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저는 마르코의 복음서라는 긴박하고도 압축적인 텍스트를 찬찬히 읽어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독자분들도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 복음서를 찬찬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첫 장에서 다루겠지만, 그리스도교 전례liturgy에서 마르코의 복음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과 견주었을 때 예수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나 그의 가르침, 활동, 부활에 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 이후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의 유래를 따지며 이 복음서를 마태오의 복음서
(마태복음)나 루가의 복음서(누가복음), 그리고 특별히 복잡한 요소들이 담긴 요한의 복음서(요한복음)의 단순한 축소판으로 취급했습니다. 분명 마르코의 복음서가 지닌 간결함과 긴박함은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복음서를 ‘원시적’인 단순한 문헌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
다. 아무리 낮추어 보더라도 마르코의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만큼 깊은 신학적 관점이 담겨 있는 텍스트입니다. 마르코는 여러 가지 탁월한 이야기 기법과 다채로운 표현을 활용해 자신의 관점과 통찰을 본문에 담아냈습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이야기들 안에 깊이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탁월한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
코는 걸출한 작가입니다.---p.7~8
유앙겔리온, 즉 복음이라는 말은 무언가 기뻐할 만한 일, 조금 더 나아가 작든 크든 사람들의 삶과 세상 질서를 변화시킨 일을 전하는 소식을 뜻했습니다. 사람들은 ‘유앙겔리온’ε?αγγ?λιον, ‘복음’을 들을 때마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환경, 정치를 아우르는 삶의 모든 가능성이 바뀐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복음은 사회 전체의 풍경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소식이었습니다.---p.18
우리는 세세한 대목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완고한 문자주의나 조금이라도 ‘초자연적’supernatural인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완고한 회의주의 ... 이 둘은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복음서가 제기하는 진정한 도전, 이 복음서에 담긴 진정한 어려움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약속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마르코가 복음서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먼저 그려내고자 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 바로 우리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관계입니다. 기도로 열차를 멈춰
세우는 이야기마저 신뢰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관계, 복음서 이야기는 멀리 떨어져서 판결을 내리는 심판석이 아니라 바로 저 관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마르코 복음서에 담긴 기적 이야기들이 정말로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서가 전하는 기적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를 읽는 것은 한 사람, 그 세부 내용이 무엇이었든, 그 주변에서 늘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던 한 사람을 읽는 것입니다. 또한 그 놀라운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접하는 사람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빚어내는 지극한 신뢰의 관계가 그것을 듣고, 읽는 청자/독자에게까지 지금 열려 있음을, 주어지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p.41~2.
마르코 복음서에서 기적은 측은지심, 또는 분노와 직접적인 관련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분노는 사람들을 옥죄는 질병을 향한 분노일 뿐 아니라 해방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교적 완고함과 눈먼 종교적 열정을 향한 분노이기도 합니다.---p.64
마르코 복음서는 관계에 대한 복음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와 독자가 중심 인물과 맺는 관계를 제외한 채 이 책을 보면 이 이야기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이는 제멋대로 힘을 행사하는 이가 아닙니다. 그런 존재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갈릴래아와 유대 지방을 두루 다니며 ‘기분 내키는 대로’ 치유를 베풀고 기적을 일으키는 구세주는 관계로 초대하는 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구세주는 경이와 두려움, 감탄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킬지언정 신뢰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이 미세한 경계를 마르코는 절묘하게 걸어 나갑니다. 그는 우리가 두 가지 기본적인 통찰을 갖고 자신의 복음서를 대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는 예수가 지닌 특별한 점, 그에게서 눈여겨볼 점은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적은 언제나 신뢰와 관계를 동반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절대 어떠한 마술이 아닙니다. 힘을 과시하거나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p.68
마르코 복음서의 전체 흐름을 보면 이 책은 예수가 우리를 어떻게 이끄는지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예수, 즉 역사에서 실존했던 실제 예수와 공동체를 통해 이어진 예수의 실재는 언어 안으로 그리고 언어 너머로, 침묵 안으로 그리고 침묵 너머로 우리를 이끕니다. 여기, 이 순간 우리는 보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순
간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 복음서가 전하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전혀 그렇지 않음을, 입을 다물어야 함을, 다시금 복음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함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마르코가 쓴 이 복음서는 신앙에 관한 책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신앙을 이루는 근본에 관한 책입니다.--p.124~125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