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Epilogue 삶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을 때 |
제목을 잘 뽑은 책이다. 특히 책에 관심이 많거나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볼 때 '이건 난데?'라고 할 확률이 높다.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싶다는 강박 비슷한 습관을 가진 나도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떠올리는 소품이 담요와 책이기 때문이다(따뜻한 방바닥도 당연하고). 거기다 저자는 타깃(?)을 중년으로 잡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독서로 녹여내며 일종의 서평집 같은 글로 중년 이후의 심경 변화,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접목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다 보는데, 아직 덜 중년인지, 책에 소개된 책들 중 읽은 책은 거의 없었다. 앞으로 읽으면 될 책이겠지.
『담요와 책만 있다면』을 쓴 저자 임성미 작가는 독서교육전문가라고 한다. 주로 강연 등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이나 독서교육의 방법에 대해 전파하시는 것 같다. 그 중, 본인이 방황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서에 더 깊이 빠진 이유들을 담아내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은 평균 수명 80세 언저리다. 굳이 숫자로 평균 수명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 역시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싶었던 '중년'이 이제 나의 일이 되었다.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독서를 하다가 내게 스며드는 것은 일부 내용이다. 아직 '중년'이라는 낯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제 출발선에 들어서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확 스며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내 안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 오는 건 역시 '이별'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관련 책 소개한 것도 메모해두었다.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책을 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르는 일은 한다치더라도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 선물을 한다는 건 실례니까.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선물받은 책을 읽고 애도하는 방법을 습득했다고 한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애도하는 것이 상실의 슬픔을 잘 극복하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중년기를 지나온 자신의 방식을 이야기 해줌으로서 책과 독서를 통해 좀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의 힘을 가져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중년이 선물같은 시간이 될지, 젊은 날 던졌던, 지금도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비로소 답을 할 수 있게 될지 큰 기대는 하지 않으나 궁금은 하다. 그리고 내 곁에 나와 잘맞는,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둘 수 있는 마음의 문도 열어 젖힐 준비를 해야겠다.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삶 전체의 의미를 묻는 질문의 시기. 이제까지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살았다면 이제는 "왜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시기 (32-33)
고통을 당했을 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뿐(69)
자기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게 되면 마음 속 부정적인 에너지와 곪아서 아픈 종기가 터져서 아물고 치유됩니다. (122)
누군가에게 함부로 다뤄지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 삶의 의욕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저자(스피노자?심강현?) 말대로 슬픔이 우리의 자존감을 생매장시키는 것이지요. 이 미움의 삼중주는 관계를 이루자마자 곧바로 시작되는 건 아닙니다. 서로에게 온갖 예의를 갖추며 알아가는 짧은 시간을 거친 후 우리는 서서히 경쟁심, 경외감, 경멸의 구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상대방을 이미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규정해버립니다. '당신은 어떠어떠한 인간이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바로 이부분에서 인간관계의 비극이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기준 틀에 맞추어 해석해버립니다. 그리하여 경외심은 순식간에 경멸로 바뀌기도 합니다.(163)
저자(스피노자?심강현?)는 편협한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저자 말대로 '너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고 판단내리는 순간, '너는 여기까지'라고 그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에 선을 그어버리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생각을 스스로 경계하며 그것을 특별한 말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163-164)
<단순한 기쁨>에서 신부님은 말합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 내면에서 기쁨이 솟아올라오고, 그 순간이 바로 신을 만나는 순간이라고 말이지요.(219)
그 남자는 깨달았습니다.
순례길이 바로 우리 인생길과 같다는 것을요.
꼭 필요한 것들만 갖고 살아도 되고,
필요한 것들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말입니다.
버릴수록 짐은 가벼워졌고, 더 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잘 걸을수록 에너지는 내부로 향했고,
순례길의 본래 목적인 "나"를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p.40)
사실 이 책은 마흔에 관한 책인지도 모르고 집어들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리고 제목이 너무 끌려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저 말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으리.
"담요와 책이 있다면" . 적어도 나는 다섯시간은 가만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이름이 낯설어 검색을 했더니 유명한 독서교육자였다.
이 점에서 사실 잠시 주춤했다.
교육자들의 책이 대부분 가르치는 말투라서, 약간 거부감이 있었기때문.
하지만 걱정마시라. 가르치는 말투의 책이 전혀아니다.
소근소근, 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의 책이니 말이다.
그리고 각 이야기마다 책을 한두권씩 소개해준다.
나는 이미 읽은 책도 있었고 그렇지않은 책도 있어서,
당분간은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하긴 평소에도 읽을 책을 쌓아놓는 편이지만)
이 책에는 60여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구절구절을 어찌나 잘 엮었는지 놀라움이 들 정도다.
그 이야기들을 굵직히 다섯이야기로 나누는데, 그 소제목들도 어찌나 멋진지!
소제목들을 소개하기 위해, 그 순서로 리뷰를 써볼까한다.
또 이 책에 가득한 멋진 일러스트도 소개하고.
비로소 삶의 물음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 내 마음 속 그림자 이해하기
이 챕터에 상단에 옮겨쓴 말이 나온다. 산티에고 이야기.
나도 산티에고를 한번쯤 걷는게 목표처럼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 아버지가 말했다.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은건지, 마음을 다지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걸으며 마음을 다지는 건 산티에고에 가지않아도 돼.
뒷동산을 걸어도 니가 마음을 잡으면 그게 산티에고지" 하고.
나는 그때 또한번 아빠의 지혜에 놀라움을 느꼈었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버려야할 것들은 반드시 물건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또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p.42)
나는 이 말이 아빠의 말과 일맥상통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
그래, 맞다. 우리는 때로 잊고살지만 그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저자의 말처럼 타인을 염려하고 사랑한다고 전달하고자
우리는 타인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 내 마음의 그림자를 이해하는 것은 내게 달렸다.
그녀가 굳이 어두움이나 다른 어떤 게 아닌 그림자라고 쓴 것은
분명 버릴려야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겠지.
내 그림자를 버릴 수 없듯, 내 속의 그림자도 버릴 수 없으니
음영이나 길이를 조절하는 것 역시 나뿐이라는 것도 받아들여야한다.
정확히 아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모든 걸 능가하는 "나로도 충분한 마음"
- 흔들리지 않는 중년
첫번째 이야기에서부터 나를 울린 이 챕터.
사실 제목부터 난 울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로도 충분한 마음"이라니.
사실 우리가 가장 충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나 자신 아닐까.
나에게는 유독 더 강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교한다.
그 비교가 과거의 나라면 발전적이겠지만,
언제나 비교는 타인과 하며, 스스로를 짖누른다.
결국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수난은 사랑하느 이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이니까요.
행복은 열심히 일한 후 그 대가로 얻어지는 게 아니고
지금 이순간에 일하고 존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p.77)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진짜 행복은 무엇이냐고.
아마 대부분은 그 말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겟지만
막연하게는 아마 이게 행복이겠지- 하는 게 있을테다.
나도 뭔가 정확히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이게 행복이다- 싶은 상황들을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보다 부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릴 뿐이겠지만.
함께해야 할때와 분리되어야 할 때를 알게 되다
- 나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이 챕터에서는 한 이야기의 제목을 먼저 거론하고 싶다.
어디에서가 아닌 누구와의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은 어디에 프레임에 갖혀산다고 한다.
어느 대학, 어느 직장, 어느 아파트, 어느 차, 어느 식당...
다 거론하기도 민망한게,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일고십을 두고, 2018년 큰 수확이란 말을 썼다.
그 말에는 사실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대학, 어느 직장, 어느 곳에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도
"책"이라는 매개로 연결이 되고, 대화가 되는구나-하고.
실제 모임을 하며 직업을 할게 된 분도 있고, 지역은 거의 다 알게되었지만
그것들을 먼저 안것과, 사람을 먼저 안 것은 엄청 난 차이가 있다.
난 어쩌면 일고십을 통해,
내가 가진 선입견 프레임을 하나 벗은 걸지도 모른다.
또 몇몇 분들이 일년 내내 내 일기를 읽어주셨는데
일기를 통해 나를 더 알게 됨은 당연했지만
어떤 분은 내 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은 묘하고도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한 구절 덕분에 묘함은 지워낼 수 있었다.
일기를 쓰는 순간에는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마구 써내려가지만
다 쓴 일기를 읽어내려가면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 자신이 겪은 속상한 일을
한 사람의 독자가 되어 읽어보는 것입니다. (p.122)
아마도 그 분은 내 일기를 읽고 계셨으나, 본인 마음도 함께 읽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감동을 내가 드린 건지, 아닌지 따질 길이 없다.
삶은 결국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
- 외롭지않은 연대하는 중년되기
이 챕터를 읽으며 나는 중요한 단어를 하나 얻었다. 바로 "연대감수성".
단어로는 무슨 말인가 싶을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쉽다.
가령 독서모임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왜 독서모임을 하는가?
글씨를 몰라서? 책을 좋은 걸 못 골라서? 같이 읽어야 재밌어서?
그래, 무엇이든 그 바탕에는
"같이 읽으므로해서 같은 걸 느끼고, 다른 건 배울 수 있어서" 일 것이다.
결국 "연대감"이 바탕이 되면 수고로움도 수고롭지않을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공감까지 더해진다면 연대감은 증폭될 것이다.
그 연대감이나 공감이 서지않은 사람? 그건 자연히 걸러진다.
그러니 연대를 가지지못한 사람에게까지
공감하고 경청하려고 내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는 말자.
아마 사람은 살면서 "좋은 사람과 좋지않은 사람을 거르는 계기"를 만난다.
나같은 경우에는 취업을 해서 한번, 결혼하고 한번,
아이를 낳고 아주 크게 한번 사람들을 거르게 되었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는 걸러지기도 했을테고, 거르고 걸러도 남기도 했을테다.
학창시절에는 그 누구에게도 걸러지지않기를 바랬다면
이제는 안다. 남이 나를 거르는 것은 크게 의미있지않다는 것을.
내가 거르고 남은 사람만 만나기에도 인생이 짧고,
거르고 남은 일만 하기에도 세상은 벅차다.
그러니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말고, "거르고 남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자.
저자의 말처럼, 삶은 결국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일테니말이다.
흠집이 난다해도 멋스럽게 남기기로 했다
-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어느새 마지막 장을 정리해야 할때가 왔다.
이 페이지를 정리하며, 이 말만큼은 반드시 옮겨두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이 살아숨쉬는 생명의 공간이 되려면
그 노동에 희망이라는 가치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희망이 없는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은 메마르고 건조하며 쉽게 지치지요.
(...) 우리가 희망을 품고 매일 기쁘게 일을 한다면
그것은 책 속의 엘제아르가 매일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꾼 것과 같은 행위가 됩니다.
말이 쉽지 희망을 품는 일이 그리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드는가?
우리가 나무를 이야기하면 누구든 꼭 입에 올리는 말이 있다.
지구가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말을 우리가 놀리듯 사용하는 이유는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내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 그러면 바꾸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사과만 먹을 뿐, 다른것은 아무것도 못 먹는 병이다.
그런데 세상의 사과나무는 모두 죽었고, 사다놓은 사과는 곧 다먹을테다.
내가 가진 이 사과나무만이 유일한 사과나무.
지금도 사과나무가 의미가 없어보이는가?
아마 큰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미 바뀌었을테다.
우리가 살며 분명 마음에도 상처가 날 것이다.
마음도 늙을것이고, 마음도 늙고 병들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다.
상처 받아서 주저앉아 버릴텐지, 그럼에도 일어날텐지.
나는 후자의 삶을 살 것이다.
지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다시 내 삶을 살아내는.
욕심낼필요도 없다. 하루에 딱 하루만큼만 힘을 내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될테니 말이다.
중년, 책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
비슷한 또래의 삶의 통찰은 공감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감정을 그 시기에 겪게 되니까...
중년 삶에서 겪는 감정들을 책 속 내용으로 녹여낸 저자의 글을 페이지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책 속의 책에서 찾은 깨달음
<내 나이 마흔/안셀름 그륀>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기 인식’입니다. 이 시기에 드러난 위기는 사실 안에서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 문제이다’라고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온 소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사고의 틀과 삶의 틀을 거꾸로 뒤집어보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중년의 마음은 어느 날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어두움, 사악함, 치졸함과 오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이것들은 결코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니어서 솔직히 인정하기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회피하고 싶어 하지요. (p.35)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체 모를 병에 걸려 몇 해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수도원의 사람들은 그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지혜로운 수도원장이 중병에 걸린 그를 찾아왔습니다. 수도원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당신에게 죽음을 허락하기 위해 왔소. 이제 당신은 회복하지 않아도 좋소.” 그 말을 듣고 수도자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동안 그 자신은 물론 동료 수도자들도 그를 돕느라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병이 낫지 않자 그는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한 말을 듣고 그는 그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마음 편하게 죽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P.41)
미래로 가려는 생각을 붙잡아 현재라는 방석에 앉히기(P.76)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크하르트 톨레>
톨레는 우리를 괴롭히는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신의 에고를 알아차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에고는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에고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무한한 공간이 생기는데 그것을 그는 순수 존재, 순수한 있음이라고 불렀습니다.(P.98)
나라고 믿고 있는 ‘나’가 진짜 나일까
<놓아 버림/데이비드 호킨스>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대단한 인생이어야 한다’고 믿는 그 의식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온 것들로 자기만의 인생 조각품을 만들어왔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 스토리를 하나의 책처럼 간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의 경험들을 하나의 소유물로 간직하기까지 하는데 그것이 곧 ‘자아’가 됩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이 ‘나’라고 굳게 믿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나(소유물)’를 건들면 자존심이 몹시 상하고 맙니다. 나를 이뤄왔던 가족과 친구들, 살았던 고향과 학교, 자신이 쓴 논문에 대해 누군가 부정적으로 말하면 마치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고 무시하는 듯해서 화가 나지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자아’는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참 나’는 존재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 이렇게 무의미하게 인생을 마칠 수 없다는 생각, 내 인생은 왜 이럴까와 같이 자조할 필요는 없습니다.(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