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난 이 집에서 100년을 살 거야. 사실 집을 고치는 일은 새로 짓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야. 바닥부터 수납공간 하나까지, 모든 걸 신경 썼어.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었지. 앞으로 20년 이상 집에 손 안 대고 살려면, 처음 할 때 가능한 한 완벽하게 손을 봐야 해. 결과적으로는 비용 면에서도 그게 더 아끼는 거야. 좋은 제품에는 다 그런 고집이 들어 있어. 난 무슨 일이든 핑계를 대고 싶지 않거든. 뭔가 잘못되면 결국 하는 사람의 책임인 거야. 게다가 주인이 핑계를 대고 대충 하면 일을 맡은 사람들도 대충 하게 돼. 내가 살 진짜 집을 제대로 고치려면, 당신 인생 제대로 살려면, 변명과 핑계를 대서는 안 되는 거야." 대충 살지 않습니다
57 "정리 정돈은 일을 시작하기 전의 태도에 관한 것일 수 있어. 내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힘드니까. 난 일을 맡길 때 뭐든 적당주의가 없어. 미리 철저하게 주문을 하기 때문에 결국 일하는 사람들이 편하지. 게다가 결과물을 놓고 서로 다툴 일이 안 생겨. 그렇게 보면 정리 정돈은 불만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처음은 늘 쉽지 않다
77 나의 첫 단추는 잘 끼워졌을까. 아니다. 남이 괜찮다고 말했던 편한 길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얼버무린 삶이라 결국 손이 더 가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재수선을 하자니 투입되어야 할 엄청난 시간과 비용에 덜컥 겁이 난다. 헐거워진 볼트를 다시 조이고 벗겨진 페인트칠을 꼼꼼하게 다시 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이번에도 적당히 타협한다면 버려지는 일만 남았겠지. 어른의 ‘기회 비용’
111 빈센트 생각으로는, 남자는 두 가지를 다룰 줄 알면 성공한 어른의 인생이다. 하나는 음식, 하나는 내 손에 맞는 공구들이다. 집 안의 대부분 살림은 남자의 손으로 유지 보수가 가능하다. 남자가 게으른 몸이 되면 작은 문제에도 수리공을 불러야 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빈센트는 어른 허리 높이의 공구 수납장을 갖고 있다. 수납장의 칸마다 제 손에 맞춘 공구들이 정리 정돈되어 있다. 언제나 쉽게 필요한 공구를 찾아 뚝딱 집 안 문제를 해결한다. 공구 수납함에서 물건 고치는 남자와 정리 정돈의 힘을 동시에 발견한다. ‘쓸모 인류’의 물건들
125 이 사회는 흔히 혁신이나 스타트업 같은 단어에서 젊음을 연결한다. 어른들이 설 자리는 그 시선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빈센트의 콘센트를 보면 이 공식도 선입견이다. 삶의 불편함을 바꿀 수 있는 탁월한 기술은 삶의 경험치에 비례한다. 연륜이 기막힌 혁신의 바탕인 셈이다. 콘센트에 방향 표시를 해둘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어떨까. 꽤 디테일하게 나이 듦을 생각한 날이었다. 불편을 참지 않는다
141 그런 얘기를 꺼내기엔 그에게도 나에게도 세월이 많이 흘렀다.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뭔가를 하라고 부추겨봐야 삶에 발목 잡힌 사람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한편으로 자기 살아온 삶만큼 쓸데없는 고집이 붙었다는 것. 부쩍 고집이 붙은 나이는 주변의 말을 듣고 움직일 때가 아니다. 속으로만 지켜보는 나이가 된 게 아쉽다. 다른 풍경의 아침을 만든다
149 “요리를 배우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잖아. 아무래도 그러기엔 부담이 돼서 요리 책을 보면서 하나씩 독학을 했어. 돌아보면 요리 학원을 안 다닌 게 다행인 것도 같아. 학원에 다녔으면 남이 만든 공식대로 따라 했을 테니까. 내 방식대로 하면서 얻은 게 많아. 간단하면서 소박하고, 정직하면서 건강할 것!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많이 했어.” 익숙한 것의 반대편을 생각한다
158 “나는 나잇값의 하나가 음식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집이나 차를 사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 나이 들수록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지. 더 좋은 건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난 사람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면 이 사회가 더 점잖고 튼튼해질 거라고 믿어. 왜냐하면 뭐든 정직하게 만드는 태도를 가질 테니까.” 일상의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덧 인생 쓸모를 다한 것 같아 헛헛해진 40대 중반의 남자와 청춘보다 더 에너제틱한 67세 빈센트의 이야기는 금세 나를 사로잡았다. 나도 이 대화에 한자리 끼어들어 ‘어른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 빈센트의 부엌에서 그가 손수 만드는 못난이 빵을 먹으며 그의 삶을 가까이 지켜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은 이들, 이렇게 ‘차곡차곡’의 방법으로 삶을 다시 세팅해보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