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책략은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갖지 못하도록 세상의 잡동사니를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이 전략은 특효를 발휘했다. 내 손에 붙잡은 것이 가득하다면 다른 그 무엇도 붙잡을 수가 없다. 내 머리에 어떤 것이 가득하다면 다른 그 무엇도 들어갈 수 없다. 내 마음에 어떤 것이 가득하다면 결코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 교회에서도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찾으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채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의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길 원한다면 이 세상의 것을 비워야 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다.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왜 우리의 마음에는 아무리 많은 것을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이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라 중에서
“성경은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이정표이자 목표이다. 그 목표에 이르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 성령님과 함께할 때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성경만 보고 있다고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 순간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는 넘어지고 실수하고 깨어지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성령님은 내가 아무리 큰 죄를 범하고 또 똑같은 죄를 다시 범해도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를 변호해주시고, 나를 인도해주신다. …당신이 아무리 큰 어려움에 빠져도,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났다고 해도 당신 안에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심을 잊지 마라. 당신에게는 방법이 없어도 당신 안에 계신 성령님에게는 방법이 있다. 당신에게는 길이 없어도 당신 안에 계신 성령님에게는 길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나도 절망하지 말고, 당신 안에 계신 성령님을 믿고 오히려 기대하며 살라.”
2. 예수님이 남기신 대안은 성령이시다 중에서
“예수님은 믿는데 이 교회, 저 교회로 계속 옮겨 다니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나무는 계속 옮겨 심으면 자라지 않고 죽는다. 한 교회를 섬기고 한 교회를 사랑하라. 그래야 내가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자라게 된다. 성경은,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교인은 그 몸을 이루는 지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몸에 있는 팔이 떨어져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썩는다. 썩어서 죽게 된다. 사도 바울은 여러 차례 전도여행을 다녔지만 언제나 안디옥교회로 돌아갔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속하였고, 그 교회의 후원을 받았으며, 그 교회를 평생 자기의 교회로 삼았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교회관이다.”
3.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라 중에서
“우리는 교회를 향해 투덜거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교회를 생각하면 걱정거리가 있는가? 그 걱정목록을 기도목록으로 바꾸라. 교회를 위해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 응답이 없는가? 그래도 또다시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라. 지금 나에게 걱정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걱정할 시간이 있는가? 그 시간에 기도하라. 걱정목록을 기도목록으로 바꾸라. 하나님을 향한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 특별히 교회를 향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 교회에 나타난 어려운 문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이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다.”
4.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중에서
“창세기 9장은 노아가 대 홍수 이후에 방주에서 나와 이 땅에서 산 삶을 기록했는데, 딱 한 가지 사건만 기록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350년을 더 살았음에도 왜 이 한 가지 사건만 기록하고 죽었을까? 노아의 삶에는 기록할 것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보통 사람은 100년 정도만 살아도 기록할 일들이 가득한데, 노아는 홍수 이후 350년이나 더 살았는데, 왜 이 사건 하나만 기록하고 있을까? 성경은 의도적으로 노아의 다른 삶은 다 생략하고 이 한 가지 사건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강조 중에 강조이다. 성경은 노아의 생애를 통해 이 부모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의 첫 번째 죄악은 ‘존중’을 버린 일이었다. 셈, 함, 야벳의 인생은 무엇이 달랐는가? 셈, 함, 야벳 가문은 무엇이 달랐는가? 부모가 달랐는가? 실력이 달랐는가? 노력이 달랐는가? 아니다. 왜 어떤 가문은 자자손손 저주를 받고, 어떤 가문은 메시아가 태어나고, 어떤 가문은 하는 일마다 창대하게 잘되는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존중’에서 비롯되었다.”
5. 존중은 인간관계를 여는 열쇠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